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위험한 신앙간증

김레지나 2008. 8. 28. 19:32

   저는 개신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는 시내 전역이 한 구역이어서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했습니다. 그래서 원하지는 않았지만 3년간 매주 예배를 보고 성경수업을 들었습니다.

  1983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9월 1일에 KAL 여객기가 예정항로를 이탈해서 소련영공으로 들어갔다가, 이를 미국 첩보기로 오인한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여객기에 타고 있던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한 중창단이 학교에 와서 찬양을 하고,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폭파된 비행기를 타려고 예약한 적이 있어요. 사정이 생겨서 KAL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그 다음 비행기를 탔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쓰시려고 사고 비행기를 타지 않게 하셨나 봐요.”

  저는 그 중창단의 간증을 듣고 몹시 언짢았습니다.

  “아니,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나라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인데, 애도는 못할망정 그 비행기를 안 탄 것이 하느님 뜻이라고? 그럼 그 비행기 탔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쓸 데가 없어서 죽게 했다는 말이야? 무슨 간증을 저런 식으로 하냐?“

  친구들은 그 찬양단의 간증에 감동을 받았는지 역시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며 좋아했고, 되레 화를 내는 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작년 9월에 레지오에 입단했습니다.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눈썹도 없었고, 발바닥이 마비되어 있었고, 몹시 피곤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그래도 입단 권유를 받고 성모님께서 이웃과 ‘관계’를 더 갖고, 여럿이 함께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시겠다 싶어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레지오 활동을 해 본 이후로 오랜만이라서 설레기도 했습니다.

  제가 들어간 쁘레시띠움에는 작년 3월 말에 저와 동갑인 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율리아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율리아 어머님의 딸은 저와 같은 암에 걸렸었는데 폐로 전이가 되어서 남편과 7살 난 아들을 남겨 두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율리아 어머님은 저를 보면 죽은 딸 생각이 나시는지 묵주기도를 하실 때 슬쩍 슬쩍 눈물을 흘리곤 하셨습니다. 저는 싱글벙글 웃다가도 율리아 어머님이 우시면 금세 마음이 아파서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우리 딸은 죽는 순간까지 레지나처럼 그렇게 웃고 지냈어. 얼마나 밝았는지 몰라. 우리 딸은 병을 너무 늦게 발견했던 것 같아. 수술도 못 해보고 4년간 투병생활 하다가 죽었어. 레지나도 아무 거나 먹지 말고 식이요법 잘 해. 내가 레지나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 우리 딸은 얼굴도 예쁘고 글도 정말 잘 썼어. 하느님께서 낫게 해주셔서 글로 하느님을 전하게 하실 거라고 우리 딸을 위로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

  율리아 어머님은 당신 마음이 아프실 텐데도 제 평화를 진심으로 기뻐해주시고, 제가 팔을 쓰는 일이라도 하면 당신이 제 일을 빼앗아 대신 해주셨습니다.

  율리아 어머님께 작년에 같은 병실을 썼던 마리아 자매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따님이 마지막까지 밝게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커다란 은총이예요. 제가 항암치료 후에 입원해 있을 때 병실을 같이 썼던 자매님이 있어요. 신장암 말기였는데, 몇 달 동안 거의 아무 것도 못 드시고 누워만 계셔서 뼈만 앙상하게 남으셨더라구요. 입원하시기 전에 대세를 받으셨다는데, 죽음이 두렵다고 하시고 하느님을 원망하시더니, 병자성사를 받으신 후로는 웃으시면서 당신 장례절차를 가족과 의논하실 정도가 되었지요. 그 분의 변화를 보고 놀란 가족들이 성당에 나가겠다고 했지요. 저는 정말로 마리아 자매님이 부러웠어요. 저도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께서 주신 평화 속에 머물러 있고 싶어요... 또 제가 알고 지내는 신부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자매님은 40대에 암으로 돌아가셨대요. 그 분은 말기 암의 고통을 일부러 진통제도 맞지 않고 견디셨대요. 일부러 참아 받은 그 고통을 사제들을 위해서 봉헌하고 싶으셨대요. 신부님이 그 마음에 감격하셨고, 한편 마음이 아프셔서 많이 우셨다고 해요. 진정한 은총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빨리 죽든 오래 살든,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 품에 안길 준비를 잘 하는 거요. 모든 순간들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헌하고 죽을 수 있는 것은 더없이 거룩한 일이예요. 그런 분들이 정말 하느님께 큰 은총을 받으신 분들이에요.”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마지막 말씀처럼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고 하느님 품에 안긴 분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임종시에 겪게 될 고통이 두렵고, 그분들처럼 임종의 순간을 잘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임종의 고통이 제게 남아있는 무겁고 힘든 숙제처럼 여겨집니다.

  다른 자매님들이 율리아나 어머님이 계실 때 “레지나는 밝게 지내니까 꼭 나을 거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니까 이제는 걱정 없겠어.”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율리아나 어머님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앞으로 일은 몰라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 덕에 기쁘게 지내고 있지만, 제 고통을 담는 그릇이 형편없이 작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로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저처럼 강렬한 위로를 받지 못하신 분들이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가치 있게 사시는 거예요. 별난 영적 체험이 없어도 하느님 곁에 항구하게 머물러 있는 분들이 훨씬 더 존경스러워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병이 낫는 것도, 아픈 것도 다 하느님의 은총이에요.”

  율리아 어머님이 반가워하는 표정을 잠깐 지어보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딸은 세례 받고 신앙생활도 몇 년 못했는데,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어.... 인간시대에서 50대로 보이는 암환자 일상을 본 적이 있어. 그 여자는 꽃꽂이 강사였다는데, 아주 비쩍 말랐더라고. 병실에 꽃을 꽂아두고, 참 예쁘다, 더 오래 살고 싶다, 더 살고 싶다. 라고 말하는 거야. 눈물나서 못 보겠더라고... 근데 우리 딸은 4년간 투병생활 하면서도 한번도 더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 딸이 늘 나를 달랬어. ”엄마, 속상해 하지 마. 엄마는 안 죽을 것 같아?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거야. 하느님이 빨리 부르시면 하는 수 없지. 내 소원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아들은 나중에 사제가 되면 좋겠어.“ 그러는 거야. 우리 딸은 한번도 더 살고 싶다고 한 적이 없었어. 어쩌면 그렇게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몰라.”

  “그럼요.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과 친지들과 화해하고,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총이래요.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은 아마 ‘하느님 은총 안에서 잘 죽는 것’이 아닐까요? ‘웰빙'에는 요란하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웰 다잉’에 대한 준비는 하려들지 않으니 딱한 일이지요.... 제가 아는 어떤 50대 자매님은 오랜 냉담 중에 암에 걸리셨대요. 제 이야기를 들려 드렸고, 그 분 어머님이 설득하셨지만 아직 냉담을 풀 마음이 없으시대요. 그 자매님은 하느님이 계실 리가 없다고 해요. 하느님이 계신다면 살면서 큰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병을 주셨을 리가 없다구요. 정말 안타까워요.”


  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화를 체험하고 친구들에게 신앙을 가질 것을 꾸준히 권하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누릴 수 있는 제 평화와 기쁨을 세상에 외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엉뚱할 때가 있습니다.

“너 사는 동네에 암이라면 다 낫게 해주시는 분이 있으시대. 그 모임에 한 번 가봐.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을 수 있다는데. 항암치료 꼭 받아야 하냐?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치료를 그만 두면 어떨까?”

  저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웃음으로 답하곤 합니다. 저도 힘든 항암치료를 안 받아도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참기 힘들만큼 아플 때는 덜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어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듯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어서 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다른 사람보다 덜 사랑하셔서 병에 걸리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작업은 태초에 일어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발달하고, 예술이 발달한 것도 모두 하느님께서 매 순간 허락하신 창조작업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매일 쉬는 한 숨 한 숨까지 모두 하느님께서 새롭게 우리를 창조하신 업적입니다. 의학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유익한 창조물의 일부이니, 의학에 의지하는 것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부족이라고 탓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들이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 모두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매 순간을 창조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는 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만 특별히 더 사랑하시고, 그들만 구원하시려는 분이 아니십니다. 장애인이나, 큰 병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나,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 사고로 죽은 이들, 병으로 죽은 이들, 모두 다 하느님께서 덜 사랑하셔서 그런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잘못해서 벌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세상에서 겪은 고통의 양만큼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왕 겪는 고통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참아 받을 수 있다면 그 고통처럼 값진 것이 또 없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겪었던 고통이 하늘나라에서 이왕이면 영광스럽게 빛날 수 있도록 고통의 가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얻고 싶습니다.


  신앙간증을 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에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어떤 불행도 없앨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부정적 태도가, 죄가... 암에 걸리게 한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들에게 치유보다는 상처와 좌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생애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두려움 없이 한 평생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만이 우리 모두를 위한 치유의 간증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는 곳에 희망과 기쁨을 베푸시는 주님의 애틋한 사랑을 찬미합니다.

  “주님,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주님,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당신께 의탁하고 물 위를 걷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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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자 빛고을에 감동적인 글이 실려서 소개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슬프고 힘들 텐데도, 오히려 그 고통으로 인해 주님께 의지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리는 문봉임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물질도, 건강도 아니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죽음이 온다 해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두려움 없는 평화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고 계신’ 문봉임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 모두를 이토록 사랑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에게 세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봉임 요셉피나 / 원동본당


 남편이 항암 방사선 치료를 지겹도록 받으며 힘들어하던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주님을 부르고 기도했던 것은, 더 이상 고통, 아픔을 덜 달라는 바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늦게나마 주님을 알고,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니 주님을 의지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암이란 말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어가며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찾은 날들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2년여 동안 무던히도 아파하고, 먹지고 못하며 피를 토해서 병실을 흥건히 적셔 간호사들을 힘들게 한 암.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누가 암이라면 그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짠한 마음에 항상 가슴 아파했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 식도암이 찾아왔습니다.

 평생 함께 살면서 무던히도 저를 힘들게 했던 그인데.. 모두들 남편더러 가는 날까지도 못 뉘우치며 갈 거라고들 했습니다.

 남편은 우연한 계기로 대세를 받았습니다. 떠나기 3일 전, 저는 시간이 급해 밤이라도 좋으니 대세를 빨리 해달라고 했습니다. 대세라도 못하고 가면 제가 살면서 죄를 지은 것만 같고 후회할 것만 같아서...

 근데 대세를 받으면서부터 남편은 뉘우친 것 같았습니다. 생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그인데, 저한테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리를 받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리를 기쁜 마음으로 다니게 되었고 개근도 하게 되었지요. 지금껏 성경쓰기도 잘하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 세례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 앞에 어떤 두려움과 죽음이 온다 해도 이 모두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 2007년 4월 15일 / 빛고을 제 1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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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저와 함께 해주세요. 주님!


                                         백연숙 요셉피나 / 강진 본당 성전 공소


당신…, 방사선 치료 받는 거 이제 … 그만 받으면 안 될까?”

“왜?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으~응, 그러니까 그게… 어제 면담했는데… 이제는 손쓸 수가 없대. 골수에까지 문제가 생겨서… 우리 모두 희망을 품고 끝까지 온 힘을 다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당신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말 하게 돼서 정말 미안해. 당신이 많이 놀라고 실망했지? 당신한테 해줄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화가 나고 미안해.”

“아니야, 내가 먼저 가서 천국 문에서 당신 기다리고 있을께.”

“고마워, 당신 두려워하지 마. 우린 잠시, 아주 잠시만 헤어져 있는 거야. 사람은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이고 어쩌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먼저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 나 당신 웃으면서 보낼 수 있으니까 당신도 웃으면서 가는 연습해. 예수님 만나면 손 놓지 말고 꽉 잡고 가. 뒤돌아보지 말고 …. 그리고 그동안 당신 맘 아프게 한 게 있으면 용서하고… 당신하고 살면서 행복했어. 당신 정말 사랑해.”

“나도 당신 사랑해. 나 여태까지 살면서 정말 감사하는 게 첫째는 당신 만나서 결혼한 것이고 두 번째는 당신 통해서 예수님 알게 된 거야. 당신한테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 당신하고 재미있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는데…. 예수님은 왜 날 이렇게 빨리 데려 갈려고 하실까. 하늘 나라엔 도로공사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음을 코 앞에 둔 남편이 걱정할까 봐. 가슴으론 눈물이 홍수가 나는데도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를 했다. 남편 또한 그랬을 것이다. 며칠 뒤 남편이 원해서 광주 호스피스 병동으로 내려왔다. 한번은 그 엄청난 통증에 시달리다

“나 이렇게 죽도록 아픈데도 감사하다고 해야 해?”

“응, 그래도 감사하다고 해.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 고통의 깊이를 내가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그런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같이 죽고 싶었다. 날마다 좁은 침대에 올라가 가슴 아래론 감각마저 없어져 버린 앙상한 남편 옆에 붙어 앉아 예수님이 우리에게 늘 말씀 하시듯

“두려워 하지 마. 당신 두려워 하지 마. 나 당신 옆에 있어.”

이 “두려워 하지 마.”란 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광주로 온 지 10일째 날. 아빠의 임종을 지켜보며 11살 박이 막내아들이 “아빠 잘가~ 안녕…. 그런데 아빠, 하늘나라에 가도 우리 잊으면 안 돼. 아빠 사랑해” 하며 입맞춤을 했다. 아빠가 예수님 손 놓치니까 울지 말라고 했더니 울음을 참으며 ….

그가 떠난 지 395일이 됐다. 남편과의 약속 때문에 웃으면서 그를 보냈는데, 난 지금 울고 있다. 많이 힘들고…. 사람은 원래 혼자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란 걸 잘 알면서도…그럼에도 주님께 감사할 건 왜 그렇게도 많은지…. 또한 주님만이 치유와 위로를 주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난 오늘도 주님께 떼를 쓰며 매달린다. 제발 나와 함께 해주시라고… 당신으로 나를 채워주시라고….


                          빛고을 제 1413호 2007.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