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진 선생님의 성경 특강 네 번째 시간
예수님 부활을 축하합니다.
이번 주에는 행사 구경하시려고 많은 신자분들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김양진 선생님께서 창세기 진도는 나가지 않고, 30분 동안 성경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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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교실(구약):자료-04
성경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1)
성경은 무엇인가?
- 성경은 문헌(문학작품)이다.
성경은 종교적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를 담고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읽을 때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게 된다.
성경의 저자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의 저자는 당연히 하느님이시다. 한편으로 성경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은 인간 저자들이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저술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의 형성(문헌 가설)
체험- 증언- 구전-단편적인 기록- 수집- 편집
- 야휘스트계 문헌 (J=Jahwist)
*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Jahweh)라고 부르며, 기원전 950년 경 솔로몬 왕 시대에 유다 지역에서 형성된 문헌이다.
* 논리성이 결여된 듯이 보이지만 다양하고 활기찬 문체로 삶의 근분 문제들에 대한 핵심을 찌른다.
* 하느님을 의인화하여 자상한 분이지만 초월적인 본직을 지닌 분으로 묘사한다.
* 유다 왕조와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장남 이외의 인물들을 강조한다(예: 이스마엘과 이사악, 에사오와 야곱).
- 엘로히스트계 문헌 (E=Elohist)
* 하느님의 이름을 엘로힘 Elohim으로 부르며, 기원전 850 년경부터 북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헌이다.
* 문체는 소박하고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우나 딱딱한 면도 있다.
* 하느님은 인간과 거리가 먼 초월자로 묘사된다. 인간과의 관계는 꿈, 환시, 천사, 구름, 불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된다.
* 윤리관이 엄격하고, 우상 숭배를 단죄하고, 이방인 배척 사상이 강하다. 예언자들에게 관심이 크고 모세를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부각시킨다.
- 신명기계 문헌 (D=Deuteronomium)
*신명기 (Deuteronomium)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원전 650년경부터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 형성된 문헌이다.
* 문체는 세련되고 설득력이 강한 웅변적인 설교체이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분이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나 잘못을 벌하고 질투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 예언자나 왕들의 권위에 앞서서 레위인들, 사제들의 권위를 강조한다.
- 제관계 문헌 ( P=Priest-Codex)
* 제관(Priest)들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기원전 586년 바빌론 유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본다.
* 문체는 객관적이고 조직적인 체계로 하느님과 세상의 본질에 관하여 신학적인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준다.
* 하느님을 초월자로 묘사하며 의인화를 피한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이 꿈이나 천사 등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 하느님과 백성간의 중재자인 사제직을 강조하며, 축제일이나 전례에 관한 규정이 많다.
성경의 최종적인 편집은 제관계 문헌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시기는 바빌론 유배네서 돌아온 이후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유의할 사항들
- 시대적 배경
- 무수한 필사 (筆寫) 과정
- 전후 문맥과 지역적 특성
- 다양한 문학 양식
- 상징적 표현
- 여러 언어를 거친 번역물(飜譯物)
- 올바른 해석의 권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은 교회의 공식적인 권위(교도권)에 맡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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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정리)
요즘 도올 김용옥 교수가 구약폐기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올이 <노자와 21세기>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도덕경>을 강의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 강의를 들어보면 도덕경을 강의하는 건지, 자기 자랑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잘난 척을 했습니다. 그 후로 이수경이라는 학자가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내어 도올의 강의가 엉터리임을 증명했습니다. 도덕경 처음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道可道 非常道 明可明 非常明
도올은 <노자와 21세기>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같은 구절을 이수경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꼭 ‘도’라고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이름으로 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 그 이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즉, 개 이름을 부를 때 꼭 그이름으로 부르지 않아도 그 개을 지칭할 수 있는 것처럼,
‘도’를 ‘도’라고 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도 불러도 ‘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라는 이름에 매이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도덕경 첫 부분,‘道’ 의 본질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도올은 엉뚱하게 해석했습니다.
도올이 도덕경을 엉터리로 강의하더니, 이번에는 구약을 인간이 쓴 거니까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무엇입니까?
불교신자, 유교신자, 천주교 신자,... 공산당,, 과학자, 수학자,시인,,, 등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성서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첫 번째 창조이야기에서 말씀드렸듯이 창조이야기를 수학책이나 과학책 보듯이 하면 안됩니다.
- 성경은 문헌(문학작품)이다.
성경은 종교적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를 담고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읽을 때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게 된다.
즉,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눈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보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읽힙니다.
성서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은 신서(神書) 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직접 기록하신 책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인간이 쓴 책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느님의 저술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저술입니다.
내가 크레파스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글씨를 썼다면, 그 글씨는 누구의 글씨일까요? 내 글씨일까요? 크레파스의 글씨일까요? 나는 크레파스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크레파스도 내가 없다면 글씨는 쓸 수 없습니다.
즉, 내가‘ (주인)主’, ‘1차적 원인’ 이고 크레파스는 ‘도구’, ‘2차적 원인’ 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서는 하느님이 1차적 저자이시고, 인간이 2차적 저자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양쪽이 함께 저자의 자격을 갖습니다. 인간이 성서를 쓰도록 도우심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빨강 크레파스로 글씨를 쓰면 빨강글씨가 나오고, 파랑 크레파스로 글씨는 쓰면 파랑글씨가 나옵니다. 하느님도 어떤 사람들 쓰시되, 그 사람이 설령 서투르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글을 쓰도록 하십니다. 무식한 사람을 갑자기 박사로 만들어서 쓰시지는 않습니다. 성경저자가 철학적이고, 지식을 갖춘 제관이라면 철학적으로 성경을 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창세기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성경저자가 이야기꾼이라면 두 번째 창조이야기처럼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각 권이 중심사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받아 쓴 글씨를 제가 못 알아보겠습니다. 맞나 모르겠네요.)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구약성서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의 어떤 한 구절을 갖고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어느 특정한 구절만을 문제 삼는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성경은 원본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수 많은 필사본이 있습니다. ( 성당 홈페이지-사랑방 게시물 484번-에 ‘성경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파일을 열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필사한 성경을 또다시 필사하고, 필사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당시에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했습니다. 파피루스는 식물의 줄기를 잘라서 두드려서 곱게 짜맞춘 종이입니다. 따라서 면이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글씨을 알아보기 힘들 경우가 있습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적힌 성경을 필사하고, 또 필사하다보면 부분적으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새깃털이나 생선뼈로 글씨를 썼기 때문에 뭉개지고 번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한 번 필사가 잘못된 부분은 그 후로도 계속 잘못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각하 환영”이라는 글자를 필사하다가 “대령 각하 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필사하는 사람이 그 구절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즐감하셈”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그 말은 “즐겁게 감상하십시오”라는 뜻이랍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잘 모르는 용어입니다. 성경을 필사할 때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사를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후문맥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자 하나 하나에 치우치면 해석의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주물러 준다”라는 표현을 조직폭력배가 쓴다면 “한대 갈겨준다”라는 뜻이겠고, 엄마가 아기의 배를 주물러 준다면 “낫게 해주겠다”라는 뜻이겠고, 요리사가 사용한다면 조리법을 뜻하게 됩니다.
“우리 아빠 개소리 시작했어”라는 말은 버릇없는 아이의 말로 해석될 수도 있고, 여름에 아빠가 보신탕 먹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는 말로 사용되었다면 유머감각이 풍부한 아이의 표현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문둥아”라는 표현은 경상도 사람들은 친구를 부를 때 쓰는 표현입니다.
즉,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도 전후문맥, 상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다양한 문학적 양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시, 민담, 전설, 영웅담, 교훈, 역사, 예언 등
성경에는 상투적인 표현도 나옵니다.
“백년해로 하십시오.”이 말은 결혼식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여기 고이 잠들다”라는 표현은 묘비에 사용되는 말이고, “옛날 옛적에”라는 말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 파라오 통치하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사명을 주실 때 모세가 하느님께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말주변도 없고 자격이 없습니다.” 라구요.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네가 능력을 갖춰야한다고 하지 않았다. 너는 내 도구로서 가서 전하기만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말들은 흔히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하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그런 표현을 소명양식(召命樣式)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상징적 표현이 있습니다.
“낙지 대가리” “주걱턱” 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하지만 전두환, 이순자 시절에는 모두 다 알아들었습니다.
여호와증인들은 묵시록 14장 1-5절 말씀을 해석해서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은 144000명 뿐이라고 말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해석입니다.
1440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계산된 숫자이냐면,
12 × 12 = 144
144 × 1000= 144,000
그 당시 사람들은 12 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년은 12달, 이스라엘 12지파, 예수님 12 제자,,,,,,,
그 완전한 숫자 12의 제곱이 144입니다.
또, 당시 사람들에게는 1000이 ‘충만한 숫자’를 의미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를 셀 때 만 단위로 끊어 읽지만 서양사람들은 1000단위로 끊어 읽습니다.
완전한 숫자 12의 제곱 × 충만한 숫자 1000 = 144,000
즉 144,000 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것은 “온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증인들은 성경에 명시된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144000명만 구원된다고 선교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하느님께서 144000명만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이라면 저는 절대 그런 하느님 믿지 않을 겁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또 묵시록 13장의 말씀에 666 이라는 숫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네로황제 이름을 의미합니다. 그리이스 신화에는 알파벳 글자마다 해당하는 숫자가 나옵니다. 네로 라는 이름의 알파벳을 숫자로 옮겨서 합치면 666 이 나옵니다.
또 성경은 여러 언어를 거친 번역물입니다.
구약시대의 언어는 히브리어였고, 일부는 아람어였습니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글자를 쓰고 싶으면 “ㅎㅎㄴㅇㅅㅅㅇㅊㅈㅎㅅㄷ” 라고 썼습니다.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고, 맞춤법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히브리어성경이 희랍어로 번역되고,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고, 영어, 불어로 번역되고,,, 한글로 변역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성서사본만큼 사본이 많은 책은 없습니다. 그래서 <원문비판>을 해야합니다. 원문비판이란 성서학자들이 사본들을 모아서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것을 연구해서 성서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경은 라틴어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까지 연구해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올바른 해석권한은 교회의 공식적인 권위(교도권)에 맡겨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홍수기간도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성서을 편집한 사람이 그런 차이가 있는 이야기들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아놓았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우주관, 과학지식, 윤리관, 생활양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카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느님께서 카인의 이마에 표를 찍어주신 것은 동태복수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카인이 살인을 했다고 해서 카인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당시에는 인신제사(人身祭祀) 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시의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119장 105절 말씀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성서를 보면서 빛과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서는 믿음의 책이고, 규범의 책이며 하느님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세 번째 강의 프린트물에서 예고된 부분을 공부합니다. 숙제하십시다. ^^*
'성경, 지혜의 샘 > 김양진 선생님의 성경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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