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과 홍어회 무침
4월 15일 토요일
대전에 사는 동생 가족이 왔다. 나를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려고 일부러 온 것이다. 올케는 요리솜씨가 아주 좋다. 일주일간 거의 먹지 못했기 때문에 올케가 해 준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속이 많이 편해졌지만 여전히 조금은 불편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식단을 짜고 요리법을 적어 와서 성의껏 저녁을 만들어 주는 올케가 고마웠다.
가족들과 부활절 미사에 갔다. 예전 같으면 기쁜 날이라고 하니까 철없이 기분이 좋았지만 오늘은 마음이 무거웠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마음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시고, 우리가 방황할 때 안타까워하시고, 우리가 박해할 때 여전히 수난을 당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현존과 사랑을 느끼기 전에는 1년 내내 성탄이고 부활인 듯이 철모르고 살았다.‘하느님은 전능하시니 마음 아픈 것도 잘 버티시겠지. 힘센 하느님께 잘못 보이지나 말아야지.'하고.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이 순간도 여전히 마음 아파하실 예수님을 묵상해 보니, 세상 끝날 때까지 예수님은 수난 중이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희망을 우리에게 주시고도 다시 오셔서 죄많은 인간들을 안타깝게 부르시느라 여전히 고통스러운 수난 중에 계신다.
우리 각자가 부활의 기쁨 속에서 항구하게 머물러 있어야 예수님께서도 부활의 영광 속에 계실 수 있다. 철없는 우리들은 마치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잘 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부활절마다 기쁘다며 마냥 즐거워한다.
나는 냉담기간 동안에도 부활절 미사는 꼭 참석했고,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었다. 금방 또 예수님 마음을 아프게 할 거면서도 뭘 그리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예수님은 영영 부활의 기쁨을 못 누리실 거 아닌가.
기 도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여전히 불쌍하신 예수님
제가 그동안 그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요.
부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부활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에 항구하게 머무를게요.
우리에게만 부활의 희망을 주시고
다시 우리에게 오셔서 마음 아파하시는 예수님
당신은 정작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시네요.
아, 바보 같은 예수님.”
미사는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몹시 피곤해서 미사 내내 앉아 있었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몸도 무거워서 미사 끝날 무렵에는 많이 지쳐버렸다. 오늘은 신부님께서 사투리 안 쓰시고 멋진 강론을 하셨기 때문에 소리 내서 웃을 기회도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성당 마당에 홍어회와 돼지고기가 준비 되어 있으니 맛있게 드시고 가십시오.”라고 하셨다.
입에 군침이 싸악 돌면서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나는 홍어 초무침을 아주 좋아한다.
‘일주일간 못 먹은 양까지 많이 먹어야지.’
신부님께서 퇴장하시자마자 조카와 함께 성당을 재빨리 나왔다. 젓가락 하나를 얼른 차지하고, 내 작은 키를 이용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끼어 다니면서 회무침을 세 접시나 먹고, 돼지 머리고기를 살코기 부분만 골라가며 먹었다. 옆 사람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내가 다니는 본당이 아니니까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맛있게 먹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깡총깡총 뛰면서 집으로 왔다.
역시 부활절은 기쁜 날이다.
알렐루야 !주님께 찬미를! 홍어회 무침에 찬사를!
기 도
주님, 저 맛난 거 아주 많이 먹고 기분이 좋네요.
아직도 저희들 때문에 고통스러우시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지 않았나요?
주님도 다른 날보다는 기분이 좋으시지요?
기분 좋으신 김에 저한테 한 턱 쏘세요.
저 어제 9일기도 시작했잖아요?
청원기도를 27일간이나 해야 되잖아요?
건강 때문에 힘든 신부님들과 저를 위해서요.
청원기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낫게 하지 마시고
좀 당겨서 미리 낫게 해주세요.
기분 좋으시니 한 턱 쓰세요.
이왕 기도 들어주실 맘이 있으시면
확 당겨서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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