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멋진 비전이 있으면 행복하답니다.

김레지나 2008. 8. 31. 15:56

멋진 비전이 있으면 행복하답니다.

 

 

   1차 항암주사 때보다 회복이 늦어진다. 피곤해서 낮잠을 두 번 잤는데도 막춤을 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쓰고 싶은 일들은 태산 같은데 몸은 지치고 마음만 급하다.

   교감선생님과 오 선생님이랑 점심을 같이 먹었다. 교감선생님은 허리가 아프셔서 물리치료 중이라고 하셨다. 걷는 것도 많이 불편해하셨다.

   나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졸업 후까지 3년 동안 허리가 심하게 아팠다. 심할 때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세수할 때도 허리를 굽히기가 힘들었고 오래 앉아 있지도 못했다. 3년 넘게 아팠는데 안수기도회에서 안수를 받고 나았다. 그 때 허리 부근에 느껴지던 따뜻한 기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안수를 받은 후로는 같은 증상으로 아프지는 않았다.

 

   교감선생님께서 허리가 아프시다니 그 불편하고 아픈 정도를 체험해 본 터라 더욱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었다. “교감 선생님, 근육이 꼬여서 아픈 거라면 침 맞으면 되는데요. 그게 아니라면 병원치료 하셔야 될 것 같구요. 저도 많이 아팠었는데 안수 받고 나았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그랬어?”라고 묻지도 않으시고 웃기만 하셨다. 정말이냐고 물어 주시기만 하면 내가 받았던 치유의 간증을 더 하고 싶었는데. 잠시 후에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교감 선생님, 왜 웃으세요. 정말인데요. 저는 안수 받아서 나았어요.”라고 말씀 드렸다. 요즘의 내 마음의 평화와 관련지어 하느님께 관심을 갖게 해드리고 싶었다. 여전히 대답 없이 웃기만 하셨다. ‘중병환자인 주제에 자기 병이나 신경 쓰지, 누가 누구 걱정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게 분명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씀하시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내 처지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더 이상 말씀을 못 드렸다.

 

오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 때 안수해 주었던 분 연락이 아직도 돼?”

“그 때가 언젠데요? 몰라요.”

“힘든 항암제 맞지 않아도 되도록 안수 받으면 되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마음이 나았잖아요. 마음이.”

나는 생글 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하느님한테 기도하면 응답은 해주시든가?”

“예, 제 맘에 안 들 때가 있어서 그렇지, 응답은 해 주시대요. 어떤 응답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뭐, 안 들어도 알만 해. 안 들어도 돼.”

   나는 어떤 응답이었는지 말해줄 수가 없어서 속이 상했다. 하느님께서는 나만, 아니면 다른 누구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애타게 사랑하신다는 것이 내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내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의 문제로 이해하신 것 같았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들께서는 단지 내가 잘 먹어서 다행이라는 말씀만 여러 번 하셨다. 나를 위해 주시는 그 분들의 진심을 느꼈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식사하면서 살짝 신앙을 가져 보시도록 권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식사초대에 응했었는데 나는 오늘의 내 비전을 못 이룬 셈이다. 아마 다음에 권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일단 밝은 모습을 보였으니 나중에 하느님을 얘기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암환자들이 자기 몸 나으려는 생각만 하기에도 힘겨울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암환자들도 병이 나으리라는 비전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다른 비전들을 갖는다. 암이 치유된 후의 비전뿐만 아니라 투병 중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비전도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병일지라도 마음으로 같이 아파할 능력도 더욱 많이 갖게 되고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기 때문에, 아픈 중에도 많은 일들을 하려고 애쓸 수 있다. 비전을 갖고서 하루하루를 사는 일은 몸이 나은 후에야 가능한 게 아니라 마음이 나으면 가능한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마음이 나은 것을 내 몸이 나은 것 보다 더 축하해주기를 바란다.

 

   수술 받기 전날 뼈로 전이가 되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럴 리 없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곧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수술 받기 전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위로와 평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꼭 얘기해주고 싶었다. “나를 봐라. 암에 걸렸지만 제법 잘 버티고 있지 않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야. 내가 느끼는 마음의 평화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하고 외치고 다니리라 생각했었다. 그 비전이 ‘하느님, 뜻대로 하세요. 주시는 대로 겪어볼게요. 대신 절대 저를 떠나지는 마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나와 같은 비전이 아닐지라도 꼭 희망적인 비전을 가져야 마음이 낫고, 몸이 나을 수 있을 것이다.‘내가 죽는다면? 재발하면?’하고 미리 슬퍼하고만 있으면 그 슬픔이 그 사람의 비전이 되고 병이 치유되기는 어렵게 된다.

‘내가 나으면, 낫는 것이 허락 된다면 나는 이러이러한 멋진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아야지’하는 긍정적인 비전을 가져야만 나을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가족에게는 이렇게 해주어야지.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 줘야지. 아픈 사람들에게는 이런 충고를 해 줘야지....’ 하는 식의 비전을 갖고 지내야 한다.

 

   과거만 돌이켜 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왜 병에 걸렸을까'하고 오래 따지고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다만 '병이 나으면 어떻게 살까'를 꿈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병이 다 낫기 전부터도 바쁘고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한 비전을 갖는 것이야말로 마음이 낫는 지름길이다.

 

   나는 내 가족과 이웃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감사하고 기쁘게 사는 내 모습을 증거하고 싶다. 그들이 내 고통을 보고 위로를 얻고, 고통 중에도 기쁘게 사는 내 모습을 보고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비전이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 밝은 모습을 보고 덩달아 밝게 살아 보려는 의지를 갖기 바란다. 내 부족한 글을 읽고서 한 명의 환우라도 위로를 얻기 바란다. 항암치료를 여덟 번 받아야 하고 항암제 부작용으로 몹시 아파도 마음은 정말로 편안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환우카페에 글을 올리고, 친구들과 만나서 병에 걸리기 전과 다름없이 웃으며 얘기해야 되기 때문에 바쁘다. 암을 선고 받은 후부터 줄곧 가져온 내 비전대로 하루하루를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힘들지만 환우카페에 올릴 글을 쓰는 수고도 내 비전을 이루기 위한 일이므로 즐겁게 한다.

 

   얼마나 오래 살아서 내 비전을 잘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늘에 맡기고 나는 오늘도 열심히 꿈을 꾼다. 내일은 내 행복을 전하러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지금까지 내가 힘들어하는 줄만 알고 나한테 전화도 자주 못하고 남편한테 전화해서 내 안부를 묻고는 했다. 친구는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안심할 것이고 나에게서 그의 생을 더욱 기쁘게 살아갈 동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신앙이 없는 친구에게 내가 느낀 하느님의 사랑을 일러줄 것이다. 그것이 내일 이루고 싶은 나의 비전이다.

멋진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 비전을 이루려는 열정을 가진 나는 행복한 암환자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 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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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여러분도 멋진 비젼을 많이 가지시길 바라요. 봄나물 뜯어다 맛있는 거 해 먹을 상상, 날마다 애들 공부 도와주는 수고, 매일 저녁 맛있는 요리 하나씩 해 보아야겠다는 결심, 남은 인생을 살찌울 독서에 바쁜 상상. 운동해서 날씬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 등이 모두 여러분들의 멋진 비전이 될 수 있겠죠? 의미있고 즐거운 비전을 많이 갖고 우리 모두 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