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방에 있던 글을 <책에서 옮긴 글> 방으로 옮겨놓고,
투병일기 방에도 싣습니다.^^
분명 책을 다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전혀 생각이 안 나네요.
진료 전에 병원 홈피에서 피검사 결과를 볼 수가 있더라구요.
허걱! 종양표지자 검사 수치가 확 올라갔고, 신부전 등을 나타내는 결과들이 좋지 않네요.
펫 씨티 검사 결과도 안 좋을 것 같아요.
항암을 계속 안 하고 지낼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별 수가 없네유.ㅎ^^
체칠리아 벤투라님의 말씀이 백 번, 천 번 옳고 말구요.
하느님께 제 인간적인 바람을 원없이 아뢰었으니,
제 바람과 달리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세상에서가 아닌, 영원 속에서 제게 좋은 것이라 주셨으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어요.
주님이 주신 '기적같은' 평화 속에서! ^^
"나는 기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와 꼭 같은 신뢰로써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에 함께하지 못했다.
기적을 청할 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평생을 장님에 귀머거리로 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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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순간들>, 체칠리아 벤투라 지음, 김홍래 옮김 p.168에서 옮김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내 고통스런 정점에 와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내게 전적인 의탁을 요구하셨다. 눈 위에 진흙을 바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그분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셨다.(요한 2,5참조). 길게 이유를 열거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던 욥처럼 나는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의 요구에 저항했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드린 나의 '네'라는 응답과 불평 속에는 욥과 마찬가지로 신뢰의 외침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욥처럼 투쟁과 어둔 밤을 지나는 사람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신앙으로 탄원의 기도를 올리는 그런 신뢰였다.(창세 32,26참조)
내가 실명한 날부터 부모님과 동료 수녀님과 친구들은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시력을 주님께서 기적으로 되돌려 주시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기적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와 꼭 같은 신뢰로써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에 함께하지 못했다. 기적을 청할 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평생을 장님에 귀머거리로 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육체의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분의 속삭임에는 더욱 민감해지던 그 시기까지, 나는 주님께 시력을 되돌려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대신 '나에게 눈을 돌려주소서. 눈이 부시어 쳐다볼 수 없나이다.'(아가 6,5)라는 기도만을 되풀이했다. 육체의 귀가 들리지 않는 지금 신랑의 소리를 반가워하는 신부의 노래가 귓전에 집요하게 맴도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소리.
담 밖에 서서
창 틈으로 기웃거리며
살창 틈으로 훔쳐보며 속삭이는 소리(아가 2,8-9)
내 노래에 응답하듯 그분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바위 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줘요. 목소리 좀 들려줘요.(아가 2,14)
때는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청각을 잃게 된 충격과 수녀님, 부모님, 친구들의 사랑으로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던 그분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증폭되어 울리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천천히 내 작은 배의 밧줄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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