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하느님, 경품 타게 해주세요.

김레지나 2008. 8. 28. 19:33

 

   레지오 회합이 끝나고 데레사와 바올라 어머님과 율리안나 어머님을 차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율리아나 어머님이 무릎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가신다기에 우체국에 내려 드렸고, 00동 로타리까지 가려면 다시 성당 앞을 지나야 했습니다. 바올라 어머님이 오늘 진마트 개장날이라 구경하고 싶으시다고 진마트 앞에서 내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맞다. 진마트 개장하는 날이지요? 만원 어치 이상 사면 ‘다라이’ 준다고 했는데.”

  광고 전단지에 ‘대야’라는 말 대신 ‘다라이’라고 적혀있어서 웃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 오늘이구나. 그럼 저도 갈래요. 경품추첨도 있잖아요. 제가 벽걸이 텔레비전 탈 테니까, 데레사는 냉장고 타, 바올라 어머님은 세탁기 타세요. 안되겠다. 우리 성당에 다시 들어가서 경품 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갈까요?"

   데레사가 깔깔대며 말했습니다.

  “맞다. 기도하고 가면 되겠네. 근데 나는 냉장고 있는데.”

  “그래? 그럼 바꾸지 뭐. 내가 냉장고 할께. 데레사가 텔레비전 해, 그럼.”

  저는 이미 받은 경품을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진마트에 갔더니 싼 게 정말 많았습니다. ‘다라이’ 색깔이 예뻐서 욕심이 났습니다. ‘다라이’를 두 개 받고 싶어서 저녁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일부러 조금만 샀습니다. 공짜라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욕심나는 게 병이다 싶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품추첨권을 주길래 주소와 이름 등을 적어서 추첨함에 넣었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경품 타게 해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누구나 그런 기도는 유치하고 실없는 기도라고 생각하겠지요. 또 경품 물건들이 집에 없다면 몰라도 낡은 거라도 있으니까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습니다.


  문득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우리들이 흔히 하는 기도가 “다라이 타게 해주세요.”나 “경품 타게 해주세요.”하는 기도처럼 유치하고 실속 없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은총은 끝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전능과 사랑의 한계를 우리들이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래알만큼의 은총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실 수 있는 은총은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상상 못할 만큼 많고 크겠지요.

  하느님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필요한 좋고 값진 은총들을 주고 싶으셔도 우리들이 그 은총에 관심이 없으면 주실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진짜 좋은 것들은 정작 다 제쳐 두고 “경품 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나, 경품보다 더 나은 것들이지만 어쨌든 세상 것들만 자꾸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하느님 입장에서 보시면 그게 그거고, 다 유치하고 실속 없을 겁니다.


  그럼, 가장 실속 있고 값진 은총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얼마 전에 받은 메일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루카 10,42)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까닭은 활동생활을 현세에서 끝나고 말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관상생활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해설에 따르면, 마르타는 마리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리아가 마르타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귀중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다니고 활동을 하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관상생활에 쓸 것 같으면, 더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고 교회에 더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소화 데레사 성녀가 그러했듯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관상자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기도와 성체조배 중에서)“


  신앙인으로서 제일 실속 있고 값진 기도는 “하느님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고, 의탁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세요.” 라는 기도가 아닐까요? 그렇게만 되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많겠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겠지만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은 훨씬 더 적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보다 더 나은 단계의 은총을 끊임없이 구하며 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흔히 무한하고 전능한 하느님을 우리들 생각의 작디 작은 상자 안에 가두어 버리고 상자 밖의 우주와도 같이 커다란 은총들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보시고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완덕으로 가는 계단은 끝이 없을 텐데, 지금쯤 저는 겨우 두 세 계단 올라서서 멈추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 크기는 끝이 없고 사랑하는 느낌의 색깔 또한 셀 수 없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구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살았는지요. 하느님께서는 제가 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주시려고 갖가지 은총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제 은총의 그릇이 경품 타게 해달라는 기도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하찮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정작 저한테 가장 좋은 은총들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사귀고 하나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겸손한 자녀의 청을 즐겨 들어주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주님을 위해서 사랑밖에 해드린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랑밖에 원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큰 사랑을 가지고 행한 희생과 기도는 주님 대전에 위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청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야고5,16)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로 많은 은총을 내려 주시며 많은 영혼을 구하시는 것입니다. (묵상기도와 성체조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