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5년

순명

김레지나 2015. 9. 26. 20:54

그제 병원 다녀왔지요.

의사샘이 "어떻게 지내셨어요?"하시길래,

우물쭈물하다가 "쪼오~끔 좋아진 것도 같은데, 아직 여기저기 아프고 부종도 여전해요. 손가락 모을 때도 관절이 아프구요...."했어요.

선생님이 할 말이 있다고 저를 찬찬히 보시길래,

"더 안 좋아졌군요? 호호호.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했어요.

전에 있던 결절이 더 커졌고, 작은 결절들이 여럿 새로 생겼고, 몇 군데 폐의 림프절이 커진 것으로 보아 폐전이가 된 거라고 하셔요.

"그럼 4기인가요?"하고 여쭤보니,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행여 항암하라고 할까봐 지레 겁먹고 부러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어머, 그 정도 커졌으면 선방했네요. 잘 지내고 올게요. 6개월 후에 뵈어요."

여차저차해서 그날 혈액종양 내과로 보내려던 계획은 미루어졌어요.

야호~~!!!

 

암튼, 의사샘과 상담 간호사샘과 결과지 출력물을 보고 정황을 추측하자면 이래요.

'의사샘이 아마도 심장 펌프 기능이 항암 못하는 경계수준에 있기 때문에 항암이 꼭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골다공증이 있기는 하지만, 항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몸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앞으로 기대 수명이 1년 반쯤일지도 모르지만,,,, 항암 수술을 일단 면했으니,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노력해야 한다.'

'재발 전이가 잘 되게하는 허투 유전자가 있으니, 그래도 마지막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폐 전체게 조금조금씩 뭐가 생겨서 수술은 불가능하다.'

"암이 낫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제는 생명 연장 차원에서 치료해야 한다."

 

다음 진료 때 치료방향을 결정하자고 하셨구요.

 

에효~!! 웃어야지 우짜겠어요.

같이 지내는 환우들한테 쪼매 미안하기도 하고,

제대로 못 챙겨 먹었는지 비쩍 마른 둘째를 보니 속이 상해요.

 

집에 돌아와서 간만에 백화점에 갔어요.

산에 썬크림도 안 바르고 산에 댕겼더니 퉁퉁 불은 얼굴이 까매지고 뭐가 나서리,,,

가끔 쓸라고 화운데이션을 샀지요. 음하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위장용으로 써야지...

부분 가발을 벗고 싶어서 균일가 세일하는 모자도 샀구요.

 

가족 사진을 찍어야겠는데, 부기도 안 빠지고.. 그래도 찍어야하는데... 하는 생각하다가 눈물이 쪼매 쏟아질라고 했는데, 꾸욱 참았어요.

집에 돌아와 사진관에 전화해봤더니, 연휴에는 쉰다네요.

가족 모두 모일 시간은 빨간 날밖에 없는데....

 

어제는 마트 가서 장 보고, 나름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랑 어깨가 굳은 것 같아 전신 마사지 받았어요.

발목 다리, 팔, 머리, 허리.. 등등 예전에는 손만 대도 아파해서 살살 문지르지도 못했는데,

그동안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는지, 제법 힘주어 마사지해도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한다고 원장님이 놀라워해요.

맞아요. 제 몸은 분명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통증도 많이 줄었구요.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거예요.ㅎㅎㅎ

 

마사지샵 원장님부터 전화로 안부 묻는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하지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럴 리가 없어요.

"막걸리를 먹어보는 게 어떠냐? 아는 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막걸리 마시고 나았다던데.."푸핫

"마늘 효소 보내줄게. 먹어 봐."

"토욜날 갈게. 어느 역에서 내리면 되니?"

"항암은 삼개월만 미루고 꼭 받아 봐. 거부하지 말고."

"너는 그렇게 웃는 게 문제야. 그래서 항암을 넘 독하게 하고....엄살을 피워야 남편이 더 챙겨줄 텐데..."

"이제는 너만 생각해. 글 쓰지 말고. 하느님은 얄짤 없으셔."

 

오늘은 아침에 고기전을 좀 부치고,

우족탕을 끓였어요.^^

기분도 몸도 '대체로 맑음'

 

(아직 아들들과 부모님은 결과를 모르니까) 큰아들 군대가면 사물함에 가족사진 붙여놓아야한다더라, 하면서

집 앞 공원에 나가서 스냅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물론 지금의 제 모습이 아직도 흉해서 마음에 안 들었지요.

큰아들 군대 가기 바로 전에 또 찍어야겠어요.

 

그래도 폐에 있던 것이 명색이 암세포였던 거라면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해요.

영양제 하나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게으름을 피웠는데,

이제는 좀 부지런하게 이것저것 챙겨 먹어야겠어요.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 사람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래요.

제가 예수님을 닮는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해보았어요.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순명'하는 것,

기쁨과 평화를 잃지 않고 십자가를 껴안는 것,

그것이 영원 속에서 보면 저한테 가장 좋은 몫인가봐요.

 

'진인사 대천명'

최선을 다해 건강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하느님 뜻이려니 해야지요.

좀 달달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면 좋으련만..ㅋㅋㅋㅋ

하느님은 역쉬 눈치가 없으셔용.

 

그래도 가족들 다 모여 함께 있으니 좋아요.

여러분도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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