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주님은 왜 ‘부족한 사람’을 쓰실까?

김레지나 2008. 8. 28. 19:35

 

 

주님은 왜 부족한 사람을 쓰실까?

 

요즘 도올 김용옥 교수가 ‘구약 폐기론’을 주장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신앙마저 흔들릴까 염려하신 차동엽 신부님께서 조심스레 반박하셨습니다. 우연히 그 기사가 실린 인터넷 사이트에서 차 신부님의 논지에 딴지를 거는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태현 신부님 강의와 본당 성경공부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하여 댓글을 달았습니다. “구약은 신약을 준비하고, 신약은 구약을 완성한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라도 신앙에 관심을 갖게 한답시고 종일 애썼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한 번도 다 읽어보지 못한 엉터리 신자입니다. 올해 성경 공부 시간에 주워들은 풍월이 제가 아는 성경 지식의 전부입니다. ‘신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답을 더 잘할 텐데. 괜히 나 같은 무식쟁이가 나서서 토론을 망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최근 배운 내용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최상의 사람을 뽑아 쓰시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한때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사람들이라면 몸도 건강하고, 머리도 좋고, 아는 것도 많고, 착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라야 훨씬 효과적일 텐데 말입니다.

 

제가 ‘나도 한마디’ 코너에서 성경에 관해 아는 체했던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그즈음 제가 배우고 정리해서 본당 홈피에 올린 내용을 때마침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성령께서 도우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성경에 정통한 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종일 댓글을 다는 동안 행여나 모르는 것이 나올까 걱정하면서 ‘아, 그렇지. 주님은 늘 이런 식이시지’라는 깨달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일에 전문적인 학자를 쓰지 않으시고, 저 같은 무식쟁이를 적당히 훈련시켜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왜 주님께서는 저와 같은 무식쟁이를 그 일에 쓰셨을까요? 제가 그런 댓글을 쓰는 능력이 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주님의 일을 하는 능력이 성령께서 잠시 허락하신 능력일 뿐임을 잘 알겠기에 교만해질 위험이 적습니다.

 

어느 홈피에 작년에 썼던 글을 올리려고 일 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문학적이지도 않고 ‘시’ 같지도 않지만, 그나마라도 어쨌든 제 능력 밖의 일이 확실합니다. 저는 작년 이전까지는 글 한 편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날마다 수 페이지의 글을 써서 일 년 동안 썼으니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쌓였습니다. 어느 한 부분을 들춰 봐도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재능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께서 저에게 큰일을 하셨음을 알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글이 잘 써질수록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커집니다. 아마 제 부족함을 아는 사람들은 제 글과 제가 누리는 평화를 보면서 좋으신 주님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간혹 제 글에 대한 칭찬 어린 댓글이라도 읽을라치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한테 공개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저를 아는 분들에게 공개하기는 두렵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난감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작년 가을에 하느님께서 제 마음에서 ‘사랑’을 모조리 거두어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슬픈 시험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스러웠고, 심지어 제 두 아들이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아도 전혀 사랑스럽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삭막하고 괴로운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제가 아이들을 유난히 사랑하는 것도 제 능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잠깐이었지만 그 시련을 통해서 사랑의 감정도 하느님께서 주셔야만 갖게 되는 것이고, 제가 가진 모든 좋은 점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도대체 저 혼자서는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요. 제가 숨 쉬고, 먹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하느님을 믿는 것까지도 제가 거저 받은 은총이라는 것을요. 그 점을 잘 알아차리라고 하느님께서는 저같이 한심하고 부족한 사람을 골라 쓰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보잘것없는 나귀를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라고 말하도록 이르셨습니다. 저도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볼품없는 나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저는 ‘분수를 아는 은총’도 언젠가 놓아버릴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나귀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평생토록 간구할 일입니다.

 

2007년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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