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김00씨 강의를 듣고 - 4월 22일

김레지나 2008. 8. 31. 16:00

2006년 4월 22일

 

 내 체험들을 고찰하면서 하느님을 증명하려는 글을 쓴 후에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우연히 틀어놓은 지방방송에서 초청강연 프로그램을 보았다.

  방송에 나온 김00이라는 강사의 프로필이다. 1949년 生, 카톨릭신학대 졸, 교황청소속 수녀(15년), 수녀원 교육담당, 성암교육원 원장, (주)인산가 고문, 지구촌 도덕성 회복운동 한국본부장(현) ,산소나라 교육원 원장(현) ,한국산업강사협의회 부회장,각 기업체, 대학 및 공무원 수련원 출강(현), 명강사 40선에 1위 선정

  정말로 흥미 있는 경력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웃기기도 하고 청중을 혼내기도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중간 중간에 자신의 수녀원 생활을 얘기하기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도무지 강의내용을 가닥을 잡을 수가 없었고, 남편이 듣더니 재밌게 잘 할 수 있는 자질은 충분한데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오랜 시간 강의를 들으면서 조목 조목 반박하고 싶어졌다. 한 가지씩 정리해 보겠다.

 

강사 말: “내가 왜 수녀가 된 줄 아십니까? 우리 집은 불교집안인데, 사람들이 한 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망한다고 합디다.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고 어느 성직자에게 물어 봐도 속 시원한 답변을 안 해 줘요. 그래서 내가 직접 불교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녀가 되어서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수녀가 아무나 되는지 아십니까? 5년간 여러 가지를 수련하고 마지막에 3명 뽑혔습니다. 교황청 수녀 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건강검진까지 다 마치고 여러 심사에 합격해야 합니다. 교황청 수녀가 된 후에 독일 유학도 다녀 왔고, 고등학교에서 교편도 잡았으며 나를 모시는 것을 신자들이 영광으로 알 정도로 잘 나가는 수녀였습니다.”

반 박: 한 집안에 두 종교가 있다고 망한다는 법은 애초에도 없다. 내 친구들 몇몇은 가족들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졌지만 화목하게 잘 지낸다. 어느 누구도 그런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못 해 주었던 이유는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이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보려고 종교를 택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런 이유로 수녀나 스님, 성직자 같은 어려운 길을 택하는 사람은 더더구나 없다. 김00씨도 종신서원을 하던 때에는 순수한 신앙심을 갖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려는 열정을 갖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자기가 수녀원을 나왔다고 해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다른 수녀님들의 순수한 마음을 깎아내리지 않기 바란다.

 

강사말: “내가 왜 수녀원을 나왔는지 아십니까? 논문을 쓰면서 교리적인 어떤 문제에 턱 막혔어요. (‘무'가 어쩌고 ‘유'가 어쩌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못 본 채로 논문을 써 냈는데 그것이 교수들한테 통과되는 것을 보고 세상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교황청 소속 수녀였기 때문에 병에 걸려서 수녀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거짓이유를 들어서 수녀원을 나가는 허락을 받았고, 수녀원 나오는 수속을 밟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나 나온다고 할 때 수녀원이 발칵 뒤집혀졌어요. 수녀님들 중에는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나 같은 용기가 없어서 못 나오는 거예요.”

반박: 교수가 자기보다 무지해서 논문을 허점을 간파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수녀생활을 그만 둔 이유라니. 도대체 내가 이렇게 글로 반박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람들의 지식이나 깨달음이 부족한 것과 하느님을 믿고 자신의 생활을 봉헌하는 신앙심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수녀님들 중에서 서원을 한 것을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활 중에 힘든 것들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 한 것이다’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생활에 만족해야지’ 애를 쓰면서 살아간다. 어떤 희생이든 그것이 즐겁게 되면 이미 희생이 아니라 즐거움에 대한 추구이다. 싫은 마음을 꾹 참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접고 성직자나 수도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 위대한 이유는 싫고 피하고 싶은 마음을 인내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위해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다. 위선은 착한 척 가장하는 것이다. 희생은 ‘싫음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 자기 것을 내어 놓은 행위’이다. 수녀님들이 수녀로서의 생활을 힘들어하고 싫어하기도 한다고 해서 수녀님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잊게 되지는 않는다. 수녀원을 나오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겠지만, 수녀원에 남아 있는 것은 그 보다 더한 용기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해낼 수 있는 자기희생이고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자발적 봉헌이다.

 

강사말 : “여러분들 마음 안에는 다 성불을 할 수 있는 신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우십시오. 예수님도 사람들 안에 하느님이 있다고 얘기하고 다니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반박: 강사 말을 듣고 사람들이 ‘자기들 능력으로 신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 가톨릭의 교리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된다. 가톨릭의 교리는 오직 하느님의 권능을 통해서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 죄를 벗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명상하고 기도하여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안에 내재된 신적인 능력, 초월적인 능력이 발휘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총인 것일 뿐이다. 인간은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다. 어떤 인간도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

 

강사 말: “수녀원을 나와서 2만원짜리 사글세방에 살면서 직장을 구했어요. 광고를 보고 수녀복 입은 사진을 그대로 제출하여 80만원 짜리 영어테이프를 파는 판매사원이 되었지요. 알고 지내던 신자들 집에 들어가서 테이프를 팔려고 했는데, 내가 수녀를 그만 둔 것을 알고 문전박대를 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수녀복도 하나의 포장지였지요. 사람들은 포장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지요. 포장에 애를 쓰면 안 돼요. 포장지 안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돼요.”

반박: 물론 어려운 처지가 된 이웃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나라도 80만원이나 하는 영어 테이프를 팔러 오는 사람을 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녀생활을 할 때 고마움을 갚을 기회를 기다릴 만큼 큰 도움을 받은 신자들이었다면 당연히 문전박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이프를 사주지는 못했을 지라도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위로를 했을 것이다.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이 수녀 생활을 하면서 진정으로 필요한 도움을 신자들에게 주었는지, 수녀라는 포장을 이용해서 대접받기만을 즐겼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분이야말로 포장이 우쭐해하는 이유이고 타인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실망했고 비난까지 하고 지내는 것이다.

 

강사 말: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의를 잘하는 명강사 40명에 뽑혔고, 그 중에서도 1등을 했어요. 수녀를 그만 두니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톨릭에서 명강사 1위에 선정되고 나니 강의를 해 달라고 합디다. 나는 절대로 가톨릭에서 부르면 강의하지 않아요.”

반박: 아마 가톨릭에서 누군가가 김00강사의 강의내용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강사가 당당하게 자랑하는 프로필만을 보고 신앙심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강의하는 줄 알고 섭외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톨릭의 강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강의가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엉망임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수녀를 그만 두고 많은 고생을 하면서 꼬일 대로 꼬인 마음을 풀기 위해서라도 금의환향하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텐데, 어떤 일반인도 수녀생활 그만 둔 것을 따지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지나친 자존심 때문에 합리화를 하려다 보니 너무나 먼 길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내가 초임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은 개신교 신자였는데 내가 가톨릭 신자임을 알고서 자기도 수녀원에 있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남편이 수녀원으로 찾아와 결혼하자고 해서 수녀생활을 포기했다고 했고, 가톨릭에 많은 정이 있지만 남편 따라 개신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닭살 부부로 잘 사는지 옆에서 보면 질투가 날 정도다. 누가 그 선생님을 수녀원을 그만 두었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주임신부님이었던 분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와 결혼하려고 사제복을 벗었다. 그 후에도 나는 그 신부님을 성당에서 볼 수 있었고, 주교관에서 열리는 행사에 일반 신자로서 참석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종신서원을 한 후에는 그 서원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지만, 행여 성직자들이 서원을 깨뜨린다고 해서 죄인 취급하듯이 이유를 캐지는 않는다. 어느 신자들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음을 다들 잘 알고 있다. 일반 신자들은 일생을 봉헌할 마음 한 번 못 먹어본 사람들이니까.

  김00 강사가 가졌던 잘나가는 수녀로서의 자존심이 수녀복을 벗은 후에 심한 상처를 받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주위의 오해에 대적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하다 보니 억지스런 사고에 갇힌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강사말 : “수녀를 그만 두고 남대문 시장의 한 신자의 노점 바로 아래에서 사과장수를 한 적이 있어요. 부러울 것이 없던 수녀였던 내가 도저히 창피해서 "사과사세요“라고 외칠 수가 없었어요. 아, 내가 수녀원에 있을 때는 진짜 배고픔을 몰랐었구나.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이론에 불과했구나. 실제를 모르는 이론을 살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후에야 사과 사라는 소리가 크게 나옵디다.”

반박: 어떤 사람도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다 살아 볼 수는 없다. 어떤 인생도 실제가 아닌 이론일 수 없다. 자기가 살아보지 않고 체험해 보지 않은 일들만이 이론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누리고 있는 생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자신들에게는 실제이다. 수녀의 생활은 이론이고, 가난한 장사꾼의 생활이 실제일 수도 없고, 과거의 생활은 이론이고, 현재의 생활이 실제인 것도 아니다. 과거의 기억들도 미래에 대한 꿈도 모두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실제이다. 부자의 삶도 가난한 사람의 삶도 저마다에게는 다 실제이다.

  또한 이론이냐 실제냐의 기준을 갖고서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할 수도 없다. 배고프고 가난한 자체가 종교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누구나 배를 곯고 살다 죽어야 한다.

  김00 씨 자신도 지금은 잘나가는 강사로서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배고픈 생활만이 실제라고 생각하면, 강사로 활동하는 지금 수녀님들 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넉넉한 생활은 이론인가?

  생활의 가치는 그것을 누리는 마음이 얼마나 넉넉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자기가 극도의 배고픔을 겪어 보았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다 껍데기 같은 이론 속에 있다고 깨달았다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자기가 중병에 걸려 보았다고 해서 병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00 씨의 말대로 포장을 거부하는 삶을 살려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렵게 살면서 잘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포장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다. 가난이나 고통이 즐겁지 않고, 따라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녀님들이야말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남편도, 자식도, 정욕도 모두 하느님께 바치고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다.

 

강사말: “배고픈 배를 물로 채우는 생활을 9년을 했더니 위암이 생겼어요. 내 의지만으로 나는 수술을 받지 않고 이겨냈어요. 발병하고 얼굴이 안 좋아지니까 도반들이 나를 병원에 데려갔어요. 도반들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지요. 수술을 권했는데 나는 수술 받지 않고 내 몸을 생체실험 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먹어 보고 굶어 보면서 일지를 썼지요. 그래서 저는 건강에 대한 강의를 시리즈로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요”

반박: 백화점 의류코너 판매도 엄청 잘했고, 영어 테이프 판매왕도 된 적이 있고, 사과장사도 했고, 몇 억이 되는 돈도 사기를 당해 봤다면서 9년을 배고프게 살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럼 나처럼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사람은 신념이 부족한 사람인가? 수술을 받고도 병이 낫지 않고 죽는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한 사람들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인간의 신념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의 굳센 신념으로 병이 낫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살았고 병을 이기리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빨리 죽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이 더 오래 살기도 한다.    

  우리 이성으로는 알기 힘든 일은 하느님만이 모두 아신다. 죽고 사는 일이 제각각 다른 이유도 하느님만이 아신다. 자기의 굳은 신념으로 암을 고쳤다는 것은 영적인 교만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암에 걸린 상황에서 수술을 거부하고 버틸 사람은 거의 없다. 김00 씨가 딸린 식구들이 없어서 그들과 헤어지는 고통이 없었기에 수술을 거부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스스로의 신념으로 생명도 연장할 수 있었다며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인 양 여기는 것은 교만이고 반기독교적인 생각이다.

 

강사말: “제가 언젠가 강의시간에 늦었는데 기적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늦지 않게 간 적이 있습니다....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하느님, 천지신명님, 부처님,,,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어요. 저처럼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믿으면 안 되는 일도 될 수 있습니다. ......시주승 노릇을 하면서 목탁을 두드리면서 집집마다 방문을 하면 ”저 교회 나가요. 저 안 믿어요.“라고 하면서 박대를 합니다. 제가 외우는 말이 자기네 집을 위한 축원인 것도 모르면서요. 불교 신자라면 주기도문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되고, 기독교 신자라면 불교의 금강경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새벽기도 나가는 사람들 영적인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강의에 와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제 강의를 들어 준 데 대한 애프터서비스입니다.”

반박: 강의를 아무리 들어 보아도 김00씨가 누구한테 기도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반 운운 하는 것으로 보아 윤회를 그만 두고 이승에서 해탈을 하겠다는 건지, 부처님에게 기도하는 건지, 귀신들에게 하는 건지, 하느님에게인지. 나는 애매한 주장을 들으면 짜증이 난다. 자기가 모든 종교를 두루 깨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가? 물론 신이 어느 한 종교의 교리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어느 한 종교를 고집하지 않고 산다고 해서 다른 종교인들 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힘들게 반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힘들게 쓰고 나니 김00씨에 대해서 더 화가 난다. 반박하는 글을 보내 주려고 인터넷에서 연락처를 찾았는데 실패했다.

  나는 김00씨가 수녀원을 나왔지만 훌륭한 일반인으로서, 강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수녀원에서 공부했던 것이 자기의 영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이 꼬여 있다는 것, 자신도 지적인 교만의 포장지를 즐기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김00씨가 잘 나가는 강사라고 하니 전국을 누비면서 강의를 하는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것인지 걱정이 된다. 다시는 그가 삐딱하게 진실을 흐리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이지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들이 신자들에게,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구 보다도 많은 유혹을 견디고 있을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절실하고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