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예수 오빠께서 누이야 부르시면
/ 백 젬마 마리 수녀 / 소금나무
일전에 아일린 조지 여사 통역을 도와주시다가 아빠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의 큰 힘과 자신감을 선물로 받으신 백 젬마 마리 수녀님의 글들을 모아 출판되어진 책입니다. 내적으로 들으시는 예수님의 음성과 그분과의 대화를 잔잔히 펼쳐 보여주십니다.
인터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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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수 오빠께서 누이야 부르시면』 중에서
내 삶 속에 수녀님을 보내주신 하느님
- 하루비 (젬마, 소설가)
“당신은 영혼이 맑은 사람이에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강직하군요. 예수님께서는 하루비님 같은 분들을 좋아하신답니다.”
존재에 대한 회의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봄 날, 수녀님은 한줄기 빛처럼 그렇게 소리없이 다가왔다.
물위의 부초와 하늘의 뜬구름처럼 삶의 목적도 지향도 없이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던 나에게...
특히 수녀님은 불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교리를 배워 보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당신의 말씀처럼 ‘때가 되면 주님이 부르실 것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수녀님을 만난지 1년이 조금 지난 2006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나와 함께 동해로 여행을 가지 않을래요?”
뜻밖에 수녀님이 이런 제의를 해 오셨을 때 나는 조금도 망설임도 없이 따라 나섰다. 왜 그때 수녀님이 내게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당신에게 주어진 귀한 1박 2일 휴가의 동행자로 날 선택해 주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하기만 했다.
속초에 도착한 후, 수녀님들이 휴가를 가서 머무시는 휴가집에서 하룻밤을 수녀님과 단 둘이 보냈다. 우린 밤 늦게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순간만큼은 수녀님은 내 엄마요, 친구이며 동반자였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휴가집 근처에 있는 ‘영랑호’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호수 주변을 거닐다가 초록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싱그러운 잔디밭에 앉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잔잔하게 빛나는 호수는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꿈꾸듯 호수를 바라보며 그 강물 같은 평화 속에 온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가만히 수면을 바라보시던 수녀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 여기서 성모송 열 번만 하면 어떨까요?”
“네, 좋아요 수녀님!”
나는 어릴 때 몇 번 성당에 오가면서 배웠던 성모송을 더듬거리며 따라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나와 함께 성모송을 열 번 하신 수녀님은 그 자리에 앉은채로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무척 고음의 곡이었는데 주변을 생각하셔서 낮게 부르시긴 하셨어도 그렇게 부드럽고 고혹적일수가 없었다. 나는 그 노래가 ‘영가’라는 사실을 나중에 교리를 공부하면서야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녀님이 그 영가를 부르시자마자 바로 우리 눈앞의 호수에서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수면 위로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머!”
세상에 어쩌면 이럴수가 있을까? 그 광경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직접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은 믿기지가 않을 것이다.
“저 물고기들 좀 봐요! 수녀님, 저 물고기!”
나는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수녀님도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노래를 부르면서도 따라 웃으셨다. 비가 내린다거나 날씨가 흐리면 고기들이 더러 물위로 뛰어오르는 일이 있지만, 이렇게 노랫소리를 듣고 물고기가 뛰어오른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거기다 수면 위로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고기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고 그 모양새 또한 마치 곡예를 하듯이 신명이 넘쳐 보였다.
‘세상에!’
수녀님의 노래를 듣고 물고기들이 기뻐서 춤을 추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했다. 이 물고기들의 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신비로운 체험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때 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노래를 마치신 수녀님이 날 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빨리 종이에 적으세요!”
“네?”
나는 엉겹결에 서둘러 수첩을 찾았다 .수녀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필히 까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펜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난 급한 김에 화장품 케이스 속에 든 눈썹연필을 찾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수녀님의 입에서 막혔던 말문이 터지듯 신비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놓칠세라 재빨리 수녀님의 말씀을 받아 적었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와라. 들어와 쉬어라. 내 마음 속이 네 평화요, 네 행복이다. 내가 널 데리고 가련다. 내 길로 널 데리고 가련다. 누가 내 사랑에서 널 떼어 놓을 수가 있으랴. 오라, 내게 오라. 내게 와 쉬어라.
한동안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도대체 말씀이실까? 수녀님 노래 속의 아이는 누구일까? 그러자 수녀님이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다 적었나요?”
“네….”
“그건 방금 예수님이 당신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네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저를 위해서 예수님이요?”
“그래요!”
나는 어찌나 놀랐던지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 때의 그 감격스러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 그 오묘한 부르심. 나는 삽시간에 ‘예수님’이라는 큰 블랙홀에 빠져들고 만 것이었다.
……
이제와 고백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있었던 때에도 신께 매달려 기도를 올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 좀 도와주소서.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십시오.’ 하고 의지해 본 적이 없었다.
그 고통과 절망의 부피는 나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들이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찾지 않았던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남달리 자의식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독한 교만이었다는 것을 난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고부터 외로움과 회의 속에 우두커니 서 있어도, 어느 순간은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 보였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덮치는 사이 가슴 속에서 슬픔이 깨꽃처럼 저 혼자 피었다져도 세상은 아름다웠다. 결코 끝날 수 없는 삶의 아픈 가슴, 그래도 내게는 살아 있는 주님을 느끼는 삶 자체가 경이로웠다.
……
성령기도회를 다니면서부터.. 예수님을 알고 나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십자고상만 바라보아도 가슴 한 복판에 대못이 박히는듯이 아프고 또 아팠다. 미사 때에도 눈물은 폭포처럼 하염없이 솟구치곤 한다. 수녀님은 그런 나에게 ‘주님이 당신 안에 현존해 계시고 한껏 축복해 주시고 계시답니다’ 하고 격려해 주셨다.
……
오직 나만을 의지하고 살았던 교만했던 내가 보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인가.
……
어느 날 홀연히 수녀님을 내 곁에, 내 삶 속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이 귀한 선물에 감사하며 큰소리로 찬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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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 오상의 비오신부님 영화중에서 - 돌아가시기 직전 예수님과 대화하시는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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