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편지

14. 의기소침, 2006년 5월 17일

김레지나 2008. 9. 12. 20:46

의기 소침

 

5월 17일

 

남편은 어제 처음 예비자 교리 받았어요.

표정을 보니 자기가 스스로 감동한 것 같아요.

"내가 성당에 나가다니,... 긴장해서 살이 5키로는 빠진 것 같아" 이러잖아요.

성당 나가기가 그렇게 힘들까요?

 

아무튼 남편은 요즘 늘어지게 잘 살고 있어요.

백수인데도 마누라가 구박하지도 않지요.

도우미 아줌마가 오시니 집안 일도 안하지요.

곧 실업수당 받으러 다니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 하는지 아세요?

"실업수당이 하루에 3만원이야.. 나 이런 사람이야. 대단하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3만원 범위 내에서 팍팍 사 줄게"

벌써 5개월째 놀면서도 기고만장합니다. 남들이 상상이나 하겠어요?

자기의 임무는 저를 보살피는 거래요. 그 때문에 진단 나오기 전에 하느님이 알아서 명퇴하게 해 주셨다고 해요. 어쩜 날짜가 그렇게 맞아 떨어지냐면서요..

하느님을 저보다 더 잘 믿는 것 같아요.

근데 날마다 토마토 쥬스 한 컵 만들어 주고는 아무 것도 안 해요. 보살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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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좋아서 올린 글들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네요.

제 글을 보면 불안하다고.

사람들이 제 맘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해요.

 

가끔은 세상에서 다정님과 저만 특별히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다른 친구들은 제 글에 대한 느낌은 전혀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지금까지 다정님의 응원이 없었으면 저도 힘들게 글 쓰지 못했을 거예요.

 

제 글들을 대충 한번 읽어 보느라고 몇 시간 동안 마우스를 계속 잡고 있었더니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힘들어요. 천천히 못 읽어서 별로 고치지도 못했어요. 이제 절반쯤 왔다 싶어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정말 지치고 힘드네요. 낮잠을 두 번이나 잤는데도 힘이 없어요.

 

어제 전임학교에 가서 제 제자를 만났어요. 지금 그 학교 선생님으로 있지요. 그 애가 소문을 쫙 내 놨어요. 제가 맨날 아파서 책상에 앉아서 수업했다고. 정말 그때는 수업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서서 수업하기도 힘들었고, 칠판 글씨 쓸 힘도 없었어요. 그 시절이 생각나니까 또 많이 억울해지대요. 한참 나이에 왜 저는 그렇게 몸이 약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한 숨 돌리고 싶네요.

다시 기운 차리면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가서 소식 드릴게요.

이번에는 땅콩 맛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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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으신 기적에 대한 묵상 보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제가 아프게 되어 주님이 제 배에 타고 계신 것을 믿게 되고, 두려움이 없어졌지요. 하지만 가끔은 걱정 때문에 물 위를 걸어 볼 엄두도 못 내지요.

신부님들은 하느님 얘기 전하는 게 직업(?)이니까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저는 제 부족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한테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하는 게 많이 부끄럽고 걱정되지요. 저는 하느님을 알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얘기하고 있잖아요. 아직은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해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가 봐요.

지금 저한테는 '사람들의 반응 없음'이 제게 닥친 풍랑이에요.

 

주님께서 제 배에 타고 계신다는 다정님 말씀을 기억하고 힘내볼게요.

풍랑만 보다가 물에 빠지지 않아야 되겠지요.

마음써주셔서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