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함께 하자는 초대 / 이종찬 라우렌시오 신부님

김레지나 2016. 12. 18. 19:27

함께 하자는 초대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
이종찬 라우렌시오 신부
현리성당 주임


  지난 달 수능을 앞두고 본당에서 수험생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아마 고3 학생들이 있는 본당이라면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본당에서는 아침과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시험 잘 보라고 ‘수능 쌀’ 을 넉넉히 준비해 선물했다. 미사를 시작하며 제대 위에 올라온 고3 아이들의 명단을 보았다. 모두 10명이었다. 그 가운데는 공부하느라 잠시 쉬고 있던 친구들이 꽤 있었다. 신앙학교 때 봤을 테지만 기억력이 짧아 이름과 얼굴이 도저히 매치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속내는 감추고 미사를 집전했다.

  강론 시간, 나는 원고를 펴지 않았다. 고3 학생들을 위하여 애써 준비했던 강론이었지만 뭔가 이게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저 성령께 의탁하며 말문을 열었다. 먼저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오늘 미사에 온 이유를 물었다. “지금 무엇을 기도하고 있니?” 다들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한 친구는 ‘만점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 고 기도한단다. 속으로 생각했다. “수능에 10,000점은 없단다. 원점수 400점이 최고잖니. 미사는 인터넷에서도 판매되는 2~3천 원짜리 부적이 아니란다. 50만 원짜리 부적을 써도 100만 원짜리 부적을 써도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떨어지잖니.” 그러면서도 아이들에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동조해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그날 말씀(연중 제33주간 화요일)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시는 메시지를 함께 묵상했다. 그날 복음은 예수님께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 자캐오에게 다가가시어 함께 하자고 초대하시는 장면이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그분은 자캐오를 매우 자상하게 부르시며 함께 하자고 초대하신다. 이 초대는 오늘만 그렇게 하자는 초대가 아니다. 그분은 그동안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자캐오에게, 이제 더 이상 함께 하는 것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지금 당장 내려와 지금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자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미사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미사에서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고자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라는 것이리라!”
  나는 이날 강론을 통해 예수님처럼 그렇게 아이들의 이름을 자상히 불러주고 싶었다. 그동안 바쁜 마음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 늘 함께 하자고, 당장 그렇게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성탄을 코앞에 두고 오늘 말씀들도 우리와 함께 하고자 찾아오시는 그분과 함께 하라고 초대한다. 요셉은 그분의 뜻에 순명하여 그분과 함께 하고자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에게도 성탄은 바로 모든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 찾아오시는 ‘임마누엘’ 예수님과 진정 함께 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