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인조 대리석으로 만든 성모자상을 사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수십년 전부터 갖고 있던 성모상이 아주 작아서 거실에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랜 냉담기간에 작은방 구석에 두고 돌보지 않아서 코끝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성모상은 안방에 모셔두고 새로 산 성모자상을 거실에 모셨습니다. 성모님께서 미소 띤 얼굴로 눈을 반쯤 감으시고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계신 모습입니다. 두 손을 모으고 성모님 품에 안겨 잠든 예수님의 모습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해서 웃기도 하고 고마움에 울기도 합니다.
성물방에서 여러 가지 모습의 성모상을 보았지만 아기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자상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약하디 약한 아기로 우리들에게 오신 엄청난 사랑과 하느님의 뜻에 ‘피앗’으로 응답하신 성모님의 아름다운 순종의 모습이, 그 놀랍기만 한 신비가 성모자상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자상을 볼 때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행복해지곤 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초등학교 3학년인 유지니오가 저한테 물었습니다.
“엄마, 왜 저번 성모상도 젊고 예쁜 모습이고, 이 성모님도 이렇게 예뻐? 성모님은 예수님 엄마라서 나이가 들어도 안 늙으신 걸까?”
“아니야. 성모님도 늙으셨지. 우리들처럼 고생 많이 하셨어. 사람들이 예쁜 성모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성모상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야.”
유지니오는 성모님도 나이게 맞게 늙으셨고 고통스러우셨을 거라는 제 설명을 못 받아들이는 눈치였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성모님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예쁘고, 영광스럽고, 우리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창조되셨고 예수님을 아드님으로 모셨으니, 어떤 고통이든 성모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 예쁘고 영광스런 성모님의 모습은 우러러보이기는 했지만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고통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었기에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제 고통이 힘들었듯이 성모님께도 고통이 실제적이었을 거라는 것을, 그 고통 때문에 성모님의 순종과 사랑이 더욱 값지다는 것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평생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준비하시고 걸어가셨다는 것을. 성모님의 그 고통을 이제야 아프게 묵상하면서 성모님을 뜨겁게 ‘엄마’라고 불러 봅니다. 그리고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 고통을 인내하신 성모님의 모습이야말로 제가 닮아야 할 모습이라고 간절히 다짐합니다.
언젠가 유지니오가 미술사 만화책을 읽고 나더니
“엄마, 왜 화가 뭉크네 가족은 전부 하느님을 믿었는데도 뭉크만 빼고 다 죽었어?” 라고 물었습니다.
“하느님 믿는다고 안 죽으란 법이 어딨냐? 하느님 믿어도 늙고 병들고 아프고 그렇지.”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유지니오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걱정이 되어서 유지니오가 읽던 만화책을 보았습니다. 뭉크의 엄마, 형제들이 뭉크만 빼고 다 일찍 죽었습니다. 뭉크의 아버지는 의사인데 무료진료를 하면서 식구들 먹을 것이 떨어져도 기도만 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절규’라는 유명한 그림은 그런 그의 불행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유지니오야,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해서 안 죽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야. 단지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어떤 불행이 닥쳐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지. 신앙은 분명 축복이야. 엄마 봐라. 하느님을 어릴 때부터 믿었어도 암에 걸렸잖아. 그래도 지금 기쁘게 지내잖아.”
유지니오가 고집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엄마는 죽지는 않았잖아.”
유지니오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세상 것들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했겠지요. 제 병이 걱정스러워서 더욱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작년에 치료받을 때는 “암은 나을 수 있는 병이야?”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볼 때마다 “그럼, 나을 확률 100%이지. 하느님이 든든한 빽이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큰소리쳤었는데, 제 말이 바뀌었으니 더 실망스러웠나 봅니다.
하느님께 그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 유지니오 뿐이겠습니까? 저는 대부분의 어른들도 하느님께 똑같은 의구심과 불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모님과 성인들에게서 영광의 모습만을 찾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간의 고통을 즐기시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성모님의 어떤 모습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성찰해 볼 일입니다.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만을 좇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행이 닥치면 쉽게 흔들립니다.
“하느님 믿어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느님이 계시다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게 이런 불행이 닥치지 않았을 거야. 하느님은 안 계시는 게 분명해.” “하느님이 전능하다면 기도원에 가는 버스가 굴렀을 리가 없지.”, “왜 성인 성녀들은 대부분 그렇게 큰 고통을 겪었을까? 고통을 주는 하느님이 정말로 자비하신 분일까?”
그런 의문들을 갖게 되면 하느님을 더 이상 찾아보려 하지 않고 돌아서기 일쑤입니다.
거실에 앉아서 젊고 예쁜 모습으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유지니오에게 답해줄 말을 한참동안 준비했습니다. 저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의 신비를 유지니오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유지니오에게 하느님 빽으로 100% 재발하지 않을 거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매 주 암에 대해 떠들어 대는 바람에 제 말을 믿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진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유지니오야,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한테 평균수명을 10년씩 연장시켜줬다고 생각해 봐. 또 세례 받은 사람들은 절대로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게 해준다고 가정해 봐.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고, 사고 당하지 않으려고 교회로 몰려들겠지? 그리고 틈만 나면 하느님께 사랑한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건 계산적인 사랑이야. 훌륭한 사랑이 아니지. 하느님은 그런 사랑 받고 싶지 않으실 걸. 성모님도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얼마나 괴로우셨겠니? 하지만 하느님과 인류를 사랑하셨으니까 고통을 받아들이신 거야. 그 고통 때문에 성모님의 사랑이 값진 거야. 성모님한테나 믿는 이들한테 고통이 닥치지 않는 건 아니야. 고통이 없으면 정말 훌륭한 사랑을 못할 거야. 하느님도 가치 있는 사랑을 못 받으실 거고.“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한다고 해도 유지니오가 어른이 되어서 고통이 큰 은총이 될 수 있음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오늘 저녁에는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기도문을 바치고 싶습니다.
착한 의견의 어머니께 의탁하며 드리는 기도
착한 의견의 어머니,
저는 지금 어머니의 사랑에 의지하여
저를 괴롭히는 갖가지 근심 걱정들과 온갖 회의와 의심들을
어머니 당신께 모두 털어놓으렵니다.
스스로도 모르는 길, 제가 아는 사랑스런 사람들,
책임져야 할 죄과들,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손해
짜증스런 일들, 저의 모든 의욕과 애착
저의 충고와 제가 보살펴야 할 일들, 잊어버린 일과 간직하고 있는 일들
저의 탐욕과 포기, 침묵과 외침
이 모든 하찮은 일에 너무 자주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으니
지금껏 제가 방관했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 모두를
착한 의견의 어머니이신 당신께 온전히 맡기오니
어머니, 굽어 살펴 주소서.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계시는 마리아님,
당신은 착한 의견의 어머니시니
길 잃고 방황하는 저희를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에 두려움 없이 저를 맡기오니
저를 받아주시어 당신 아드님 가신 길로 데려가 주소서.
아드님을 향하여 타오르는, 어머니의 그 지극한 사랑보다 더 큰 열정을
저희가 어디에서 찾으리이까!
지극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드님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으나 가슴 깊이 새기셨나이다.
어머니께서는 또한 온 몸에 깊은 상처를 입고 기진하여 끌려가는 아들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셨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십자가 밑에 서 계셨나이다.
그분의 시신 십자가에서 내리우니, 피땀으로 얼룩진 아들 예수님을 품에 안고 탄식하신 이여!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에 두려움 없이 저를 맡기오니
저를 받아주시어 당신 아드님 가신 길로 데려가 주소서.
어머니의 마음 이제야 깨닫습니다.
맑고 깨끗하며 선하시고 진실하시니
언제나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매일 새롭게 되기를 청하오니
어머니,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죽음에 이르러 제 눈이 흐려질 때까지.
모든 시련 이겨내어
아름답고 소박한 기쁨의 꽃송이를 어머니께 드리오니 축복해 주시며
또한 굳게 의지하며 청하오니, 어머니,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죽음에 이르러 제 눈이 흐려질 때까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온갖 근심 걱정이 저를 괴롭히나
저는 믿고 바라오니
어머니, 저를 홀로 내버려 두지 마시고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죽음에 이르러 제 눈이 흐려질 때까지.
이제 곧 죽음이 다가와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 저는 아쉬움이 없으니
어머니, 저를 떠나지 마소서,
죽음에 이르러 제 눈이 흐려질 때까지.
아멘.
'신앙 고백 > 레지나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 경품 타게 해주세요. (0) | 2008.08.28 |
---|---|
위험한 신앙간증 (0) | 2008.08.28 |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다면 (0) | 2008.08.28 |
미리 잡아 죽일 놈? (0) | 2008.08.28 |
'뜨끔' 저녁기도 (0) | 200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