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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벼랑끝 전술/ 김현식

김레지나 2018. 5. 29. 11:25




벼랑끝 전술/ 김현식

 

평화의 고요가 아닌 정지된 적막함이었어요 고장난 나침반, 잃어버린 목표, 사라져가고 있는 정체성, 희미해진 가치, 그 심연은 허무의 나락이었어요 좀비들이 허연 대낮에도 춤을 추는 새카만 계곡이었지요 흐름이 멈춘지 오래된 썩은 웅덩이였어요 감격은 휘발되어버리고 침울한 먹구름만 무거운 눈물을 장전하고 있었어요 권력과 재물에 눈먼 자들의 끝없는 탐욕에 풀처럼 여린 영혼들이 지푸라기처럼 말라 갔지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눈 크게 뜨고 정신 좀 차리고 잘 돌아봐요 당신도 그중의 한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 계간리토피아2014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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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랑끝 전술은 외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초강수를 띄워 막다른 상황까지 몰고 가는 전술을 말한다.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사태 시 흐루쇼프와 존 F. 케네디가 서로 핵폭탄을 깔고 앉은 채 상대를 압박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때 버트런드 러셀은 핵무기 벼랑끝 전술을 치킨게임에 비유했다. 북한과 미국이 연초에 보여준 '책상위의 단추''내 단추가 더 크다'느니 벼랑끝 전술의 말장난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과거엔 북한이 주로 이 전략을 써먹었으나 지금 트럼프의 미국은 한발 더 나가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나름 부드러운 문구를 편지에 담았지만 북미회담을 먼저 파토 낸 것은 일종의 미치광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치광이처럼 비이성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름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끔 한다. 그 결과로 북은 공손하게 자세를 낮추었고 급기야는 전격적인 남북 2차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 북미회담은 다시 기정사실화되었고 어쩌면 좀 더 나아진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로서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결례를 포함하여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라 썩 유쾌하진 않다.

 

 ‘평화의 고요가 아닌 정지된 적막함이흐르는 동안 1차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은 휘발되어버리고’ ‘침울한 먹구름만 무거운 눈물을 장전했다. 트럼프는 핵문제뿐 아니라 중국과의 동아시아 패권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이번 기회를 활용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끊임없는 시도와 함께 우리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어르고 엿 먹이기를 반복했다. 트럼프는 알려진 바와 같이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웠다. 유네스코와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중동을 들쑤시는 등 다자주의외교를 거부해온 사람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만 그들과 국내 비판론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하느라 생고생을 했다. 초지일관 진정성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포용하며 인내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일부 야당의 온갖 되도 않은 헛소리와 폄훼발언이다. 아무리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공세라 이해한다 해도 국가의 미래가 어찌 되든, 심지어 자기네 당이 망하든 상관없이 내부의 권력 논리만을 작동시키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럴수록 평화와 통일의 시대에 그들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만 단호해질 뿐이다.

 

 홍준표 대표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투명하지 못한 깜짝쇼라면서 여전히 강력한 압박과 제재만이 북의 핵무기를 폐기시킬 뿐이란 볼튼 식 강경발언이고, 안철수 후보는 "우리나라가 운전대를 잡기는커녕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한미공조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언주 의원은 "김정은이 여당 최고 선대본부장"이라고 조롱했으며, 그밖에 트럼프의 회담 취소 발표 시 나경원 의원은 김칫국 외교 망신”, 김진태 의원은 중매쟁이가 문제이고 뺨 석대 맞을 것등 망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마저도 그들의 기를 조금이라도 살려줘서는 안 되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벼랑끝 전술에 기인한 것이든 어떻든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정상궤도로 돌아온 것은 뭐라 해도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호 신뢰가 지렛대역할을 한 덕분이다. 김정은으로서는 그래도 믿을 것은 문재인 대통령 뿐이라는 인식이 상황을 호전시켰다.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인류와 통일을 갈망하는 7천만 겨례가 있기 때문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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