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는 삶은?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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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를 지는 삶은?^^* *♥* -
사랑하올 형제 형제 자매님,
지난 세 주간 동안 잘 지내셨나요?
미리 알려드리지 못하고 강론글을 올려드리지 못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혹시 놀란 분은 안 계신지요??? ^^*
저는 6월3~15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시차적응을 위해서 똘레도와 마드리드,
아빌라, 알바 데 또르메스 등을 순례하고
5일간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까지 116Km를 걸으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사제생활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해서
지난 25년간의 사제생활을 돌아보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충전하고 왔습니다.
마지막은 파티마에서 성모님의 품 안에서
순례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순례였어요.
기회가 되면 꼭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오늘 액자의 사진은 순례길의 한 순간입니다. ^^*
형제 자매님,
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는
주님의 날에 있을 일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의 날이 엄한 심판의 날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즈카르야는
그날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뉘우치며 통곡하게 될 것이지만 그날에 샘이 터져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씻어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배반으로 인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하는 세례가 가능했음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 아니겠죠?
루카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가 이 질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도입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별 생각 없이 주변에서 들었던 말들을 전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을 알고자 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명하십니다.
그러면서 바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대답을 한편으로는 그대로 인정을 하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맞지만
베드로가 생각하는 모습의 그리스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예수님 덕분에 한 자리를 차지해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완전히 밝히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밝혀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버릴 수가 있을까요?
스스로 자기 목을 베어버리라는 말씀일까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사람은 전혀 새로운 가치관,
곧 그리스도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린 사람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면 우리가 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수는 없겠죠?
루카 복음사가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은
인류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보여주시고
그래서 인간들이 아버지께로 나아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 십자가”가 아니라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십자가는
당신이 지셨던 그 엄청난 십자가는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자기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즉 가족들을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들,
내가 즐기고 싶은 오락이나 취미생활, 누리고 싶은 여가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하기 싫은 힘들거나 궂은일들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형제 자매님,
어쩌면 우리의 십자가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보잘것없는 우리의 십자가를
당신의 십자가와 대등한 대단한 것으로 보십니다.
우리가 이런 십자가를 통해서 제 목숨을 내어놓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시니까요!
형제 자매님,
우리가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고백했기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사랑의 길을 우리가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무의 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아 완성의 길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라고 확언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매일 기도를 통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듣고
하루의 생활 중에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 행복을 누리도록 합시다.
이런 우리의 노력이 나약한 우리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훌륭히 지고 가는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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