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06년

마음 약한 하느님이 - 4월 18일

김레지나 2008. 8. 31. 16:28

마음 약한 하느님이

 

 

4월 18일 화요일

 

환우 카페에서 내 글을 보고 만나자고 연락했던 환우를 만났다. 신앙이 없으면 이 기회에 선교를 해 보고 싶었는데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하느님 얘기는 대충했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 분도 한참 항암치료 중이라 힘이 들 텐데도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같은 환우라서 그런지 오랜 친구처럼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모처럼 병원을 탈출했으니 좀 무리를 해 보기로 했다. 통일교만 빼고 모든 종교를 다 섭렵해 보았다는 숙이 집으로 갔다. 숙이는 작년에 늦둥이 아들 쌍둥이를 낳았고 네 명의 아이들 키우느라 외출을 못한다. 오랜만이어서 반가웠다. 나는 하느님 얘기를 많이 해주고 신앙을 가져 보라고 권했다. 숙이가 말했다.

“나는 신이 있다고 진짜로 믿는다. 부처님이야 인간이었지 신은 아니었지. 진짜 우리를 만든 신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매일 '오늘 하루를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기도해. 그럼 됐지. 특정한 종교생활이 그다지 필요한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나는 내가 체험한 것들을 세상에 외치고 싶단 말이야. 얼마나 좋은지 더 깊이 맛보라고 말이야. 그리고 애들도 어릴 적부터 신앙심을 갖게 하는 것이 좋지 않냐?”

하지만 아직 기어 다니고 있는 쌍둥이 아들을 보고 당장 성당에 나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끔 미사에 가서 성당 유아실에 있으면서 떠드는 애들 군기 잡느라고 도무지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숙이 집과 가까운 동네에서 학원을 하는 영이를 안 보고 갈 수도 없었다. 안 본 지 꽤 오래되었다. 영이 식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고 너무 피곤해져서 내 글로 하느님 얘기를 대신하기로 마음먹고 학원 컴퓨터 바탕화면에 글을 실어 놓았다.

영이가 말했다.

“너 너무 멀쩡하다. 가끔 전화해서 밝은 목소리 들으면 나 걱정 안 시키려고 애써 그러는 줄 알았더니.”

“응, 그래. 내가 너무 밝은 모습이니까 친구들 만날수록 손해다 손해. 다들 나 만난 후에는 긴장이 풀어져서 하던 기도 그만둬 버리잖아”

 

영이가 내 글을 읽고 나서 문자를 보냈다.

“친구지만 정말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영이가 신앙을 되찾기를 기도했다.

 

기 도

하느님, 저 오늘 하느님 얘기하려고 좀 무리를 했어요.

어때요? 저 잘했지요?

저번보다 훨씬 덜 피곤하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허리도 안 아프고 종기도 안 나네요.

저 안 아프게 해 주시라는 기도를 당겨서 들어 주신 셈인가요?

고마워요, 마음 약한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