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이태석 신부님은 살레시오회 수도사제이자 의사로 아프리카 남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그 곳 주민들과 함께 살고 계십니다.
(지금은 폐암투병 중이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위한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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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전문가
이곳 수단은 전염병이 많은 곳이다. 환자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전염병 때문에 병원을 찾아온다.
전염병 중에서도 말라리아가 단연 1순위이다. 감기몸살처럼 경미한 말라리아도 있지만 고열, 경련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심한 경우가 많고 하루 이틀 만에 목숨을 잃는 악성 말라리아도 꽤 있다.
그밖에 결핵, 이질, 장티푸스 등의 환자들도 꽤 있고 가끔씩 콜레라나 전염성 뇌막염도 기승을 부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전염병이 만연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강한 햇빛이나 우기의 습기 등 열악한 환경도 그렇고 위생관념의 부족도 그렇지만 영양부족으로 인한 면역기능의 저하 역시 그 원인 중에 하나다.
이러한 질환의 전염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다. 특히 콜레라, 홍역 그리고 뇌막염은 KTX 열차 저리 가라다. 순식간에 전 지역으로 퍼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어떨 땐 복음 말씀도 전염병처럼 이렇게 빨리 전파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스피드를 부러워할 때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흉악한 전염병이긴 하지만 그들의 꼬락서니를 잘 관찰하면 그들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큰 공통점 중의 하나는 매개체를 잘 이용한다는 것인데 매개체의 속성을 훤히 파악해 그것들을 기막히게 잘 이용하는 것이다. 말라리아의 매개체는 모기인데 환자의 피를 빠는 짧은 순간에 모기의 가는 침을 통해 말라리아균이 재빠르게 모기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 뒤 모기가 다른 사람의 피를 빨 때 다시 그 사람의 피 속으로 들어가 적혈구를 공격하고 간이나 비장을 파괴시킨다.
이에 비해 콜레라나 장티푸스는 물 전문가들이다. 환자의 배설물을 통해 나온 균들은 재빨리 물속으로 잠수해 기회를 노리다 물이나 음식물에 숨어 사람 입 속으로 들어가 오장육부를 뒤집어놓아 인간의 뒤를 쩔쩔매게 만든다. 결핵이나 유행성 뇌막염은 공기의 전문가들이다. 양탄자를 타고 나르는 인도의 마술사처럼 공기에 떠다니는 먼지를 타고 날아다니다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 광부들이 석탄 캐듯 폐를 갉아먹거나 뇌로 이동해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들은 이렇게 매개체의 생리를 간파하고 있는 엄청난 전문가들이라 백전이면 무조건 백승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들의 전염 속도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매개체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면 그들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복음을 전파시켜 이 세상을 사랑과 희생으로 물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용해야 할 매개체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일 수도 있고 교리일 수도 있고 매스미디어일 수도 있으며 성사일수도 있겠지만 인간 그리스도인들이 이용해야 할 매개체, 복음화의 속도에 불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는 바로 인간의 영혼이 아닐까. 왜냐하면 한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으면 그 인간 전체를 사로잡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 교리서나 성경에 있는 내용을 주입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건드려 움직이게 하고 감동하게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하고 발 빠른 복음화가 또 있을까 싶다.
우리가 관할하는 본당에선 한 해에 사오백 명 정도가 세례를 받고 있다.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숫자도 많이 늘어 주일에 한 번 드리던 미사를 두 번으로 늘렸음에도 매번 성당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워진다. 2년 전의 남북간 평화협정 덕에 피난차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많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다른 이유들도 있다.
전쟁 중에도 자기들 곁을 떠나지 않고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눈 선교사들에 대해 그들이 가진 좋은 이미지가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것을 보면 내 주위의 이웃을 위해 드러나지 않게 행하는 작은 희생과 봉사가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 더 쉽게 와닿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 영혼들이 마음의 문을 그리스도에게로 활짝 열게 하는 복음화의 중요한 밑거름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은 주일미사에 병원진료실과 입원실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만났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완치된 후 신실한 신앙인으로 변화하여 주일은 물론 평일미사에도 자주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악성 말라리아로 혼수상태에 빠져 죽어가던 치콤과 그의 가족들, 남산만큼 부른 배에서 결핵성 고름이 몇 년씩이나 흘러나와 가족들마저 거의 포기했던 꼬마아이 꼰과 그 부모들, 뇌막염으로 고열과 혼수상태에 빠져 새벽 두 시에 병원에 실려온 아얀, 자연 유산으로 엄청나게 하혈을 해 백인처럼 하얀 얼굴로 병원에 실려왔던 아순따,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할 때 탈수로 인해 기진맥진한 채 살려달라며 고함치던 많은 사람들. 이들을 성당에서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더욱이 미사 중에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마치 영혼이 교감하듯 강한 전류 같은 것이 깃들어 있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영원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얹혀있으며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깊은 이해도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성모상도 십자고상도 없고 환자들에게 성당 나오라고, 예수 믿으라고 권유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너무나도 열심이다. 이들이 말없이 변화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멋진 말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킬순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상대방의 영혼이 우리의 진실한 눈빛을 통해서 예수님을 느끼거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영혼에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스쳐 지나가며 만나는 사람들마저도 그 영혼에 무언가를 남기고 그 영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소유자 말이다.
우리가 영혼으로 이야기하고 영혼에게 이야기할 때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한, 그리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아름다운 영혼, 썩어 없어지는 육체가 아닌 영원히 남아 영생을 누릴 고귀한 영혼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런 전문가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리라.
세상을 45년 동안이나 살면서 나와 너의 만남은 영원과 영원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이라는 것을 왜 그렇게 깨닫지 못했나 싶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매일 수도 없이 가지는 만남들, 영원과 영원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들이기에 큰 잔치를 벌여도 부족할 판인데 왜 그렇게 과장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여 가치 없는 순간으로 전락시켜버리게 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만나고 최선을 다해서 대화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영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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