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특강 둘째 강의(2007, 3, 21)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요즘 저는 유신시절에 20년간 감옥생활을 하셨던 신윤복님의 <동양고전독법> 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이다”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우주 앞에 숟가락 하나로 마주서는 격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읽을 때는 우리의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요한 16, 13) 그러니 성경을 읽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천천히 명오가 트일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들 준비된 수준에 맞추어 천천히 주신다고 해도 충분히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우리들 마음만 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경(五經)
오경은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합니다.
오경의 뜻은 히브리 말로 ‘토라’ 라고 합니다. (뒤에 붙인 프린트물 참조하셈)
토라란 ‘율법서’, ‘바른 가르침’. ‘지켜야할 도리’,‘도(道)를 말합니다.
딱딱한 법을 말하는 율법서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바른 가르침, 지켜야할 도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경을 보면 하느님께 가는 길이 보입니다.
창세기(創世記)
창세기의 히브리어 이름은 ‘브레쉿’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인들은 각 성서의 첫마디를 그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브레쉿’이란 창세기의 첫 마디인 ‘한 처음에’라는 말입니다. 그 브레쉿을 그리이스어로 번역하면서 ‘게네시스’(기원,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게네시스란 말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창세기’라고 부르게 됩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창조될 때의 기록’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태고사, 원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인류가 나타난 지는 50만년 전쯤이라고 하는데 역사를 기록한 것은 수많은 시간이 지나서부터입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사실을 말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시집과 수학책을 보는 자세는 다를 수 밖에 없고, 달라야합니다. 시에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써도 괜찮습니다.
성서를 오늘날의 역사서처럼 본다면 성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연대, 지리, 생물,등 과학적인 것들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시집을 수학책 읽듯이 분석하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그럼 왜 창세기를 썼을까요?
이스라엘인들의 역사관은 신앙이라고 전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창조이야기의 초점은 이스라엘인들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세 가지 믿음을 고백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느님은 나를 비롯한 우주 만물을 지으신 유일한 창조주이시다.
-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인간이 지은 죄 때문이다.
-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 인간과 화해하시려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친구와 창세기를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똑같은 창조 이야기를 두 가지로 쓴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 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는 두 가지 문헌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창세기 1,2-2,4 ㄱ 까지입니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창세기 2,4 ㄴ - 3,24 까지입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제관(사제)들이 쓴 책이라서 ‘제관계 문헌’ 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야휘스트계 문헌’이라고 합니다.
오늘 배울 부분은 첫 번째 창조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천지창조 이야기는 바빌론 유배시절에 쓰여진 제관계 문헌입니다.
비참한 바빌론 유배시절에 이스라엘인들이 고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계약을 맺은 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고, 약속의 땅도 빼앗기고, 민족도 뿔뿔이 흩어지고, 다윗왕정도 끊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셨구나. 우리와의 계약을 파기하셨구나. 그럼 우리가 믿을 데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각 나라마다 믿는 국가신이 있었고, 그 신이 그들 나라를 돌봐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자기네 신이 다른 나라 신보다 강해서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역사에는 갖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부분 승승장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우월한 신이 자기네들이 믿는 하느님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망하게 되고 비참한 처지에 있게 된 이유가 ‘바빌론 신이 우리가 믿는 야훼 하느님보다 더 힘이 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야훼 하느님 말고 다른 신들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 이사야, 에제키엘 등 많은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활동하게 됩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를 만든 하느님은 야훼 하느님 한 분 뿐이시다. 바빌론의 다른 신들은 모두 우상일 뿐이다. 우리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 온 이유는 하느님께서 계약에 충실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계약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다시 계약에 충실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믿음을 굳건히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다시 되돌려 줄 것이다.” 라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약속했습니다. 하느님의 힘만이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해방시켜주실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을 다시 섬기고 싶어도 예배드릴 성전도 없어서 신앙생활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은 없지만 최소한의 신앙생활로서 하느님께 안식일에 예배드렸습니다.
안식일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첫 창조 이야기의 구조는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6일 구조를 갖게 됩니다.
당시 바빌론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있는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입니다. 그 곳은 물이 많아서 좋기는 했지만 홍수가 자주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바빌론 유배 상황은 홍수로 모든 것이 혼돈의 상태로 변해버린 상황>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바빌론에서 겪고 있는 그들의 고초가 홍수와 같다고 생각했고, 그 홍수에서 벗어나려면 홍수, 즉 죽음과 파괴의 세력인 물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하느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창세기가 쓰여졌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늘만큼 땅만큼’이란 표현은 하늘과 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들도 포함합니다. 하늘과 땅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은 무의 상태, 혼돈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창조>라는 뜻입니다.
꼴을 안 갖추었지만 땅이 이미 있었다고? 라고 따진다면 성경을 수학책 보듯이 하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무의 상태는 이스라엘인들의 유배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홍수로 싹 쓸어버린 혼돈의 상태에서 하느님이 창조를 시작하셨다고 쓰고 있는 겁니다.
첫날과 나흗날, 이튿날과 닷샛날, 사흗날과 엿샛날이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날: 빛, (낮과 밤) 나흗날: 해, 달, 별
이튿날: 궁창, (윗물, 아랫물) 닷샛날: 새, 물고기
사흗날: 땅, 땅, (뭍, 바다)-식물 엿샛날: 동물 - 사람
이렛날 - 쉼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창조
(창세기 1, 3)“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는 말씀 하나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1,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 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둠’이란 모든 생물의 존재를 위협하는 혼돈의 세계>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혼돈의 세력을 뜻하고, 또한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창조는 바빌론 홍수, 어둠, 혼돈을 제압하는 행위입니다.
태양보다 빛이 먼저 창조되다니?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는 과학책이 아닙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 시를 읽어보십시오.
“눈부신 태양이 동녘에서 떠오른다.” 라는 표현이 맞습니까?
이 표현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과학적으로 따지면 사실이 아닙니다. 과학적인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태양은 가만히 있다는 겁니다. 태양이 동녘에서 떠오른다는 표현은 시적 표현입니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시입니다.
새벽에 일출을 보러 가면 해가 먼저 보입니까? 빛이 먼저 보입니까? 빛이 먼저 보이고, 그 후에 태양이 떠오릅니다.
기원 전 500년 경,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고 태양에서 빛이 나온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못 알아듣습니다.
성서의 모든 이야기는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2500여년 전 이야기로 생각해야지 오늘날의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그들에게는 빛이 먼저이고 태양이 나중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둘째날에 하느님께서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그림참조)
옛날 사람들은 땅은 물 위에 둥둥 떠 있고, 땅 밑에 아랫물이 있고, 하늘에는 윗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윗물이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투명한 막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막을 궁창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려면 하늘에 창문이 있어서 하느님께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고, 창문이 열려서 윗물이 쏟아지는 것이 ‘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궁창을 세우는 하늘 기둥이 있고, 땅을 세우는 땅기둥이 있다고 생각했고, 궁창에 해와 달, 별이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땅 아래 심연 속에 저승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 궁창을 만들어서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어 뭍과 바다 로 갈라주셨다고 창세기에 쓴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궁창을 아예 없애버리면 윗물이 세상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아랫물은 솟아 오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궁창을 만드셨으니 하느님이 그 궁창을 한시라도 안 지켜주시면 사람들이 살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상 물질도 아무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자기가 잘나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셋째 날에 땅을 뭍과 바다로 가르셨습니다.
셋째날까지는 하느님께서 무엇을 만들어서 둘로 나누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분리작업으로 모든 생물이 살아갈 터전이 마련되었습니다.>
분리작업은 질서를 잡는 작업입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하느님께서 우리들 생명을 지키시려고 그 모든 것들을 분리하셨고, 단단하게 지키고 계신다”입니다.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잘못된 것은 하느님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탓입니다.
(창세 1,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태양도 신이고 달도 신이고 별도 신이라고 믿고 숭배하였습니다. 그런 숭배사상에 이스라엘인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 보이는 하느님보다는 해, 달 별을 믿기가 쉬웠겠지요.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태양, 달, 별 따위를 섬기는 것은 다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그것들도 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에 불과할 뿐 신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요즘 우리들의 궁창에 해, 달 별 대신 무엇이 붙어있습니까?
돈, 명예, 권력 등이 붙어있습니다. 그것들이 오늘 우리에게 우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느님 대신 그런 우상들을 섬기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집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종류대로 내어라 ”(창세 1,24) 라고 하셨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생겨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땅이“내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늘도 신, 땅도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저자가 전하려는 뜻은 “하늘신도 땅신도 없다. 그것들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일 뿐이다. 하늘신, 땅신을 섬기는 것은 다 우상숭배이다.”입니다.
(외모지상주의 또한 그러한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헛된 것들입니다.)
창조이야기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사람, 바로 ‘나’를 위해서 만드셨다. 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창조는 하느님 창조의 정점>입니다.
(창세 1,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들 다스려라.“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고,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고대인들은 왕만이 하느님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왕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며 남녀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때 인간의 완전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1,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자식은 하느님의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그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책을 썼고, 출산율 세계최저로 고민하게까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정책적으로 거스르는 것이 결국은 인간들에게 해악을 가져오게 됨을 창세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만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강과 경제적 능력에 맞추어 가족계획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갖가지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제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낙태를 부추김...)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을 위임하신 것이지 방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맘대로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만해지면 안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가꾸라는 말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라는 말입니다.
<자연의 남용과 훼손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기상이변이 일어나는 것도 인간들이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해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탓이 아니라 인간들의 탓입니다.
<쉼을 통한 창조의 완성>
(창세 2,3) 우리들은 쉰다는 것에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쉼은 꼭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엿새를 일하시고 쉼으로써 엿새동안의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쉼이 없으면 미완성인 셈이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쉬신 이렛날에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 생명을 주시고 매 순간 순간을 지켜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그 고마움을 잊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동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휴식도 필요합니다.>
어떤 사장님이 있었는데 일요일 미사에 나올 때 운전기사에게 운전을 하게 합니다.
그 사장님 자신은 주일을 잘 지키고 휴식도 가졌겠지만 그 운전기사는 일요일도 없이 근무해야했습니다. 가까운 성당에 걸어오거나 손수 운전하고 올 수도 있습니다. 나만 주일을 지킨다고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주일을 못 지키고, 쉼을 갖지 못하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또, 어떤 학교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절대 주 5일 수업을 못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 목사님 왈 “하느님께서 창세기에 보면 엿새를 일하고 하루 쉬라고 했는데, 5일만 일할 수는 없다” 그 목사는 성경을 수학책 보듯이 한 겁니다. 그런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창조를 엿새동안 이루어진 것으로 쓴 이유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셋째날, 엿새날에는 두 가지씩 이루어집니다. 그 날 한가지씩만 이루어지도록 했더라면 엿새가 아니라 여드레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엿새 라는 틀에 맞추어서 창조 이야기를 쓴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수학책 보듯이 믿는 사람들이 엉터리 이론을 말하기도 합니다.
97년도에 다미선교회에서 휴거가 일어난다고 해서 나라가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휴거날짜를 계산한 방법은,, 창세기에 나오는 조상들의 나이들 모두 더해보고, 예수님 사후 시간들을 계산하니 도합 6000년이 나오더란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하느님께는 ‘천년이 하루같다’는 표현이 나오니 6000년은 6일에 해당되고, 7일 시작되는 날, 즉 하느님께서 쉬시는 날에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설이었습니다.
첫 번째 창조이야기에서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더라도 이것만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창세기 1장.4,10, 12, 18, 25 절 말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창세기 1장 31절 말씀 “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과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집 천정에서 물이 새서 벽지를 새로 발랐습니다. 제 마음에 들어서 자다가 일어나서도 괜히 불 한 번 켜보고 좋다,하고 다시 잡니다. 하느님의 마음도 그와 같으셨겠지요. 공단에서 매연이 나오고 쓰레기가 쌓이고 하는 일들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잘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당신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것들은 창조하신 후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인간들을 만드신 후에는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그렇게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이쁜 사람 못생긴 사람 할 것 없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매일 저녁 하느님께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거저 주신 은총에 대해 감사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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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물)
자료 -02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 오경 -토라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율법서’, ‘바른 가르침’, ‘지겨야 할 도리’, ‘도(道)’
* 창세기
히브리어 이름 - 브레쉿(한 처음에), 그리스어 이름 - 게네시스(기원, 시작)
‘세상이 창조될 때의 기록’
* 창조 이야기의 초점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앙 고백)
-하느님은 나를 비롯한 우주 만물을 지으신 유일한 창조주이시다.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인간이 지은 죄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시 인간과 화해하시려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 창조 이야기의 두 가지 문헌
- 첫 번째 창조 이야기 : 창세기 1,2-2,4 ㄱ (제관계 문헌)
- 두 번째 창조 이야기 : 창세기 2,4 ㄴ - 3,24 (야휘스트계 문헌)
*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6일 창조’ 구조
첫째날: 빛(낮과 밤) 나흗날: 해, 달, 별
이튿날: 궁창(윗물, 아랫물) 닷샛날: 새, 물고기
사흗날: 땅(뭍, 바다) 엿샛날: 동물
식물 사람
*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핵심
- 하느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 하느님은 당신 말씀으로 창조를 이루신다.
- 인간창조는 안식, 즉 ‘쉼’을 통해 완성에 이른다.
- 하느님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세상은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 고대인들이 상상한 세계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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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인간, 그 행복한 출발
* 읽어야 할 성경 :창세 2, 4 ㄴ -25
* 성경구절 쓰기 :창세 2, 7 -8 : 창세 2,16 - 17 : 창세 2, 18 : 창세 2, 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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