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3일
00님
저 어제도 오늘 아침도 안 토했구요.
별로 울렁거리지도 않아요...기적이에요. 아직까지는(여기까지만 기쁜 소식)
친구 의사한테 전에 말씀드렸던 신장암 말기 환자 옆방에다 제 병실 달라고 했어요.
어제 병실에 들렸더니 그 환자분 상태가 많이 심각해졌어요. 아무도 그 병실 같이 안 쓰려고 한다고 친구가 괜찮겠냐고 했었는데... 그 환자가 저한테 막 화를 내대요. 이제는 토하기도하고 설사도 하는네 자기 옆에서 어쩌겠다고 들어왔냐고,,제가 그랬죠. "저도 토하는 걸요. 제가 한 두시간씩 따님과 교대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 환자분 동생이 왔는데 옛날에 학교에서 행정실 직원이대요..병실을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왔어여.
다시 병원에 가 봐야겠어요.
저한테 치유의은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수리수리 마수리 하게요...
그 분 마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달래드리나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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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Tue, 16 May 2006 2:31:37
2006년 5월 6일
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셨다면 다정님도 필시 예수님 장난에 걸려드신 겁니다.
전에 본당 사순특강에서 차동엽 신부님 강의가 있었는데, 그날 너무 감동받고 행복한 느낌이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냉담 오래한 맹탕 신자라서 차신부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릅니다. 항암 부작용으로 너무 힘이 드는데도, 한 시간 정도만 듣고 와야지 했습니다. 근데 1시부터 밤 10시까지 강의를 하시는 겁니다.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얘기하시면서 눈물을 참느라 한참 동안이나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저도 눈물이 나대요. 근데 그 순간 갑자기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마치 신부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요. 그리고 신부님 건강이 안 좋으시다니까, 굉장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신부님의 열정에 감동 받고 하느님 사랑에 공감해서 그러려니 했어요. 그러고 싱숭생숭 설레서 잠이 안 오더란 말이에요.
저번에 다정님이 제 메일을 한참 못 열어보실 때 제가 많이 걱정해서 기도했다고 했잖아요? 그 때는 왜 제가 다정님 걱정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하느님 안에서 너무 기쁘게 잘 지내실 것같더라구요. 근데 자꾸 걱정이 되면서 또 마음이 연인 걱정하는 것처럼 되더라구요. 그래서 별별 걱정 만들어 하면서 기도했지요.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다정님을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어제 눈 뜨자마자 눈물이 났을까? 왜 그 길고 긴 편지를 썼을까? 연애편지 답장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왜 콩닥콩닥 긴장했을까? 알 수가 없더라구요.
제가 9일기도 하는 이유가 신부님들을 위해서잖아요? 율리아가 그래요. 저도 강의준비가 너무 막막해서 힘들어 죽겠구만 저를 위해서나 기도할 일이지,라구요. 더구나 차신부님은 저를 알지도 못하시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신부님들은 하느님과 가까우시니, 잘 지내실 텐데, 쥐가 고양이 걱정하는 거지, 9일 기도씩이나... 그래도 어떡합니까? 하고 싶은 걸요. 예수님이 저보다야 신부님들을 엄청 예뻐하실테니, 알아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하느님이 너무하시는구나. 기도를 시킬 사람이 없어서 아픈 나를 시키시나? 그랬지요.
얼마 전에 S신부님을 만난 후에도 그랬어요. 신부님이 제 맘에 드는 말씀을 안 해주셔서, 좀 삐쳐서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는데, 제 마음이 따스해지면서‘그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제다.’라는 감정이 솟더라구요.
그때 딱 예수님이 의심스럽더라구요.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 감정에다 장난을 치셨구나, 하구요.
요즘은 확실히 제가 정상이 아닙니다. 제가 메일로 싫은 소리 자꾸 해도 언짢아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다정님도 정상은 아니십니다.ㅎㅎ
오늘은 환우 학부형 만나 점심 먹고, 시내 학교 선생님들 체육대회에 가서 많은 선생님들 만나고 왔습니다. 지금 밝은 모습 보여 줘야 나중에 제 글을 읽어 볼 기회가 되면 제가 기쁘게 지냈다는 걸 믿을 거 아닙니까? 사전작업이지요.
애들 재우고, 친구들이 갖다 준 전복 썰어 먹고, 교우 학부형한테 메일 보내고, 환우 카페 들어가서 답글 달고, 제자들 메일에 답장하고 바빴어요.
제가 '낫고 싶어요'라는 글을 환우 카페에 올렸는데 어떤 환우가 답글로 "나을 수만 있다면 저도 하느님을 믿고 싶은데.. 하느님이 계약서만 준다면요."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글쎄요, 하느님은 간이 작으신지 표 안 나게 도와주시더라구요.“라고 했어요.
가끔은 혹시 제가 장님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상상도 해봐요. 안과에서 시신경이 50% 파괴된 것같이 보인다고 했거든요. 하느님이 저를 좀 더 골탕먹이실지도 모르겠어요. 계약서를 받든지 해야지... 저도 묻고 싶네요. 하느님은 계약서 같은 건 안 주시나요? 믿음으로 산도 옮긴다고 하셨으면서, 웬만큼 기도해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십니다. 글 쓰느라 운동 못해서 살찐 것도... 빠지게 해주시면 좋겠는데, 뻥쟁이 하느님! 하느님께 안 맡기고 운동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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