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화를 보면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낡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도도 없고 뚜렷한 발자취도 없는 미지의 어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결국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거듭나야만 자기가 두고 온 세상에도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데 말을 탄 기사가 이미 잘 닦인 길로만 다닌다면 그것은 남들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지 모험이라고 할 수가 없다.
<성배를 찾아서>라는 프랑스의 오래 된 문헌을 보면, 성배를 찾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점찍은 곳, 가장 어둡고 길도 나 있지 않은 곳”으로 해서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황무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인습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남들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진정성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성배신화는 서양 정신 발전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그었다. 그것은 십자군 정신을 뒤집어 버렸다. 십자군 기사들이 대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자면 성배를 찾아나선 기사들은 숲에서 외로운 탐구에 나섰다. 성배를 찾는 기사가 당도하려는 곳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상의 도시가 아니라 사라스라는 이 세상에는 없는 천상의 도시다. 숲은 영혼의 내밀한 영역을 상징하며 성배는 신과의 신비로운 만남을 상징한다.
(…)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구도라는 것은 ‘진리’라든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얼마나 알차게 사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인간적 인격체나 천국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온전히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 신이나 열반은 우리의 본성에 덤으로 갖다 붙인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룩해질 수 있다. 자기 안에서 그걸 깨달아야만 완전해질 수 있다. -<마음의 진보> 45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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