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입니다. 수년 전의 글이네요.
본당에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다 주교님의 배려와 명으로 갑자기 휴양을 하려니 처음에는 시간도 많고 여유로워서 좋은 것 같던 시간이 갈수록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궁리 끝에 무언가 봉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알아 보다가 성가복지병원을 택하게 되었다.
신학생 시절에 봉사 다녔던 기억도 있고 머물고 있는 숙소와도 가깝고 해서 애초에는 신부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위장 취업(?)을 하기로 하였다. 신부라는 것이 알려지면 같이 봉사하는 분들도 어려워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겸손함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은 얕고 부족한 생각에서 신분을 알리지 않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 센터의 수녀님께만 신부라는 것을 알리고 다른분들께는 비밀로 할 것을 부탁드리고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원환자들의 간병과 1층 로비의 안내가 내 임무로 부여되고 초짜 봉사자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친절하게 교리와 성경말씀을 가르쳐주시는 형제님, 신자냐고 물으면서 천주교에 입교하기를 권하시는 자매님, '아저씨'하고 부르면서 이것 저것 마구 부려먹는 자매님들!!! 거기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간호사 선생님들 중에는 젊은 남자가 낮 시간에 그것도 일주일에 3번씩이나 봉사하러 나오는 것을 보며 혹시 회사에서 사고쳐서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 받고 여기 오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한 분도 있었다고 이렇게 성가복지병원의 봉사자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병원생활도 익어가고 한창 재미가 붙을 즈음해서 나의 정체를 파악한 원목실 수녀님께서 미사를 부탁하셨다. 망설임 끝에 미사를 봉헌하기로 하고 주례사제로 제단에 올라서는 순간, 같이 봉사하던 신학생의 표정ㅋㅋㅋ 어! 저 아저씨가 왜? 하는 황당하고 당혹스런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미사는 시작되었고 강론 중에 위장취업을 사과드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자로써 생활할 것을 약속드렸다.
그 후로 몇 차례의 미사주례와 성사집전으로 인해 신부라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다 시피하고 그 후로 나의 삶은 점점 더 복잡하게 꼬여들게 되었다. 환우분들 간병 중에 성사를 주기도 하고 느닷없이 세례를 줄 것을 명하는 원목실 수녀님의 명을 받들어 군종신부 때보다 더 빨리 세레를 베풀기도 하고... 결국 병원의 모든 수녀님, 직원분들, 환우분들, 봉사자님들께서도 내가 신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필요할 때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였고, 그래서 십 수년 손을 놓았던 이발종사도 몇 차례 하게 되고 목욕도 시키고 등등!! 그러면서 한 가지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전공이 없으면 이렇게 여기저기 끌려 다니고 땜빵이나 하는 인생이 되는 거구나 하는... 어찌되었든 복지병원에서의 시간은 즐거움과 기쁨, 안타까움과 아픔이 뒤범벅된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 안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신앙이 아니면 그리고 그분의 이끄심이 아니라면 성가복지병원이 이렇게 운영될 수도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과 느낌을 체험하면서 차츰 이곳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세상이 인정하지도 않고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느끼면서 결국 비공식 성가복지병원 원목실 소속으로 갖가지 성사와 사목아닌 사목을 하게 되었다. 원치 않은 비공식 신부가 되고만 것이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벌써 5개월여!!! 이젠 2월 발령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20여일의 시간 동안 무엇을 더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과 지난 시간동안 부족했던 것들을 성찰하면서 봉사라는 명목하에 주님과 이곳 수녀님들과 직원분들 그리고 많은 봉사자분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 또 다른 그리스도의 모습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삶의 무거운 짐을 힘겹게 지고 나가야 하는 복지병원의 환우분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깨우쳐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사실 처음에 이곳 성가복지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오게 되었고 실제로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이곳 환우분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내 가치기준과 판단기준을 가지고 행동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한 예로 어떤 분이 신발이나 입을 옷을 달라고 부탁하면 대충 맞을 만한 사이즈의 옷을 가져다 준다. 그러면 그분은 색갈 어떻다, 모양이 어떻다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다른 것을 달라고 청한다. 그러면 또다시 옷 방에 가서 주문사항을 참고해서 골라본다. 몇 번이고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면 그분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 가버리곤 한다. 처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솔직히 "아무거나 대충 몸이나 발에 맞으면 입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나, 얻어 입는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이들과 짧은 대화라도 하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것이지만 이들도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고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 곳 성가복지병원에서라도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이것저것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고 싶엇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는 이곳에서 풀어놓는 투정과 이런저런 주문들이 나름대로의 자존심이고 사랑 받고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후로는 어떤 부탁을 받아도 상대방의 기분과 요구를 최대한 기쁜 마음으로 맞춰 드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사실 봉사는 내게 맡겨진 재화나 시간, 능력등을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드러내는데 사용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이 작은 기쁨과 만족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 외아드님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웃들에게 베푸는 선행이나 사랑, 관심은 아무리 크다 해도 크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런저런 경로와 방법을 통해 주님께서는 사제로서 살아가는 동안 꼭 알아야 할 또 한 가지를 체험할 수 있게 이끌어 주셨다. 관심과 배려가 바로 그것이다.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받기를 갈망하고 배려에 굶주려 있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한가하게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조차 없을 것 같다. 고민하고 걱정하는 그 시간에 무언가를 행한다면 그 다음 모든 것은 주님께서 다 알아서 이끌고 채워 주신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사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실행하기를 어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교만하면서도 착한 생각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덜 교만하고 조금만 더 약삭빠르다면 우리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시작만 해놓고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 사실 우리의 힘으로는 무엇 하나 마음 놓고 시작하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그분께 맡기고 의지하고 이끌려나가고자 하는 지향만 있다면 만사 O.K 언젠가 병원 미사를 봉헌하면서 강론 중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그리고 이어서 B.J.R(배째라)정신을 가지고 망설이지 말고 행한다면 나머지는 주인이신 주님께서 다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복지병원에서의 생활은 나를 기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성가복지병원을 알리고 후원을 강요하고 봉사자를 선발하고 등등 지난 몇 달은 이렇게 성가복지병원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아직도 완전한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봉사하는 기쁨을 알게 된 이상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 중독증상이 아주 아주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더 많은 이들이 중독되기를 주님께 기도한다.
앞으로도 본당 발령을 받은 후에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성가복지병원을 기억하고 찾아보고 할 것이다. 무엇인가 내가 필요로 한 곳이나 일이, 혹은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레임과 희망을 가지고...
결코 길지않은 시간이었지만 이곳 성가복지병원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넘치도록 채워 주셨고 담아주셨다. 이제 다시 사제 서품을 받고 세상으로 파견되는 새 사제의 마음으로 세상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서약한 18년 전의 초심을 회복하고 벅찬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나간다. 그동안 함께 했던 환우분들과 봉사자님들, 수녀님들의 얼굴을 한 분씩 떠올리면서 미소를 띄우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저를 따뜻한 사랑과 기도로 지켜봐주신 성가복지병원의 모든 수녀님, 직원분들, 봉사자님들, 그리고 무엇보다 영육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서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 환우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봉사의 삶 안에서 행복하시길 빕니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B.J.R?"
'성가복지병원' 소식지에서
[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신부님들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을 잘 만나고 계십니까?” / 민범식 신부님 (0) | 2017.01.31 |
---|---|
조철현 비오 몬시뇰님 <남도의 보물 100선> 방송입니다. (0) | 2017.01.26 |
되면 다행, 안 되면 천만 다행 / 강길웅 신부님 (0) | 2017.01.20 |
요셉은 자신을 뛰어넘어 메시아를 만났다. (0) | 2016.12.19 |
함께 하자는 초대 / 이종찬 라우렌시오 신부님 (0) | 2016.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