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방어 2
말씀: 베드로 전서 1:13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때에 여러분에게 내려주실 은총을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욕심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잘 순종하는 자녀로서 하느님께 복종하십시오. 또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위에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서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각자의 업적에 땨라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나그네 생활을 하고 지내는 동안은 늘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
주님을 찬미합니다.
제가 오늘 나누고자 하는 내용들은 우리의 신앙안에서 자주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나 교회의 역사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시대의 신자들은 매우 복음과 가까운 삶을 살며 우리의 영적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영적전쟁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것들을 다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영적인것에 대한 이야기가 크리스챤 사상안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은 성(sex) 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과다하게 이야기 하는 반면 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극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어두움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묵상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상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계획이 있으시고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나중에 더 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하여 기초가 되는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과 같이 영적으로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작은 훈련들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때때로 초등학교 때 배웠던 많은 것들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큰 것들을 배우기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고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 것들이 기초가 되어야 큰 것들을 배울수가 있는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더 큰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을 이용하셔서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그 큰 가르침은 우리의 삶의 마지막인 죽음의 순간 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신비 체험을 통해 제가 발견한 심오한 것들중 하나가 우리의 죽음의 순간이 얼마나 급격한 큰 전환인지, 그리고 얼마나 적은 사람들만이 그 것을 준비하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준비하여할 삶의 중요한 순간인 죽음을 가장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준비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말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을 연상시켜 드리죠. 지금 누구라도 지금 이순간 죽을 수 있습니다. 이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자신이 하려는 행동은 자기의 육체로 되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죽었으므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신은 그 육체 옆에 서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놀라 그 곳으로 달려 가겠지요. 자신이 그 곳에 서 있는데도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보거나 들지 못합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자신이 없는 것으로 행동합니다. 바로 그 순간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입니다.
그 순간 자신이 영적으로 강하지 못하다면, 즉 인간적인 낮은 감각과 본성과 이성으로써 오직 자신의 낮은 자아를 위해서만 살았고 영적인 것과 연결된 것은 오직 종교뿐이었다면, 사실은 여러분의 종교는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종교를 통한 하느님의 관계는 오직 일시적으로 머문 이곳의 삶의 유익을 위해서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일시적인 삶의 보호를 위해서만 종교적이 되곤 하는데 그것은 영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삶을 위해 무언가 청하고 보호하느라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이 일시적인 삶동안 일시적인 관계를 지어 주신 가족이나 친지들의 보호를 하느님께 청하지만 영혼을 위한 것들은 별로 하지 않으므로써 영적인 성장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육체로 부터 분 리되어져,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나 교류했던 물질세상이 더이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바깥으로 사라져 버릴 때 만일 그 영혼이 물질세상에만 의존, 집착하고 있음으로써 매우 약한 상태에 있다면 그 영혼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아주 큰 어려움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머리속에 그려보신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어려움에 빠질지 상상이 가실것입니다. 실로 많은 영혼들이 이 깊은 어려움에 빠집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잃어버린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영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심판을 받으면 지옥으로 사라집니다. 영원히 사라집니다. 아무도 그곳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저는 지금 구원은 받았으나 매우 약한 영혼에 대해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2장을 보면 은총에서 벗어난 영 (사탄) 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체를 벗어나게 되면 완벽한 영적인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세상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은 영적 세계의 낮은 단계입니다. 그 낮은 영의 단계가 어디냐구요? 바로 이곳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어버리면 바로 그 은총에서 떨어진 영(사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체로부터 나왔을 때, 여러분은 빛의 힘으로 이 낮은 단계로 부터 벗어나 빛 안으로 향해 가야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랑만큼 멀리 향해 가야합니다. 사랑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하느님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채워진 하느님(사랑) 을 가지고 완전한 (충만한) 하느님 안으로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멀리 빛을 향해 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만 갑니다.
하느님의 사랑없이 살던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되었다면 육체를 떠났을 때 결국 빛 안에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빛 안으로는 갈 수 없지만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낮은 단계의 영적 세상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 안에 있게 됩니다. 바로 이 곳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 곳에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연옥입니다
그러한 큰 어려움 안에 있게 되는 영혼이 처음으로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는 인류를 거슬러 행하는 영을 보는 것이며 지상의 삶에서 자신이 했어야 할 사랑을 했더라면 인류에게 힘을 실어주어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것은 그들에게 사랑이 부족하고 빛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며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의 빛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방어(보호) 해 주고 책임져야 할 영혼들이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보물이 주어졌으며 악과 맞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바오로는 우리를 보물을 담은 질그릇 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안에 빛 자체이시며 희망이신 성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알고 있는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잠시 스쳐 지나가는 ,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까지도 빛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지나가다가 매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임에도 우리에게 희망의 느낌을 주는 것을 느낄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저 작은 미소라든지, 기쁨의 얼굴…그런것들로도 순간적으로 빛과 희망과 기쁨을 던져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선택되어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선택되어진것 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과 위로의 참된 삶을 살도록 선택되어 졌기 떄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없는 죄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닞다.
영적방어는 우리의 의무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빛과 희망과 기쁨의 진리의 군사이므로 사탄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으며 우리로부터 그 것들을 앗아가려 하기 떄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면 우리는 많은 빛 안에 머물게 되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탄을 눈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을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하느님 안에 머룰지 않고 죄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 주위에 있음으로써 그 죄의 사슬을 느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변에 있음으로서 그 사람이 영혼 안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오래 함께 머물수록 죄의 사슬은 더 느슨해집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조건 없이 영적인 전쟁안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안에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손을 뻗어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치유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파견하셨을때 제자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가리옷 유다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가리옷 유다도 예수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악령을 쫒아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배반자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죄에 떨어진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제로서 도유를 받았고 하느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에게도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다른 제자들과 같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하신겁니다. 그처럼 믿음이 없는 사제도 죄를 사하여주고 다른 사제들이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제는 하느님께서 그의 삶의 마지막에 그 사제와의 관계를 정산하실 것입니다. 그 사제는 이 귀양살이 삶을 사는 동안 그 성령의 은사를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의 다음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에 사람들은 주님께 자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 저것을 했다고 말합니다만 주님께서는 악을 일삼는 자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이 하느님에 속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느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이 신실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진다고 할 때 그것이 영적인 어떤 드러냄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겸손하고 단순하게 본인 조차도 자신이 영적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영적인것 입니다. 영적이 되는 것은 겸손함을 말합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영적인 가난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순종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며 불리움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하십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먼저 하늘나라를 찾고 바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은 덤으로 받는 것입니다.
빛안에 있는것’ 그것에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빛안에 있을때 나머지는 주님께서 덤으로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옳은 장소에서, 옳은 일을, 옳은 때에 해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대죄상태에 있게 되면 언제나 옳지 않은 장소에서,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은 때에 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영적전쟁은 빛안에 머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본것을 다음 방법으로 말씀드리죠.
여러분이 줄타기를 합니다. 균형을 잡기위해 들고 있는 막대기가 신앙입니다. 막대기로 균형을 잡으며 줄 위를 걸어갑니다. 그 줄이 지상의 삶입니다. 밑에는 멸망의 장소(세상) 가 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의 시선을 줄의 끝 쪽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줄을 건널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균형을 잡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한 채 한 발, 한 발 띨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걷지 않으면 해낼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떨어지기도 합니다. 시선을 예수님께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떨어지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다시 줄위에 올려 놓습니다. 우리가 신앙에만 집중한다면, 신앙 자체는 그것에 예수님이 없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지상의 삶인 줄이나 그 밑에 있는 세상에 집중하여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집중할 만큼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게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을 부르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잠에 떨어지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마지막 가르침으로 항상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제자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성서 어느 곳에도 예수님께서 축하파티를 하는 구절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야. 오너라. 축하 파티를 하자꾸나.”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스승이어서 그랬던것이 아니라 항상 제자들을 더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많은 일들을 하고 나서도 조금 넘어지기라도 하면 “믿음이 없는 자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ㅎㅎ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항상 재촉하셨습니다.
기억하세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때 제자들이 그것을 바로보고 있자 천사들까지도 “무얼 바라보고만 있느냐? 가라!” 가서 해야할 일들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기 떄문입니다. 매일 행동하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해야하기 떄문입니다.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고 빛이 되어야하기 떄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황폐해져 가는 세상 안에 귀양살이를 하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내기 조차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이 삶의 신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조차 모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많은 동정심을 가져야합니다. 사람들은 온갖 악덕에 빠져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누구도 모르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야합니다. 우리는 초자연적으로 도유되어져 성령께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삶 자체를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영적 방어는 빛안에 머무는 그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매일 빛을 주시길 원하시며 우리가 빛 안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카톨릭 신자로서 창조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그렇게 저에게 표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나 카톨릭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70세에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해도 여러분은 카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오직 신비한 하느님의 방법으로 여러분이 70세가 되었을 때 풍요로운 카톨릭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의 마지막에 종교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심판을 하십니다. 성 요한 역시 “삶의 마지막에 우리 모두는 사랑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에로 여러분을 부르셨으며 성체의 군사로 선택되어져 창조되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체의 도구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숭배자나 프리메이슨 등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마술과 같은 사탄숭배예식을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성체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루터교회일까요? 감리교회일까요? 그들이 루터교회에서 성체를 훔쳤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들 교회에는 성체와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만, 성체는 카톨릭 교회에서 훔친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왜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썩지 않는 몸을 보여주는 다른 교회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다른 크리스챤 교회에서 썩지 않는 목사라든지 하는 사람의 몸을 보여주던가요? 찾아보십시오. 카톨릭 만이 있습니다. 오직 성체만이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주제가 다른 장소에서 혼동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특권이나 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전쟁이 맡겨졌습니다. 저의 체험을 근거로 말씀드리자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인류에게 지워진 것 중 가장 높은 단계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이 삶에 마지막에 여러분에게 맡겨진 것으로 여러분이 해야할 것을 보게되는 것은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성체의 도구로서 단순하게 믿음 깊은 성체를 영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 뿐입니다. 그것이 힘이며 그것 뿐입니다.
여러분이 온 삶을 성체를 영하기 위해 준비하며 산다면, 나머지는 덤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카톨릭신자로서의 최고의 행위이기 떄문입니다.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고 성체를 영하는 것.
여러분 자신을 잘 준비하고 주님을 찾아가 성체조배를 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 삶의 가장 큰 행위입니다. 이 세상의 어둠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보다도 이 세상에 빛을 더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체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성체를 영함으로서 인류에게 양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성체를 모시는 순간 죽음을 맞는 영혼을 들어올리십니다. 여러분이 영혼의 재정 (ECONOMY OF SOULS)을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주님에게 드린 여러분의 피를 사용하십니다. 당신의 희생을 통하여 여러분의 희생을 다른 영혼을 위해 쓰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맞고 있는 가장 큰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여러분의 성체를 약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성사와 관련된 것들을 모르도록 만듭니다. 그래야 인류의 은총을 줄일 수 있기 떄문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성사와 관련된 것들을 약화시켜 전 인류의 은총과 영혼의 구원을 줄이려 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성체를 영하여 은총안에 있게 되면 더욱 많은 영혼들이 구원 되므로 매일 아주 큰 영적전쟁이 일어납니다.
죽음이후 카톨릭 신자에게 가장 슬픈 일은 삶동안 낭비한 성체를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여러분은 집 근처 성당에서 성체를 모실 수 있는 그 시간에 그저 집에서 온갖 독과 같은 것을 즐기며 있었습니까? 잠시만 그곳에 갔더라면 단지 여러분이 모신 작은 성체로서 교회와 인류의 은총을 강화할 수 있었을텐데 그 시간에 집에 누워 전혀 유익하지 않은 온갖 독약같은 것들을 시청하고 독약같은 것들을 먹으며 있었으니… 여러분이 죽어서 주님의 대전에서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이곳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보게 된다면 매우 고통스러운 어려움을 맞딱드리게 될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종이 울리고 있기 떄문입니다. “여보세요…일어나세요…일어나서 우리가 누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세요..” 라고…
저 아래에서 성체가 분배되고 있는데. 성체가 인류에게 어떤것인지를 안다면, 자신의 삶에서 성체가 무엇인지 안다면, 어떻게 집에서 작은 파니니 (그릴한 샌드위치)나 먹고 있겠습니까? 성당에서 진짜 파니니를 분배하고 있는데 말이죠..ㅎㅎ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적이 있기 떄문입니다. 우리의 적은 하루종일 그곳에 가지 못하도록 막기 떄문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군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떄문에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들이 물건을 훔칠 때 한구룹은 모든 경찰이 동원되도록 이상한 짓을 하며 즐거움을 주고 있고 다른 구룹은 그 틈을 타 다른곳에서 물건을 훔칩니다. 그와 같이 사탄은 여러분을 즐길거리를 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경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즐길거리를 주어 여러분이 방어해야할 곳을 방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많이 모실수록 더 많은 빛을 갖게 되어 여러분이 죽음을 맞았을 때 빛 안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성체로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체를 많이 모실수록 여러분은 더욱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여러분은 사랑으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혈을 마실수록 여러분의 피는 적어지고 그분의 피는 많아집니다. 어느날 여러분의 피가 그분의 피로 될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체를 모셨을떄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나의 몸과 피가 죽고 그리스도와 같이 될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여러분의 육체를 벗었을때 여러분은 주님의 몸안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살과 피를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거저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영적전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모든 품의 천사들과 모든 사탄이 맞서 전쟁을 하고 있는 장면을 말하곤 하는데 그것도 중요한 것이고 알아야할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믿음에 충실하여 모든 품의 천사들의 도움이 우리 삶에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당신의 계획 안에서 모든 놀라운 일과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시기 떄문입니다.
구원의 재정 (ECONOMY OF SALVATION) 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하느님이 계획을 완성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구원에 재정에 일원이 된다면, 즉 믿음에 충실한 군사가 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완벽한 계획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상의 군대와 일치하는 승리의 군대의 일원이기 떄문입니다. 성인들과 하나가 된 우리는 매우 강한 군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의 의지로 해야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의지를 약하게 만드려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즐길거리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매우 매우 매우 마지막중에 마지막 때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내년 1월에 끝난다..뭐 이런 뜻은 아닙니다. 그 때는 아무도 모르지요. 가짜예언을 가장 빨리 알아 챌 수 있는 방법은 날짜를 줄 때입니다. 내년 6월? …저건 가짜 예언…아주 쉽지요..ㅎㅎㅎ
우리는 우리가 매우 마지막 중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전쟁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승리의 힘은 자비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언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마지막중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탄은 우리가 하루 24시간 즐기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류역사상 가장 엔터테인먼트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지금과 같았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이곳에 있는 것이며 우리를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군사로 선택하셨으며 우리에게는 가장 놀라운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수천만의 영혼이 달려있습니다. 그 영혼들이 우리로부터 양식을 받아야합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빵으로 인류를 먹여살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성체를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먹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류가 한몸에 속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먹음으로써 그들도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사랑을 그들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세상에 사랑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인류가 죄를 지을수록 세상에는 죄가 옵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탄이 활개를 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오늘날과 같이 은총이 많이 주어진 적도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죄보다도, 어떤 어두움 보다도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에 있습니다. 네. 세상은 너무도 어둡습니다. 아마 더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은총이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 시대의 사도들은 참으로 놀랍도록 거룩한 사도들입니다. 가장 거룩함 중에 거룩한 사도들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지킬수 있도록 도유한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길 원한다면 너무도 크고 놀라운 도유된 선물들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믿음에 충실하십시오. 오늘날을 사는 여러분이 믿음에 충실한다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것이며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했던 빛을 지킬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묻힌 보물 > 기억할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죄와 보속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
십자가의 침묵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뉴에이지의 위협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마리노 레스트레포 뉴질랜드 성체대회 강연 (0) | 2015.05.21 |
'주님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는 고통과 아픔입니다/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