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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 기형도 - 아! 노회찬 님!

김레지나 2018. 7. 27. 03:08

권순진님 글입니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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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스스로 ‘빈집’에 갇혔다.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걸어 잠그고 말았다. 어제 내내 상실감과 비통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삶과 죽음은 한 선상에 놓여 있음을 절감하면서 하루 종일 먹먹했다. 사람들은 ‘그게 죽을 일인가? 그걸로 죽으면 살아도 될 사람이 몇이나 되게.’라고 말한다. 터놓고 얘기했으면 이해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도 한다. 혼자 꾹꾹 담고 있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들 했다. 이 마당에 견줄 일은 아니지만 온갖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뻔뻔스럽고 구차하게 버둥거리는 정치인들을 또 얼마나 보아왔던가.
  그러나 그는 쌓아온 개인적인 명예나 이미지,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보다는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정의당과 당원들, 성원해주는 국민들을 더 크게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으로 인해 당의 지지도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 수치심의 한계를 넘었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사망 전날 ‘집 안에 아내 전용 운전기사가 있을 정도면 재벌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노동자를 대변한다?’ 이런 칼럼 식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를 보고서는 수치심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사실은 2016 선거 시기에 자원봉사자가 후보 부인의 운전을 자원 봉사한 것이고 또 사실관계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그대로 나갔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졌을까. 그렇다고 지엽적인 부분만 떼서 문제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유서에서 밝혔듯이 모든 것을 자기 불찰과 잘못된 판단에 그 책임을 귀결시키고 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개별적인 사유에 방점을 찍기엔 그가 살아온 삶이 너무 숭고하고 가치와 신념이 아름다웠다. 그는 삶이 반드시 죽을 것임을 잘 알기에 삶을 보전하는 것에 지나치게 애태우지 않았던 것이리라.

 

  어쩌면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끊임없는 정신의 담금질로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경지에까지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죽음의 공포가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에게 죽음이란 단지 육체의 거푸집에서 영혼을 떼어놓는 행위에 불과했다. 육체보다 정신을 살찌우는 삶을 살았던 그로서는 보통사람들이 절대 이해 못할 경지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듯 사는 법이 나쁜 사람은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아름답게 완성하지는 못하더라도 헛되이 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그의 바람대로 정의당의 지지율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조심스러운 전망이지만 자유한국당을 앞지르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가여운 내 사랑’ 빈집에 갇혔으나 아주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