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미신의 아찔한 차이
김길수 교수, [하늘로 가는 나그네]에서
가톨릭다이제스트 통합지, 월간 독자 리더, 2016년 9월호 p21
제사 문제로 생긴 진산사건은 서구문화와 전통문화가 정면으로, 상징적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천주교가 자리잡을 때까지, 100 년 동안 박해가 계속된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요즘은 제사 지내도 됩니다.
그러면 제사를 안 지낼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났거나,
제사를 안 지낸다는 이유로 순교한 사람들은 교회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일까요?
예수회의 마태오 리치 신부는 유교몌식을 존중했습니다. 민간의식으로 본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어떤 의식이 내 마음에 안든다고 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른을 만나면 허리를 굽힙니다. 몽골에서는 혀를 쑥 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태국에서는 그러면 몰매 맞습니다.
이렇게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른 민간의식을 문제 삼을 것 없다고 생각한 마태오 리치 신부는
전통에 충실한 중국에 그리스도를 별문제 없이 전교했습니다.
그 후 프란치스코회와 파리외방전교회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중국풍속에 미신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고 금해야 한다고 교황청에 보고했습니다.
교황은 '미신적 요소가 있다면 엄격히 금하라' 고 했습니다.
이는 제사 금지령이 아니라 미신적 요소에 대한 금지령이었습니다.
그것이 200 년 동안 동양 포교에 큰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 계기는 200 년이 지난 1932년 12월 8일, 교황청 교서입니다.
(제사예절에 대한 민간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1) 지방 = 제사를 받을 사람을 나타내는 것.
아버지 = 현고학생부군 신위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 저승의 귀신이 되어있다는 뜻.
이는 이승의 것이 저승에 가 신령이 되었다는 샤머니즘적 사고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저승의 귀신은 아니지않습니까?
2) 제사지낼 때 문을 열어놓는 풍습 => 아버지 귀신을 맞기 위함이니 샤머니즘적 요소가 있습니다.
3) 제사는 자시 즈음에 시작하여 첫닭이 울기 전에 끝내야 합니다.
=> 첫닭이 울면 귀신이 못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술시'=> 수저를 똑똑 상에 3번 쳐서 옮겨놓습니다. => 다른 귀신 말고 아버지 귀신만 오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그 모든 예식을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하는 거지 미신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제사에 대한 민간의식이 바뀐 것이지요.
'술시'니 '합문'이니 하는 것도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는 거라는 겁니다.
최기복 신부의 박사논문, 1989년 '유교와 서학의 사상적 갈등과 상화(相和)적 이해에 관한 연구'에 보면,
민족 고유 전통예식으로서의 제사 문제와 하느님을 공경하는 최대 제사로서의 미사에 관하여
소상하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게 옳듯이
제사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고 느끼는 게 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조상이 돌아가신 뒤 귀신이 되어 오신다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가톨릭신앙과 아찔하고 중요한 차이입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이 계시지는 않으나 계시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제사 지내는 사람의 정성이지 미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정성의 차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는 감지할 수 없으나 실제로 계시는 분을 계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토착화한답시고 성체를 떡으러 하고 포도주 대신 막걸리를 쓰자는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이 밀떡과 포도주로 성체성사를 세웠으면 그걸로 끝난 겁니다.
신앙의 토착화는 그런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사형중지를 명했으나 한발 늦어 사형됐다는 소식을 들은 정조는
이게 선례가 되어 천주교 신자들이 다 죽을 것을 염려하여 전국에 방을 붙입니다.
- 천주교를 믿으면 죽게 될 테니 믿지 말라.
이 일이 1791년이니 1784년에 천주교가 들어와 채 10년도 안된 때라
서울, 내포, 전라도 일대에만 천주교가 알려져 있었는데
이 방이 전국방방곡곡에 붙게 되니 온 나라 사람들이 천주교를 알게 되고 궁금해 하게 되었습니다.
순교자의 피가 몇 년 걸려도 이루지 못할 전교를 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수교자의 피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씨앗이 된다는 말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김길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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