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 강길웅 신부님

김레지나 2016. 3. 28. 20:56

평화방송에서 강길웅 신부님의 강의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2부> 중 뒷 부분을 보았습니다. ^^ 2부 뒷 부분만 옮겨 적었어요.

 

  .........(전략) 우리는 기도하면 기도한만큼 올라가게 되고, 봉사를 하면 봉사한 만큼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 재주로는 내려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청객 돌멩이가 어디서 딱 날아오면 여지없이 깨지면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재주로 안 되는 것을 고맙게도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십자가가 원수 같고 강도 같이 여겨지지만 십자가야말로 주님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십자가로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승리와 영광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감동적으로 만나려면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십자가끼리 통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토끼는 토끼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잘 지내게 마련이듯이 말입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와 갈등이 좀 있었습니다. 인생관이 다르니까 어머니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에 친구들에게 간혹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경험이 다르니까. 경험이 다르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알아 들어요. 토끼가 여우한테 말하면 못 알아듣게 마련이지요. 오히려 말을 꺼낸 제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내가 왜 저런 자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지’하고 후회하고 그 후부터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제가 신부 되고 나서 한참 후의 일입니다. 교포 성당에 강론하러 갔는데, 한참 선배 신부님이 주임 신부님이셨습니다. 강론 끝나고 신부님이랑 술 한잔 하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어머니 이야기가 또 나왔어요. 그 신부님이 제 무릎을 탁 치더니 '나도 그렇다.‘라는 겁니다. 당신이 그렇다니까 그 신부님과 제가 감동적으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렇다‘는 그 한 마디에 다른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서로 위로 받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픔은 아픔끼리 통합니다. 맞아봐야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고 넘어져봐야 넘어지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고, 무거은 짐을 져봐야 무거운 십가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감동시켜 드릴 좋은 도구는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힘으로는 온전한 선행, 온전한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거추장스럽게 찾아온 십자가는 주님뿐만 아니라,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 깨달음이라는 게 있잖아요. 본래 면모, ....몇 십년 씩 참선, 고행을 합니다. 참성품을 바라보는 일, 보이지도 안는 걸. 바라보려니 몸부림을 칩니다. 깨달음은 경전 통달해도 못 얻습니다. 깨달음은 경전 밖에 있습니다. 일반 지식, 일반 지혜로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혼자 스스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살핍니다. 수행하는 것, 경전에 대한 것 .내공이 쌓였나 안 쌓였나 보면 압니다. 요놈이 익었구나 싶으면 스승이 그 아주 급박한 질문을 갑자기 던져요. 그러면 대개 당황하게 됩니다. 답을 못합니다. 그러면 스승이 몽둥이로 후려 갈깁니다. 소리를 꽥 지른다든지 코를 비튼다든지 돌발 행동을 합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하면 내공이 쌓인 제자는 00이 폭발해서 깨치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건 상식 밖에 있습니다. 밖에 있는 놈을 끌고 가려면 비상식적인 걸로 쳐야 된다. 그래야 진리를 알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일반상식으로도 안 되고, 기도해도 안 됩니다. 자기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상식 밖에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감동으로 만나는 것도 상식 밖에 있는 만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식 밖에 있는 십자가가 와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을 감동적으로 만납니다.

제가 신부 되기 전에 수도생활을 좀 했습니다. 서른 살 넘어서 수도원 들어갔는데 나이는 어린 놈 하나가 먼저 들어왔다고 힘들게 하는 놈이 있었습니다. 수도생활을 천국을 앞당겨사는 생활이다 라고 하는데, 그놈 때문에 수도생활이 지옥 같았어요. 그 문제로 기도도 많이 했지만 기도한 것만큼 더 미워졌습니다. 준주성범이다 조배다 하면서 많이 참아요. 제가 결국은 참은 것만큼 그놈한테 더 화가 나는 거여요.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래서 더 밉고 더 화를 내게 돼요. 고해성사를 수십 번 봐도 안 됩니다. 어느 날 저녁기도로 성무일도를 하는데 베드로 1서 5장 말씀이 저한테 그대로 들어오는 겁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겸손해야 된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너를 돌보고 계시다는 말씀이 들어오는 거여요. 그때까지는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기도한 것만큼 자꾸 올라가는 거여요. 그놈이 더 하찮게 보이고, 참으면 참은 것만큼 올라가게 돼요. 그러니 더 밉고. 분명히 저놈은 수도자 될 놈이 아닌데, 저놈이 왜 수도원에 들어왔을까 궁금했었는데 그때 알았어요. ‘아, 저 놈이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셔서 왔는데, 하느님이 왜 보내셨느냐. 바로 나한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보내셨다.’라는 것을 알았어요. 수도원에서 수련장은 수도원의 역사와 카리스마 창설자 영성 등등을 가르쳐주시는데, 그놈은 저한테 어떻게 화를 참아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거여요. 그러니까 나한테 진짜 수련장은 저분이 아니라 이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놈을 제 마음의 수련장으로 받아들이고 무슨 말을 하든지 순종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제가 내려가게 된 거지요. 그 덕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성체조배를 할 때였어요. 평소에 저는 죄가 많아서 신부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용서 안 한다. 신학교 오라고 부르는데 대답 안 하는 것은 용서 안 한다.”

  그때 ‘나는 신부될 수 있고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 집에서 안 도와주어도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고 예비고사 거쳐 신학교 들어가게 되었어요. 제가 신부될 수 있게 해 준 은인은 그놈입니다. 어머니 기도도 아버지 기도도 아니고, 그놈 때문에 내가 내려가게 되었고, 내려갔기 때문에 주님을 감동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이 나면 정말 기쁩니다.

 

  마음에 맞는 친구 있지요? 서로 잘 통하는 친구 있지요. 토끼는 토끼끼리 만나면 재미 있습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통해서 오는 기쁨은 땅의 기쁨입니다. 원하지 않았던 불청객같았던 이 놈, 갈등을 겪고 고민하게 만드는 놈,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기쁨은 천상의 기쁨입니다. 마음에 드는 기쁨이 땅의 기쁨이라면....... 경험이 없는 자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는 거여요.

   사람들은 믿으면서 땅의 기쁨만 찾습니다. 나는 건강해야 하고 우리 집은 잘 되어야 하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려면 우리 교회 오면 병도 낫게 해준다.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소문을 냅니다. 하지만 진짜 기쁨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하느님이 주신 천상의 기쁨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렵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꼭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길을 걸어갑니다. ......각도만 일 도만 틀어놓아도 새 하늘이 보이고 새 세상이 열려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놈은 결국 수도원을 흔들어놓고 나갔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 불가에서는 이걸 업보라고 합니다. 전생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악의 결과가 여기서 나타난다는 거여요. 우리는 간단해요. 내 잘못을 알고 참회만 하면 됩니다. 내가 잘났다 하지 말고, 아내가 뭐라고 하면 당신 말이 맞다. 내가 몰랐는데, 내가 노력을 해보겠다 하면 되는 거여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기도로 안 됩니다. 감동적인 만남이 있는 기도와 그것이 없는 기도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무얼 하든지 내려가야 되는데 우리 스스로는 못 내려갑니다. 십자가 불청객이 와야 합니다. 억울하고 섭섭해도 불청객인 십자가를 잘 보듬게 되면 주님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감동시킵니다. 십자가와 친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십자가를 원하지 않지요. 누가 원하겠어요? 누가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 당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싶겠어요?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 왜 찾아올까요? 분명히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원하지 읺았지만 하느님은 원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나에게 왜 이런 눈물과 아픔과 시련을 주시는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주십니다. 아드님 예수님을 보세요. 세상에 보내셔서 억울하게 처형당하도록 허락하셨어요. 아드님을 그렇게 신뢰하셨습니다. 믿으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드님을 사랑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왜 애매한 고통을 겪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신뢰하셨듯이 우리를 신뢰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은혜로 받아들이면 기쁘죠. 자랑스럽죠.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서 일하고 남편을 위해 고생하는 것 자랑스럽지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진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이 되겠어요? 잘 짊어지면 모든 행복이 거기서 오고, 안 짊어지려고 불평하면 모든 불행이 거기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도시 본당에 있을 때, 똑똑한 시어머니가 있었어요. 말로는 누구한테도 안 지는. 말발이 그야말로 세니까 세상기쁨을 많이 누리고 있었어요. 영감도 꼼짝 못합니다.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어요. 신부님이도 수녀님이고 없어요. 이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똑똑한 시어머니랑 똑똑한 며느리가 같이 지내면 . 누구 하나는 깨져도 박살이 나도록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옆에서 저 며느리는 죽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저 집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똑똑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대답을 안 하고 100퍼센트 순종하는 거여요. 시어머니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트집을 잡고 시비를 겁니다. 시집올 때 이런 것도 안 배워왔느냐? 그럼 며느리가 “제가 배워온다고 했어도 배운 것이 없어요. 어머니한테 배운 것이 더 많아요. 자주 가르쳐주시고 꾸지람해주셔요.”라고 합니다. 그럼 시어머니가 할 말이 없습니다. “너는 이런 것도 못하면서 대학 나왔다고?”라고 하면 “요즘 대학 나와도 어르신들 초등학교 나온 것만 못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때리고 찔러도 소리가 안 납니다. 자기만 올라가면 멀미가 납니다. 혼자 올라가면 혼자 불안한 것입니다. 독재자들은 불안합니다. 잠도 못 잡니다. 성질 고약한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소리가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혼자 올라가게 되니......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시어머니가 내려오니까 며느리와 감동으로 만나게 됩니다. 땅의 기쁨을 알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통해서 하늘에서 오는 기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내가 며느리를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며느리가 겸손하게 내려감으로써 호랑이같은 시어머니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내려가는 지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고, 십자가로 인해서 비로소 겸손해지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십자가를 무시하거나 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는 하느님 특별한 신뢰, 특별한 사랑입니다.

  마음이 혼란스럽다가 잘 짊어져야지 하면서 하룻밤 지나면 또 맘이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짊어지기 싫으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하느님도 어려우셨는데 우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 넘어지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공로를 쌓게 되고, 넘어졌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면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끄러워도 자신의 문을 열어야 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 자신을 닫아놓기 위해서 치장하고.... 자물쇠를 많이 달아놓고 삽니다. 스스로 옥에 갇힌 사람이 되어서 만남이 안 됩니다. 주님과도 세상과도 만나기 힘듭니다,

 

  제가 섬마을 선생 할 때.. 섬사람들이 나이를 따지네요. 예전의 사범학교는 고등학교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스무살에 선생을 나갔는데, 사람들이 “우리 아들보다 나이가 적구만... 우리 조카도... 어쩌고” 하길래, 나이를 많이는 못 올리고 두 살 올려서 형 나이로 거짓말을 했어요. 나이를 속이니까 속인 나이를 감추기 위해서 포장을 해야 하는데.. 하나 거짓말 감추기 위해서 열 개 이상 거짓말을 해야 하더러구요. 형 나이도 속여야 하고. 학교 늦게 들어갔다고 거짓말해야 하고, 군대 여직 안 갔느냐고 하면 또 거짓말해야 하고. 그때 알았어요. 거짓말할 게 아니라고. 나이를 속이고 내가 조금 올라가니 보통 피곤한 게 아닙니다.

  나를 열고 개방한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불이익이 돌아와도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해야 되는데, 솔직해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예수님도 인간적인 모습을 다 보이셨습니다. 슬플 때는 우셨고, 성전에서는 화도 내셨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하셨어요. 마태 26 39에서 세 번이나 간청하셨어요. 신학교 가기 전에는 그런 예수님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러 세상에 오셨는데, “잘 짊어지겠습니다.”하고 용감하게 짊어지시지 쩨쩨하게.. 성경의 표현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하느님은 손오공처럼. 이를 테면, 손쉬운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척하고, 당신은 벌레나 새 모양으로 변해 옆에 있고 가짜 예수님을 매달아놓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안 하셨습니다. 당신 속속들이 그 아픔을 체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베드로 성격을 보셔요. 덤벙댑니다. 충동적이고 경솔하게도 보입니다. 성경 저자는 베드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더 미화시키지도 않고 변명도 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실수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많은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실수하고 넘어진 것을 위로 받게 됩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베드로는 실패를 통해서 예수님을 감동적으로 만난 겁니다. 자기가 믿음이 있어서, 잘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짐으로 인해서 주님을 감동적으로 만납니다. 자기는 죽어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주님은 저쪽에서 얻어 맞고 계시는데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닭이 울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베드로가 주님을 감동적으로 만납니다. 다시는 배신 안 합니다. 주님 말씀이 백번 천 번 옳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된 겁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를 보면... 알 파치노는 성격 장애자입니다. 장교였는데, 시각 장애인이 되어 괴팍하고 난폭하고,, 한편으로는 시적이고 철학적인 면도 있습니다. 조카 부부가 모시고 살았는데, 그들이 여름 휴가를 갈 때 자기도 자살 여행을 떠납니다. 돌봐줄 알바생이 있었습니다. 이놈은 멋모르고 뉴욕까지 따라갔는데, 어느 날 고등학생이 알게 됩니다.. 저 양반이 자살하려고 한다. 담배 사오라고 시켜서 가려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알파치노가 권총으로 죽으려고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립니다. 알파치노가 “나는 썩은 놈이다. 악한 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죽을 이유를 댑니다. 그때 고등학생이 “당신은 다만 고통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라고 살아야할 이유를 대줍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조카들과 다정하게 살게 됩니다. 그가 “나는 악하다 썩은 놈이다.”라고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에게 은혜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비의 희년인데, ..... 아버지부터 좀 반성을 해야 됩니다. 너희들한테 자주 술 먹고 큰소리치고 했는데 잘못했다. 노력해보겠다. 꼭 그 말을 가족들에게 해줘야 합니다. 창피해도 내려가야 됩니다. 엄마들도 내가 필요없는 잔소리로 성가시게 했는데, 엄마도 노력하겠다. 너희들도 협조를 좀 해줘야 한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요. 아이들도 반성하고. 우리 어머니 고생 안 시켜드려야지... 자기들도 알게 됩니다. 가족 모두 내려가면 감동의 주님을 만나게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은혜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돈 벌어서 좋은 것 사줄게. 그건 세상의 기쁨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돈 가지면 비교하게 되고 불행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내려가면.. 어머니가 내려가고.. 자식들이 내려가면 감동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불평할 것이 없어집니다. 가정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내려가야 주님을 감동적으로 만나고, 올라가면 주님을 멀리서만 보고 느끼게 됩니다. 내려가면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재주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잘 받아들이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이 주는 천상의 기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도 용기있게 내려가야 합니다. 치장할 것 없습니다.

기도 선행 많이 하는 것이 좋은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잘못된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해주면 감동받게 됩니다. 아빠가 내려가면 아이들도 저절로 내려가서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자비의 희년에 “(루카 19.5)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라는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들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