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제씨는 1992년 직업군인으로 해군에 입대했고 모범군인으로 뽑혀 미국으로 파병까지 갔다. 1995년 파견 복무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지금껏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군에서는 복무 중 사고라 공상처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호제씨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기나긴 법정 싸움을 벌이도 했지만 번번이 패소했다. 재판으로 인한 변호사 비용과 아들 치료 비용으로 집안 가세는 자연스레 기울었다.
21년째 아들 병간호에 온 정성을 기울였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대가는 혹독했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졌고 하루 종일 아들 간병으로 이씨와 부인 안경애씨마저 몸이 성한 데가 없다.
간병생활 15년째 되던 해 부인 안씨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씨는 “오랜 간병생활로 힘들어서 우울증이 왔거니 생각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년 뒤 안씨는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현재 안씨는 요양센터에서 데이케어(오전 8시~오후 5시30분)를 받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환각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환각 증세가 잠깐씩 나타났는데 근래에는 5~6시간씩 지속되고 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 식사는 거부하고 분유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부인의 병세 악화로 모든 살림은 이씨 몫이다. 손주 재롱을 볼 나이에 그는 아들과 부인 병수발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이씨의 하루는 늘 정신없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호제씨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주무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다.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몸 구석구석을 주무른다.
부인 안씨가 집에 있는 시간(오후 5시30분~오전 8시)에는 더욱 힘들다. 집안 곳곳을 기어다니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던지거나 긁어댄다. 증세가 심해져 요즘에는 휠체어에만 부인을 태워놓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 아들을 돌보는 이씨의 몸도 온전치 못하다. 고관절 통증이 심해 다리를 절뚝거린지 오래다.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족 가운데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정부 지원금 월 97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부인과 호제씨 간호비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호제씨 병원비와 식사비(영양제)만 해도 최소 60만 원이 든다.
이씨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낙도 희망도 없이.
“다른 사람들은 아내와 아들을 이제 요양병원에 보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가족인데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제 생명 다할 때까지는 옆에서 돌봐야지요.”
거실에 걸려있는 늠름한 막내아들의 입대 전 찍은 가족사진이 저절로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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