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6년

하느님께서 깔아주신 멍석

김레지나 2016. 3. 13. 00:19

또 말똥 말똥 잠이 안 옵니다.

여기 병원은 티비도 없고, 책도 갖고 온 게 없고,

할 일이 없어서 또 컴 앞에 앉았습니다용.

 

9시 기도 모임에 댕겨왔어요.

보통은 기도하고 바로 헤어져서 다들 자러 가기 때문에,

늘 묵주기도 5단 바칠 생각으로만 참석했지요.

수요일에 병원을 옮기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도 일찍 자고 기도 모임 안 가려고 했었어요.

몸도 안 좋고 해서요.

우연 아닌 타이밍으로 제가 기도 모임을 알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말씀 나누는 역할을 안 하고 싶었어요.

하느님께 그랬지요.

'병원사목 하시는 다른 교구 신부님께 여기 사례를 귀뜸해드리고

 기도문 소개 정도만 하고 떠나면 되겠지요?

 여기 자매님들 열심하고 씩씩하게 잘 하고 계셔요.

 염려마세요.

 도저히 여기 밥 못 먹겠어요. 이젠 거의 고문 수준이네요."

그런데 9시 다 되니까 몸이 또 괜찮아지더라구요.

'알았어요. 갑니다 가요. 앞으로 서너 번만 가서 함께 기도하면 되는 거죠?'

 

기도하러 가면서 하느님께 말씀드렸어요.

"저 누가 시키지 않으면 하느님 이야기 먼저 안 하는 거 아시지요?

 저 나서고 드러나는 거 엄청 불편하고 힘들어 하는 거 아시지요?

 여기 자매님들 다들 바쁠 테고, 저도 상태가 안 좋고,

 다음 주에 성지순례 몇 분이 가신다고 하니, 전대사 받을 것만 권하고 그 이상은 한 마디도 안 할 겁니다.

 누군가 먼저 저한테 이야기해달라고 청한다면 시키시는 일인지 함 생각해볼게요."

 물론, 99% 늘 하던대로 저는 묵주기도 5단만 하고 돌아오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병원 옮기기로 한 터라, 자매님들 이름 알려고도 애쓰지 않았구요.

 

근데, 기도하기 전에 자매님들이 전대사가 뭔지 알듯알듯하다가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잠깐 설명한다는 것이 쪼매 길게 설명해부렀지요.

"우리는 성인들의 통공을 고백한다.

 천국 영혼, 연옥 영혼, 이 세상 사람들이 공이 서로 통하고 나누어가질 수 있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연옥은 자비의 공간이다. 하느님께서 너는 이리, 너는 저리, 하고 보내시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간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들에 대해 통회하는 상태가 될 텐데,  그게 바로 연옥의 고통일 거다. 연옥은 천국을 가리라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천국대기발령상태이다.

 연옥 영혼들은 하느님을 뵈었기 때문에 믿음의 공로가 없어서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수 없다고 한다.

 전대사는 그런 연옥에서 정화하느라고 겪어야할 벌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 혼자만의 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다른 이들의 사랑 덕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루 빨리 당신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한 이유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몇 천배도 더 많이 갖고 계신다.

 우도를 구원하신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아니신가. 

 우도가 청하기만 했을 뿐인데,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구원 받았지 않았나.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비를 믿기를 바라시고,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잘못에 마음을 닫고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너 이것만 하면 네가 원하는 것 줄게.' 한다.

 그것이 정말로 자녀에게 좋은 것이라면

 제일 하기 쉬운 일을 시키면서 어떻게든 그 자녀가 좋은 것을 원하기만을 애태우며 기다릴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도 그런 부모의 마음과 같다.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서로 돕도록 섭리하셨고,

 당신의 자비를 우리가 꺠닫고, 그 자비를 입을 것을 바라기만 하면

 그 원의만으로도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분이다.

 천국의기쁨이 우리에게 최고이니까.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마음만 먹었어도, 종이 아니라 아들로 받아들이고 기뻐하셨던 하느님이시기에)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교회를 통해 알리고, 우리가 그 자비를 바라기만을 원하시고 기다리신다.

 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 하느님의 자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도 되고,

 실제로도 교회의 가르침 대로 될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러니 교회가 가르쳐주는 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기억하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

 청하는 것이다. 우도의 마음으로, 작은 아들의 마음으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이시니까."

 

횡설수설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길게 다 한 건 아니고, 처음에는 짧게 몇 마디 했을 뿐이어요.

그런데, 한 언니가 대뜸 저한테

날마다 이런 이야기 해주고, 다른 병원에 좀 늦게 가면 안 되냐는 겁니다.

그러더니, 몇 분이 기도 시간을 앞당겨서 무슨 이야기이든 들어야겠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멍석 깔아주고 이야기 청하는 경우는 처음이라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우리들을 위해서 좀 늦게 가면 안 되겠느냐."하고 자꾸 조르는 겁니다.

어떻게 낼모레 떠나겠다는 사람을.

거긴 병실료도 훨씬 싸고, 음식도 저한테 맞는다고 했고, 몸이 더 않좋아졌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부탁을 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연옥 이야기가 저리 길게 나와버렸고, 병원 옮기는 날짜를 좀 늦추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정말 힘든데, 병원에도 떠난다고 다 이야기해놓았는데,

제 맘대로 안 되네요.

'먼저 청하지 않으면 한 마디도 않겠다.'라고 다짐했더니, 한 마디가 아니고 아예 판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작정하고 저한테 시간을 내라고 하고 멍석 깔아준 경우는 처음입니다.

아직 당황스럽고 걱정이 쪼매 됩니다만.

머, 세상 눈으로 보면, 곧 죽기 전에 무얼 조심하고,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곧 안 죽어야겠지만요.

하느님이 짜주신 판이 분명한 듯 하니,

하느님께서 알아서 제 입술에 말씀을 담아주시든지 망신을 시키시든지 알아서 하시겄지유.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환우들이 저한테 조르니, '나같은 게 뭐라고'싶고,

환우들의 아픔과 갈증이 오죽하랴 싶어서 울컥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