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구구단
2006년 4월 7일
남편과 오랜만에 긴 얘기를 했다.
“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네.”
“옆에서 보는 나도 느끼네.”
“마누라가 아프면 더욱 뜨겁게 하느님을 찾아야지, 나를 안 사랑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마음이 한가해? 내가 마음 편히 잘 지낸다고 해서 자네도 그럼 곤란하지. 사람이 미지근하기만 하니 걱정이다 걱정. 하느님이 바울을 왜 선택하신 줄 알아? 하느님을 박해하는 열정을 높이 사서 그 열정을 쓰시기로 한 거지, 그러고 보면 하느님이 나를 고르신 건 탁월한 선택이야. 헤헤헤. 그지? 아파도 열심히 글 쓰고 있잖아.”
“응,...............”
“그런데 왜 권하는 책도 안 읽고, 성당에도 같이 안 가?”
“하느님이 있는 건 알겠는데, 성당 가는 건 형식 같아서 말이야.”
“머시여, 그럼 5월부터 예비자 교리 한다는데 안 가겠다고? ”
“.................... ”
나는 최후의 수단을 썼다. 공포의 다리 누르기’
내 통통한 다리의 무게에 눌려 남편이 항복했다.
“그래, 간다고 가”
남편은 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쁘게 지내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미소 지으며 소파에 누워 있을 때면 궁금해 하며 내게 물어보곤 한다.
“지금 또 하느님하고 무슨 얘기 하는가?”
그러면 나는 남편의 진지한 표정이 웃겨서 대답한다.
“하느님이 맨날 나랑 얘기하실 만큼 한가하셔? 나도 바쁘고.”
신앙을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남편을 보면서 실감한다. 아내가 아픈 절박한 상황에서도, 내 신앙체험을 고스란히 전해 듣고서도, 내 변화를 옆에서 보면서도, 정작 스스로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토요일에는 레지오 활동을 하고, 일요일에는 학생회 활동을 하고, 방학 때는 문학의 밤 행사, 합창 대회 등으로 많은 시간을 성당에서 살았다. ‘그 시간만큼을 공부하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후회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4살 때에 엄마를 여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엄마가 나에게 남긴 가장 훌륭한 선물은 유아세례를 받게 해서 신앙을 가르쳐 주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신앙을 갖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당연히 믿어지는 거 아닌가?’하고 생각했었다. 당시에 나는 동생들에게 중고등학교 때는 미사만 다니고, 대학 간 후에나 교리교사도 하고 열심히 활동하라고 권하곤 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첫영성체 시킬 때가 되자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초등학교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면 너무 많은 시간을 희생해야지, 요즘같이 할 일도 많은 세상에, 더구나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면 '죄'라는 생각 때문에 신앙이 없는 사람들 보다 훨씬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어떻게 할까? 나중에 커서 신앙을 가지게 하면 되지 않을까? 늦게 갖는 거야 내 죄가 되지, 우리 애들 죄는 안 될 테니, 애들을 위해서 그냥 모른 척 할까?’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신앙이 내 인생에, 더욱이 암에 걸린 후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믿음에 대한 기억이 고통에 맞닥뜨렸을 때 하느님을 찾고,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어릴 때 배운 순수한 신앙심이야말로 그 어떤 지식보다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 신앙을 갖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인가 보다. 친한 친구들도 내가 하느님을 체험했다고 하면 모두들 믿는다. 하지만 선뜻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들 어른이 되어서 머리가 커졌기 때문이고, 세상 일이 아직은 더 바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망설이던 우리 아들의 첫영성체를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예비자 교리를 받을 때 같이 다니면서 받게 할 작정이다. 내 부탁을 안 들어 주면 환자로서 불쌍한 척 하소연을 해 보고, 그도 안 되면 할 수 없다. ‘천하무적 공포의 다리 누르기’
당장 내일부터 친구들을 만나서 내가 만난 하느님을 얘기해 줘야 할 텐데, 허리가 여전히 많이 아프다. 한방에서는 신장 기능이 안 좋으면 허리가 아프다더니, 항암제 부작용으로 신장기능이 많이 안 좋아진 것같다.
하느님,
저 대학교 다닐 때 오랫동안 허리가 많이 아팠어요.
알고 계시지요?
안수 받고 나았잖아요.
이번에는 허리 아픈 거 낫게 해 달라고 기도 한 적이 없어요.
왠지 아시지요?
기도 안 들어 주시면 또 실망하게 될까 봐서요.
근데, 저 내일부터 하느님 얘기해 주러 만날 사람이 많거든요.
저 만날 이렇게 아프게 해 봤자 하느님 손해예요.
알아서 하세요. 허리 아픈 거 낫게 해 주시든지 말든지
까짓 것 사소한 부탁, 저 같으면 들어주겠네요.
암튼 알아서 해 주세요.”
2006년 4월 8일 토요일
신기하게도 허리가 안 아팠다. 히히히.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지만 하느님이 내 협박에 넘어가다니 쬐끔 죄송스럽다.‘아, 좀 살 것 같다.’
루카 수학 문제집 푸는 거 봐 주고, 유지니오가 구구단을 외우게 했다. 몇 달 전부터 눈높이 선생님이 외우라고 했는데 아직도 6단까지밖에 못 외웠다. 그것도 슬쩍슬쩍 손가락으로 덧셈해가면서 겨우 외운다. 오늘은 7단까지 잘 외워보자고 했더니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엄마, 내 머릿속에서 공룡들이 왔다 갔다 활개를 치느라고 꽉 차 있는데, 내가 구구단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돼?”
나는 그 맹랑한 항의에 깔깔 웃어버렸다.
“야, 공룡영화 시나리오 구상하는 것도 좋지만 구구단 모르면 살면서 얼마나 불편한데.”
유지니오는 뭐가 불편하랴 싶었는지 못 들은 척 한다. 그러더니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 졸라맨과 폭탄맨이 쥐라기에서 탈출하는 내용의 소설을 써서 올리느라고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이 일 저 일로 바쁜 척 하더니 잘 때까지 구구단 7단을 안 외웠다.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길래 한 마디 했다.
“너 오늘 기어이 구구단 7단 안 외웠네.”
녀석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뒹굴거리기만 하고 대답도 없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볼에 뽀뽀를 해주고 재웠다. 내가 저를 귀여워한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서 빤질대는 거다.
나는 유지니오의 모습에서 하느님께 응석부리는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유지니오가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는 내 마음에서 우리를 어버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는다. 나는 지금까지 영혼의 구구단 외우기를 미루고만 있었던 거다. 하느님은 응석받이이고 게으름쟁이인 나를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사랑해주셨다.
선이와 덕이를 만났다.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이다. 선이는 종교가 없고, 덕이는 개신교에 가끔 다닌다. 내가 하느님 덕으로 아주 기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같이 기뻐해 주었다. 하느님의 은총을 얘기할 때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 고마운 하느님 탓에 눈물이 흔해져서 스타일 구기는 때가 많다.
선이가 말했다.
“글쎄. 언젠가는 남편이랑 어떤 종교든 갖자고 하긴 했는데.”
“야, 니 나이가 마흔이다. 언제까지 미룰 거냐?”
오리탕을 맛있게 먹고 미사 시간이 되어서 선이가 집으로 태워다 주었다. 운전이 위태위태한지라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암 걸려서 수술 받고도 살아 남았는데, 니 차 타고 가다가 죽으면 쓰겄냐? 운전 좀 잘해라.
친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위로를 얻고 간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오랫동안 안 다니던 성당에 다시 나가서 기도를 해 주겠다던 김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느님, 저 오늘 잘했죠?
하느님도 저 허리 낫게 해주신 거 잘 하신 거예요.
고마워요.
저 지금 피곤하거든요.
빨리 잠들게 해 주세요.
내일 낮에 힘들면 또 하느님만 손해 아니겠어요?
저 오늘 잘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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