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하느님의 응원 - 4월 16일

김레지나 2008. 8. 31. 16:26

하느님의 응원

 

 

4월 16일 일요일

올케가‘잡채여, 잡채여’를 읽고 마음이 아팠다면서 잡채와 퓨전김밥을 만들어 주었다. 배부르게 많이 먹었다. 살이 자꾸 쪄서 큰일이다. 동생이 어깨 마사지도 해 주었다. 마사지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라서 아주 시원했다.

 

어느 홈피에 내가 그동안 쓴 글들 중에서 심령기도 운운 하는 부분과 너무 힘들었던 부분은 빼고 평이한 것들을 골라서 몇 개 실었다. 혹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올리고 나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읽고 놀리면 어쩌나, 얼굴 붉히고 언쟁했던 사람들이 내가 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우쭐해하면 어쩌나, 글 솜씨도 없는데 요란하다고 흉보면 어쩌나, 내 감정들이 공감을 못 사면 어쩌나’

남편이 나보고 글 여기 저기 보낸다고 겁없다고 했다. 자기 같으면 남들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라서 못할 것같다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나를 전혀 모르는 환우카페에 글을 올릴 때는 몰랐는데, 나를 어쩌면 알 수도 있는 이들이 내 글을 본다고 하니 부끄러운 생각만 들었다.

 

내가 글을 실시간으로 발표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다. 암이 다 치료된 후에 글을 발표하면 이미 지난 고통이라서 긍정적으로 포장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울 테니,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늘 사람들의 반응이 걱정되고 자신이 없다. ‘한 사람의 마음만이라도 위로할 수 있고 하느님께 돌릴 수 있어도 만족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아픈 중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가끔은 자신이 없어 그만 두고 싶고, 더 쉬고 싶다.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정말이지 그만 두고 싶다.

 

기 도

 

하느님,

제 체험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찌 글을 계속 쓰겠습니까?

애초에 별 감동을 주지 못할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 두게 해주십시오.

제 작은 재주라도 기꺼이 쓰실 거라면 응원하고 계시다고 알려 주시든지요.

많은 친구들이 제게 답장을 하지도 않습니다.

글의 양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의기소침해집니다.

저를 응원하신다고 어떤 방법으로든 알려 주십시오.

 

4월 17일 월요일

 

아침에 숙이 언니한테 문자가 왔다.

“당신은 하느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을 믿는가? 당신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그 메시지가 하느님의 응원인 것 같아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 메일 답장으로 ‘세상에 암보다 더 힘든 고통도 있다'고 써보내서 나같이 불쌍한? 암환자를 걱정시킨 친구가 있다. 전화도 꺼놓고 메일 답장도 주지 않는다. 괘씸한 놈. 가끔씩 그 애를 위해서 걱정하며 기도하는데, 기도발 잘 먹히게 마음이나 열고 사는지 모르겠다.

옥이와 실이를 만났다. 둘 다 대학 동아리 친구다. 나를 특별히 좋은 식당으로 데려가서 맛있는 것을 사 주었다. 오랜 만에 대학 시절 얘기도 하고, 하느님 얘기도 실컷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한 번도 하느님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달란트를 하느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쓰고 있는 옥이가 정말 부러웠다.

실이도 개신교 신자인데, 대학 교수라 바쁠 텐데도 최근까지 교리교사를 했다. 실이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각별한 것이어서 가끔은 질투가 나기도 했다.

“성당도 우리 개신교랑 비슷하다는 거 니 메일 보고 알게 됐다. 한 사람이라도 니 글 보고 하느님을 찾게 되면 보람 있는 일 아니냐?”

“근데, 그 한 사람이 아직 안 나타났단 말이야. 자꾸 편하게 지내고 싶어지고.”

내가 자신 없어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말해 주었다.

“내가 겪어 본 하느님은 행여 내가 영영 토라질까 봐 쩔쩔 매시는 하느님이야. 너무 쉽게 나를 고통에서 빼내주셔. 나는 고통을 담는 그릇이 별로 크지 않나 봐, 길어야 3일 동안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을 뿐이야. 그런 하느님의 은총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었지. 하느님은 나한테 오냐오냐하시며 쩔쩔매시는 것 같아.”

 

어쩌다가 옥이 성당 신부님 얘기가 나왔다.

“우리 성당 신부님 얼마나 성질이 괴팍한지 신자들이 모두들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뭐, 열정이든 뭐든 쓰실만한 게 있었겠지. 나를 봐라. 어디 성질 더러워서 지금 하느님 안에 산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 ”

실이가 해묵은 원한을 들추면서 나를 웃게 했다.

“맞다 맞아. 니가 동아리 발표회 준비로 합창연습 반주할 때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 조금만 틀려도 피아노 쾅쾅 치고, 누가 음정 틀렸나 한 명씩 시켜보고, 음정 자주 틀리는 사람이 바로 난데. ‘뭐, 저런 애가 다 있냐?’그랬다 그 때. 얼마나 미웠는지.”

“내가 어디 완벽한 사람이냐? 앞으로도 별로 좋아질 자신도 없고. 나도 연구대상이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