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자비의 사도여정 <1강 자비의 여정 1단계 - 죄인임을 자각하라>

김레지나 2016. 4. 11. 18:11

평화방송 강의 듣다가 후반부만 옮겨 적었습니다.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강의입니다.^^

 

 

(전략)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복된 죄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들이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서 7:24-25)”

 

나를 구해줄 분 하느님.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비참한 인간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속 사람은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나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51장 19절입니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현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자각해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나아합니다. 자비의 여정 1단계를 하면서... 처음부터 하느님의 자비를 이렇다 하고 배울 것이 아니라, 자비는 우리가 하느님께 구해야 하는 것 현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1단계는 우리가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 일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하느님께서 교회와 그 교회 안에 있는 영혼들 위에 쏟아 내리셨다. 어떤 영혼들은 하느님께서 완전히 차지하셨고, 어떤 영혼들은 겨우 살아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비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나의 현 존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떼를 쓰면서 엄마에게 젖을 구할 때 엄마는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이 자비의 여정을 통해 의탁의 그릇을 빚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한 첫 단계로 우리의 현 존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반대학을 다닐 때, 매년 봉사활동을 갔는데, 우리 가톨릭 동아리에서 나환우촌을 가게 되었어요. 저는 무지 때문에 가면 혹시 나병이 옮길까 싶어서 갈 때부터 마음이 안 내켰어요. 한참 더운 8월 달이었는데, 그런 마음으로 가니 목적지에 다가가자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 거여요. 닭, 돼지 냄새. 저는 처음부터 경계를 늦추지 않았어요. 수녀님하고 공소회장님이 나와 맞아주며 악수를 하는데 공소 회장님 손가락이 없는 겁니다. 그 자리를 잠깐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거기서 먹은 게 탈이 나서 설사까지 하게 되었어요. 둘째 날부터 언제 집에 가는가만 생각했습니다. 내일이면 집에 돌아가는 날이었어요. 마지막 일정으로 그날 밤에 공소에 모여서 다과회를 했어요. 한 주간 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끝날 때쯤 되어서 불을 다 끄고 우리 옆에 촛불을 중앙에 몇 개만 켜놓고 옆 사람 손을 잡고 기도를 하재요. 조금 전까지 제 옆이랑 옆의 옆에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불을 끄고 다시 자리 잡고 기도하려고 손을 내밀고 손을 잡는데, 아뿔싸 손가락이 없는 손이었어요. 양쪽 손 다 손가락이 없었어요. 제가 그 손을 딱 잡는 순간에 말씀이 들렸어요. “이 손이 내 손이다. 이 손이 내 손이다.” 제 손에 잡힌 것은 그냥 문드러진 손이었어요. 이 손이 바로 예수님의 손이래요. 동시에 제 영혼의 손을 보게 되었어요. 육신의 손은 성했지만 제 영혼의 손은 성하지 않았어요.

 

이 자비의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이 여정에 초대하셨어요. 우리가 이 여정에 첫걸음을 내딛는 것.... 하느님의 빛 아래서 나의 존재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탕진했을 때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내 현 생활이 무엇을 쫓아가고 있는지,..... 하느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어주시려 하셔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돼지우리에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작은 아들이 되어야 해요. 그때 우리는 자비의 여정 1단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 바오로 사고가 고백하였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주님, 그러나 이 비참함은 바로 당신이 있기에 비참함임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그 자비를 믿기 위해 당신의 그 자비의 빛으로 당신이 창조하신 내 존재됨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깨닫게 하여 주시고, 1단계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http://blog.daum.net/ja618/7870538  - 비참함을 고백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