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들이 무수히 많다.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장벽 중 하나가 ‘원초적 불안’이다. 임종을 앞둔 모든 환자는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불안’에 휘둘리게 된다. 이러한 ‘불안’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환자의 내면과 타인과의 관계는 심하게 손상을 입는다. 그렇다면 ‘원초적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대장암 말기를 보내던 50대 후반의 남성을 돌볼 때의 일이다. 그는 말기 암 상태에서도 병을 극복하고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병마 극복하고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매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죽음에 대한 불안은 점점 커지기만했다. 그는 잠조차도 편하게 자지 못했다. 잠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그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주하면서 지금의 불안과 근심 걱정의 의미를, 태아의 출생에 관한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태아가 세상에 태어날 때가 가까이 다가오면 죽음의 공포와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이유는 출산을 위해서 자궁 안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태아 입장에서는 엄마의 자궁 안이 최고로 익숙하고 안전한 장소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고 보면 느낌과 감성으로 알던 엄마와 아빠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고, 아기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임종 때에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 너무나 익숙하고 편하고 좋은 장소이다. 이러한 세상을 떠나간다는 것은 두려움이고 공포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넘어서면 느낌과 감성으로 알던 하느님과 그 세상을 마주하게 되고, 죽어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는 이 이야기를 잘 이해했다.
‘원초적 불안’은 태아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면서 느끼는 최초의 ‘불안’이다. 이 ‘불안’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천상 고향으로 건너갈 때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생애 마지막 시기가 다가올수록 지각과 감각 그리고 인지능력이 변화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자아를 형성했던 모든 감각과 지각은 서서히 퇴화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감각이 깨어나게 된다. 세상에서 자신을 지탱하던 감각과 지각이 퇴화할 때 대부분 두려움과 공포, 불안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임종을 앞두고 있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과정이고, 따라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능동적으로 살아가던 세상의 자아를 내려놓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더 수동적으로 변화하면 할수록, ‘원초적 불안’은 빨리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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