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과 피부미용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려 보인다는 찬사를 듣기 위해서 연예인들은 앞 다투어 쌩얼 셀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을 뽑는 ‘동안 선발 대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젊게 늙고 싶다는 열망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질병처럼 심각하다지만 건강해지려는 욕망 또한 정상적인 관심의 범위를 넘어선 듯 합니다. 너도 나도 죽는 날까지 청년처럼 건강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인간을 죽는 존재로 섭리하신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최대한 미루려고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요즘 저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지만 그리스도의 향기 풀풀 풍기며 아름답게 사는 한 언니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 언니는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다닌다는 직장동료들의 핀잔에 속상해하는 법도 없고, 낡고 찌그러진 차를 몰고 다니면서도 남들 시선에 개의치 않습니다. 젊고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에 정성을 쏟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영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마주하고 있으면 절로 행복해집니다. 언니는 시간의 십일조도 해야 한다며 매일 미사하고, 기도하고, 봉사활동을 합니다. 몸이 약해서 쉽게 피곤해지는 저는 직장생활과 집안일과 기도생활을 완벽하게 해내는 언니가 부럽기만 합니다. 언니는 그저 아기처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언니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마음 아파하고 울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언니에게 사랑과 위로의 말을 가끔 건네십니다. 언니를 사랑하는 하느님을 느낄 때면 그 사랑에 감격해서 같이 울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 언니에게 제일 큰 고민은 대학 들어간 아들이 냉담 중이라는 겁니다. 언니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아들의 냉담이 더 마음 아플 겁니다. 언니는 성녀 모니카와 같은 끈기로 아들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마도 언니의 아들을 시련을 통해 단련하시려나 봅니다.
언니의 아들이 냉담 중인 이유는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해서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통을 주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신심 깊은 언니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답니다.
죽은 후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고통의 가치에 대해서 완전히 깨닫고 고통을 통해서 정화된 후에 하느님을 영원히 찬미하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죽은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되겠지요.
창조주 하느님을 철썩 같이 믿는 저는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고통은 피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말기 암환자들도 죽음보다 고통을 더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도록 창조하실 수밖에 없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 쏟아지는 원망을 조금이라도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제 딴에는 그럴듯하게 생각되는 가설을 언니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글쎄요. 저도 한 때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께 따질 생각이었거든요. “하느님,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편차가 너무 크지 않나요? 왜 그렇게 섭리하셨어요?”라구요. 근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합쳐서 영원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게 맞춤형으로 보상해주시지 않을까요? 세상 사람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듯이, 사람마다 채워야 할 은총과 고통의 그릇도 제각각이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 사랑으로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고통이 더 많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고통이 없다고 가정해 봐요.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살기 귀찮아지면 쉽게 자살하겠지요. 하느님은 우리를 귀하디 귀하게 창조하셨는데, 생명을 버리는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요? 또 고통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고 생각해 봐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질 것 아니에요?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면 인간이 겁을 상실하고 하느님을 마음대로 부리려고 할지도 몰라요. 제가 하느님이라도 인간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고, 인간에게 가치 있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 고통을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고통이 없으면 감동적이고 훌륭한 사랑을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부족한 생각으로 하느님을 변호한다고 해도, 하느님을 맞대고 뵙는 날, 빛을 주셔야 알 수 있는 섭리를 만분의 일이라도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만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지내겠지요.
하지만 남들이야 제 설명을 믿건 말건 저는 제 맘대로 세운 가설로도 하느님을 족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유한한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 없겠지요. 제가 머리로 고통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가슴으로는 몇 백 배 더 하느님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고통을 열망했다는 성인들의 마음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가 거저 받은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지금은 비록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대도 하느님은 정말로 사랑이시라는 것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완전한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을 뵙지 않고 믿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고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당신께 대한 갖은 오해로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우리 마음 안에 숨어 계시다는 것을.
“주님, 당신이 사랑이심을 더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해주세요. 마땅히 사랑받으셔야 할 당신 마음을 위로하는 작은 자로 살고 싶어요. 당신이 사랑이심을 제 삶을 통해 증거할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주세요. 저도 언니처럼 세상일에 가치 두지 않고, 그저 당신을 위해 제 할 일 기쁘게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진정으로 아름답게 늙는 기준은 외모도 건강도 아니고 오직 사랑뿐임을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도와주세요. 주님, 저도 그러고 싶어요. 제가 당신께 마음을 열고, 제 의지로 당신께 머물러 있는 한 당신을 더 잘 알고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리라 믿어요. 주님,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이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불평과 비난으로 인해 수난 당하고 계시지요. 제 마음도 아파요. 그리고 저도 언제나 당신 수난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정말 죄송해요. 그럼에도 저를, 온 인류를 사랑해주셔서 고마워요. 이 세상 고통 불평하지 않게 제 손 꼭 잡아 주세요. 제 모든 고통 사랑으로 봉헌하고, 당신이 부르시는 날 오로지 기쁨만 간직한 채 당신 품에 안기고 싶어요. ”
죽음에 이르니 참 좋다.
김레지나
철학자 칸트가 죽으면서 한 말이에요.
“Es ist gut.”
“죽음에 이르니 참 좋다“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래요.
내 인생 최고의 목표는
주님이 주신 사랑의 바톤 놓치지 않고
주님께 기쁨으로 달려가는 것이지요.
주님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부르는 날
기쁨으로 오라 하시면
기쁨으로 달려 가겠어요.
'신앙 고백 > 레지나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한 신앙간증 (0) | 2008.08.28 |
---|---|
성모님도 늙으셨을까? (0) | 2008.08.28 |
미리 잡아 죽일 놈? (0) | 2008.08.28 |
'뜨끔' 저녁기도 (0) | 2008.08.28 |
레지나야,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단다 (0) | 200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