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의 위협
말씀: 요한복음 19:31
주님의 말씀입니다.
불행히도 뉴에이지라는 주제는 오늘날의 교회에 가장 알려지지 않은 내용일 것입니다. 교회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있어 왔던 매우 발 빠르게 행동하는 사탄과의 전쟁의 한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어두움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보다 약삭빠르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매우 약삭 빠르므로 언제나 새로운 게임을 가져옵니다.
경찰은 결코 범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방법과 기술의 새로운 범죄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세상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과 전략으로 영혼들을 파괴하려 하고 교회는 끊임없이 영혼들을 보호하기위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에이지는 어둠의 왕국에서 오는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뉴에이지라고 불리웁니다만 뉴에이지의 시작은 원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에이지(세대)라는 말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뉴크리에이션 (새로운 창조) 는 끝이 없습니다. 뉴에이지와 뉴크리에이션 사이에서 우리의 영적전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뉴에이지는 원죄로 부터 시작되며 사탄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힘이 무너질 때까지 영혼을 빼앗기 위해 항상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나타날 것입니다. 사탄은 인류의 세대가 바뀔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오래된 게임에 문화라든지, 당시대에 행해지는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옷을 입습니다. 때로는 시대를 앞서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60년대에 제가 10대이던 시절에 저는 교외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카톨릭 신자였고 매우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한 사실은 그 타운 근처에 창녀촌이 있었습니다. 성주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릎으로 기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행) 창녀들조차도 무릎에 피를 흘리며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절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모든사람들이 제 위치로 돌아갑니다. 창녀들도 창녀촌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합니다.
저는 그 곳의 카톨릭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14살부터는 대도시인 보고타에서 살았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별자리점, 숫자점, 여러 정신철학등 많은 이교 문화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중 한 부분이 되어져 크리스챤 사상은 흐려지고 모든 것이 혼합되어졌습니다.
그것이 뉴에이지입니다. 어디에서든지 무엇이든 편리한대로 이익을 위해 취하고 모든 것을 혼합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십대 시절에 저는 불교의 한부분, 힌두교의 한부분, 마술의 한부분, 별자리점의 한부분, 숫자점의 한부분등 모든 것을 조금씩 혼합하였고 또한 그안에 성(sex) 의 자유, 동성연애, 레즈비언 과 같은 움직임 등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뉴에이지의 한부분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는 신(god)과 같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세가지 철학은 긍정적사고, 자기존중, 자아실현 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매우 사악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들입니다.
오늘날 그것들이 너무나 일반화 되어졌고 교회내에서 조차도 그것을 어떤 기법으로 사용되는 철학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뉴에이지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절대로 자기존중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나는 있는 나다’.
오직 하나이고 오직 있는 나인 신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자신을 존중할 수 있습니까? 내가 존중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이지 자신이 아닙니다.
현대심리학에서 그것을 인간적으로 말하면 내가 행동하므로 내자신으로 부터 강한 존중감이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존중하여야 할 것은 그리스도뿐 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뭇잎 하나도 하느님의 뜻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말은 여러분의 삶에서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긍정적 사고,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가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래의 어떤 목표도 여러분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멘탈 콘드롤하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은총은 어디 있습니까? 삶안에서 여러분이 갖는 모든것은 은총입니다.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긍정적 사고가 아닌)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희망을 갖는 태도를 말합니다.
긍정적 사고란 여러분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가질 수 있다는, 자신을 신(god)으로 만드는 사상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관계없는 완벽한 우상숭배입니다.
자기 실현(깨달음) ,..왜 크리스챤이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동양사상에 빠집니까? 자기실현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자신 안에는 실현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이 진흙에 불과하다는 것밖에 찾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느님이 내 삶 안에 있다는 것 그것 뿐입니다. 자아실현 대신 자신이 죽어야 함밖에 없습니다. 그와 정반대인 자아실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자만심” 뿐입니다.
이방인들은 모든 해답을 발견하기위해 철학적인 근거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자기실현”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그것이 우리의 실현입니다.
성서는‘유대인은 징표를 찾아 헤매고 히브리인을 지혜를 찾아 헤매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찾는다” 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안에서 분명히 해야할 부분입니다.
뉴에이지는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가 아닌 창조물을 숭배하도록 만듭니다. 뉴에이지 철학을 보면 모든 창조물과 자연을 찬미하며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너무도 놀라운 한편의 시 이며 철학입니다. 모든 창조물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것들이 이교사상과 삶자체에 대한 신개념을 갖게 가져다 주어 창조물을 숭배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결국 창조물인 모든 것을 관찰하고 받아들여 자신이 스스로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만듭니다.
사탄이 사탄인 이유는 창조주인 하느님에게 복종할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브에게 “너는 하느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라고 속입니다.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것이 뉴에이지 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너는 하느님과 같이 될 수 있다.”그것이 뉴에이지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신이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면 스포츠맨, 가수, 배우 등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신(god)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신들은 모두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죠. 나의 영웅은 무덤에서 나온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항상 나의 영웅은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뉴에이지는 모든 이 세상의 영광과 일시적인 승리에 관한 것이며 그것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뉴에이지안에 크리스탈 숭배, 풍수, 영기 요법등이 있습니다.
영기요법의 마스터(시술자) 들은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프리메이슨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들 모두가 어둠의 영의 단계입니다. 영기 요법 마스터의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치유를 잘 합니다. 영적 마사지 같은 것이 영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손을 대면 육체적 질병이 치유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사탄의) 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이 됩니다.
바티칸의 매우 오랜 경험을 가진 저명한 구마 신부인 가브리엘 아모스 (Gabriele Amorth: 1925년생- 수만 케이스의 악령을 구마한 사제) 신부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악령 들린 환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동안이나 문제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에서 온 그 여성 환자는 상태가 점점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삶에서 어두운 세력이 들어왔을 만한 점을 찾을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는 그분이 기도중에 그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쓰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20년 동안 동종요법을 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그것을 가져오도록 하였고 신부는 그와 똑 같은 종류의 일반회사 제품의 허브약 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놓고 구마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일반 허브를 시들어 있었지만 동종요법에 사용된 허브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엔 두 사이에 축성한 십자가를 놓고 다시 아주 강력한 구마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동종요법의 잎은 가루가 되어 있었고 일반 잎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신부는 그 약에 영이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똑같은 허브약임에도 동종요법의 약은 더욱 (치료시) 강력했습니다.
그 동종요법약을 만든 독일사람은 주술사였습니다. 일종의 제약마술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약에 영적인 방법으로 주술을 행한 것입니다. 그가 각종 허브에 영적인 주술을 시행함을써 모든 동종요법이라고 이름하여진 약품에 그 영적 영향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스카풀라를 처음에 한번 축성 하면 그 다음에 그것이 낡아 새것을 하여도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신부가 그것을 발견한 후에야 그 여성으로부터 악령을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은 동종요법에 대해 그 것을 접하지 말도록 발표했습니다. 동종요법을 함으로써 육체적인 치료가 된다 하더라도 영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그것으로부터 효과를 보았거나, 특히 그것을 하고 있는 의사나 시술가 들에게 하게 되면 매우 화를 냅니다. 저는 그로인해 협박편지도 받고 고소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바티칸에 그에 대한 문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제는 단순한 영적사제가 아니라 바티칸의 매우 존경받는 구마사제입니다.
------------------------------------------------------------------
인간의 질병의 이유가 항상 죄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태생이 장님이었던 사람을 치유하셨을때 제자들이 그 것이 조상의 죄 혹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둘다 아니라고 하시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그는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나자로 역시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살리십니다. 그러한 것들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 인한 것도 있습니다. 성서에 보면 성전앞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를 치유하시며 “가라, 너의 죄는 용서 받았다. 더이상 죄를 짓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더 나쁜일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죄의 결과임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느 가족을 구원하시고자 계획 하셨습니다. 그 가족의 어머니가 암에 걸렸습니다. 그것은 그 가족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자녀가 뉴에이지에 빠졌습니다. 의사는 그 어머니에게 석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 자녀는 주술방법으로 치료 하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나았습니다. 사탄이 어머니를 살도록 한것입니다.
그러면 어떤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머니는 치유되었지만 온 가족은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그 가족의 구원의 은총을 위해 불리워졌으므로 비록 그 어머니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 어머니의 육체는 살렸지만 온 가족의 영혼을 망쳐 놓은 것입니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 이후로도 그 가족의 누군가가 아프면 계속 그 주술자에게 데려가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어두움의 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이 뉴에이지 운동의 흐름입니다.
여러분은 위지보드 (서양의 귀신부르기 게임)에 대해 아실겁니다. 어린이 장난감가게나 게임파는 곳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놉니다.
몇 년전 캘리포니아에서 한 노사제가 저의 강연을 들은후 저에게 와서 “당신이 사탄을 체험한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와 함께 정신병동에서의 사명을 하면 좋겠습니다.”하며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환자들중 특히 여러 환청을 듣는 환자들에 대한 사역을 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참고: 마리노는 지금도 사탄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이 정신병보다는 영적인 문제를 갖고 있으므로 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 곳에서 그 사제는 구마기도로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 캘리포니아에 갈 때 마다 그 분과 함께 하며 그중 환청을 듣는, 때로는 끔찍한 일들을 하도록 지시를 듣는 사람들을 다루었는데 그들중 90 퍼센트가 어린시절에 위지보드를 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위지보드를 하게 되면, 그것들이 움직이기도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하는것을 보고 두려움에 많은 것을 하지 않고 멈춘다 하더라도 이미 어두운 세력에 문을 열어주는 셈이 됩니다. 영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영원에 있어서 순간에 불과 합니다. 10세에 위지보드를 통해 어둠의 영이 들어오더라도 예를들어 32세에 갑자기 환청을 듣고 잠을 못자고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의사나 심리학자에게 가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사제에게 데려갑니다. 그래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또 그중 어떤 사람은 계속 공격적으로 되어 살인을 하는 등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사회에서 격리됩니다.
악령은 몇년이라도 기다렸다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사람은 50년 후에도 나타납니다. 어두움에 문을 열게 되어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예들입니다.
또 한 예로 여러분이 아홉살에 공원에 갔다가 집시에게 손금을 보게 허락 했다면 어두움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들여다 보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교회가 그 문을 닫지 않는 한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 문을 통해 어두움의 세력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관련된 모든 것, 점보는 것, 멘탈 콘트롤 기교, 동종요법과 같은 대체요법, 등을 하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어두움에 문을 열어 주어 그 곳에 (어둠의) 영이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상처를 다루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상처가 삶을 정화하고 성화가 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을 청하게 되면 그 상처는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그것이 아프고 피흘리는 고통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십자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떄문입니다. 하느님께 “주님 이 상처를 봉헌하오니 이를 통하여 제가 악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이것으로 남들에게 상처주거나 피흘리게 하지 마시고 이 상처로서 저를 성화시켜주소서. ” 바로 그것은 치유가 되는 상처입니다.
또 하나는 상처가 썩도록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아들이지 못해 분노가 생깁니다. 그곳에서 피가 날 때마다 분노가 생겨 그것이 사탄의 상처로 됩니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인, 매춘, 마약들을 합니다. 그 상처가 그를 망치게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똑같은 상처가 우리를 성화시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사도 바오로의 몸의 가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것을 허락하시고 우리의 정화와 성화를 위해 치유시켜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피를 흘리며 하느님에게 향하여 그것을 봉헌할 때 이웃의 상처에도 동정심을 갖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고 있기 떄문입니다. 또한 이웃이 잘못할 때 그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뉴에이지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뉴에이지는 무신론적 심리학입니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여성이 상담을 할 때 그들의 답은 “신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기위해 창조하였다. 그 결혼생활을 하게 되면 평생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남자을 떠나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만나라. 신은 당신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고 합니다. 그러한 심리학은 모든 성사를 무너뜨립니다. 결혼이나 용서, 인내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오직 삶의 행복, 자유 만을 말합니다. 삶안에서의 모든 장애는 없애라고 말합니다.
뉴에이지는 자신의 영광을 말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찾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 개인의 자유와 독립이 뉴에이지의 구호입니다.
자세히 보면 너무도 많은 뉴에이지 사상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자연보호운동이 뉴에이지입니다. 이 자연보호운동이 제 3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남태평양을 면한 매우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한 단체가 그 곳에 와서 유엔이 그곳 전부를 인류를 위해 보존한다고 발표했다고 하며 아무도 그곳에 손대지 못하게 합니다. 몇백만 마일의 매우 광대한 지역입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그들의 힘을 행사할 장소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곳의 자연을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회사가 그것을 차지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단체를 만들어 그곳을 독점하여 “이 땅은 인류에 속하므로 이를 위해 보존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반대하면 인류를 거스르고 자연을 보호하지 않고 지구를 보존하지 않는 것이 되는것입니다.
세계곳곳에서 거대한 프리메이슨들이 지구 온난화 와 지구 인구폭발들을 설교합니다.
뉴에이지의 무브먼트의 하나는 세계단일화 입니다. 미래에는 하나의 세계정부가 서고,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며 그리고 종교를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CNN 창립한 테드 터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인 그는 20억달러를 유엔에 기부하였고 조건은 ‘세계교회’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2015년에는 세계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서도 교리도 하느님도 없는 사람들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에 그 교회를 건립하여 웹사이트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게 하고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를 볼 것입니다.
그 곳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일자리 등이 제공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큰 자선을 할 것입니다. 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힘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근본 불행의 원인은 종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사회에서 종교를 뿌리뽑으려 할 것입니다.
그것이 뉴에이지 무브먼트의 한부분입니다. 정말로 많은 뉴에이지 무브먼트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영적전쟁은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오늘날과 같이 매혹적으로 우리를 유혹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우리에게 모든 장난감을 보여주며 갬블러들과 같이 모든 카드를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너무도 바쁜 삶을 살며 하루 24시간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게끔하여 우리로 부터 영원한 삶에 대한 은총을 앗아갑니다. 그처럼 뉴에이지는 우리에게 오직 일시적인 힘과 유익에만 관심을 갖도록 합니다.
왜 사람들이 무당을 찾아가고 카드점을 보고 손금을 보고 별자리점을 보고 온갖 요법을 합니까? 일시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힌두교의 요가를 아시지요? 우리는 동양 사상과 이교사상에 대한 것들을 무시하고 그것을 단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이 되는 하타 요가에는 일곱가지가 있으며 요가는 디이티 라는 신을 숭배하는 바디랭귀지입니다. 여러가지 포즈를 하고 있는 있는 신입니다. 그들은 여러포즈의 신의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른채 몇시간씩 요가를 하며 그들의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 있을때 14년동안 요가를 하였습니다. 배우와 뮤지션으로서 몸을 유연하게 하기 위하여 온도가 높은 방에서 땀을 흘리며 몇시간씩 그런 요가를 하여 고양이 처럼 유연하였었습니다. 잘못된 신인 디이티를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개를 하고나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나서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때 교회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미워했습니다. 교회내에서도 많은 사제며 수녀, 열심한 신자들도 그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많은 적들을 생겼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교회가 왜 요가를 하지 말아야하는자에 대한 문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성서에 유다 마카베호 하를 읽어 보면 예가 나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심이 매우 강하고 항상 기도하며 전투를 하여 항상 하느님의 보호를 받고 승리만을 하던 유다의 군대가 한 전투에서 군사들이 죽음을 당하자 유다는 그것를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죽은 군사들의 옷을 들쳐보니 목에 얌니아의 우상의 부적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군사들이 이전 전투에서 승리를 했을때 죽은 적군으로부터 그 행운의 부적을 취해 하느님의 축성도 받지 않은 그것을 몸에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즉시 돈을 모금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 죽은이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것을 청합니다. 그것은 또한 유대인이 알고 있었던 연옥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유다는 항상 하느님을 흠승하는 매우 거룩한 유다인이었습니다.
이 예를 보아도 우리는 다른 신으로 부터 오는 것은 결코 손대지 말아야함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질투의 하느님이십니다.
뉴에이지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신과 문화를 혼합하도록 만들며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하는 것이고 함께 손잡고 모든 종교와 문화를 공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러 온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은 많은 적을 만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동의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의 수도회를 창시한 요한 바오로 2세도 모든 곳에 많은 적을 가졌었습니다. 낙태반대운동가들도 많은 반대와 부딪힙니다. 그와 같이 많은 거룩한 사람들은 항상 적을 가졌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증거하게 되면 많은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뉴에이지는 차별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친구라고 말합니다.
저는 카톨릭 성령쇄신운동하는 많은 곳에서 강연을 합니다. 그 중 어떤 곳은 정말 거룩하고 은사적입니다. 그러나 길을 잃은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끔 개신교와 함께 하느님을 경배하는 집회를 하는 때가 있는데 하기 전에 신자들에게 “그들이 실어할 테니 성모님에 대해서나 성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마세요. 등등..” 하고 말하며 교회에 주어진 모든 은총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렇게 그들은 카톨릭 교회를 다른 크리스쳔 교회중 하나로 변모시켜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일치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생각입니다.
교회일치(Ecumenism)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간의 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2차 공의회에서 교회일치와 관련하여 그것이 의도하는 바는 교회의 모체로 부터 떨어져 나간 크리스쳔 공동체들을 다시 교회의 모체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에큐메니즘의 진정한 의도입니다. 개신교와 함께하며 성모님이나 성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정확하게 뉴에이지의 싸인입니다.
유럽공동체와 같이 모든 문화의 벽을 허물고 하나로 혼합시켜 공공장소에서 종교를 말하지 말고 종교문구가 들어간 옷도 입지 말라고 하는 것등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스렘에게 대외적으로 종교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 종교행위를 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하느님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두움을 향하여 모든 문을 열어놓을떄 그를 통하여 사탄이 들어오며 그것이 바로 뉴에이지입니다.
우리가 뉴에이지에 얼마만큼 노출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얼마나 전통과 하나의 교리에 충실한지, 교계제도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보면 됩니다. 뉴에이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교회와 함께 하는 것뿐입니다.
히브리인들이 모세에 의해 이집트로 부터 탈출하기전 430년동안 하느님으로 부터 징벌을 받아 이집트에서 살며 히브리인의 혈통임에도 이집트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로 부터 구해내시고 사막으로 이끌었을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이집트 문화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그들은 온갖 이교의 신들을 숭배하였습니다. 이집트인이 아님에도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이 이집트인 지상에서 태어나 지상의 것을 숭배하려 하므로 하느님께서 이 지상의 어느것도 숭배하지 못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사람을 숭배하게 될때가 있으며 그로부터 평화와 기쁨등 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들로 부터 사랑과 감사, 인정을 받고 사람들을 콘트롤 하며 평화와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사람들로 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 기뻐지고 그렇지 못하면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자연에 힘을 주어서는 안되며 오직 하느님만이 여러분의 기쁨과 평화의 근원이 되어야합니다.
뉴에이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모든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것의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가르치십니다. 모든것을 내려놓을때 우리는 자유을 찾습니다.
사탄은 뉴에이지라 불리우는 놀라운 게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수도원이 뉴에이지로 인해 폐쇄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숫자점이나 멘탈콘트롤과 같은 기교로 시작해 매우 지적이고 모든 것을 잘알고 현대화된 많은 것들을 통해 사탄이 분열과 자만심으로 수도원 전체를 파괴시킵니다. 사랑과 동정심은 사라지고 자만심이 나타났기 떄문입니다.
저는 그런것들을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많이 보고 있습니다.
9년전 제가 토론토의 수녀원엘 간 적이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그 곳을 빌려 3일동안 피정을 하게 되었고 제가 그 곳에서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곳 수녀원에 도착하였을때 그 곳 마당에 크리스탈이며 써클등 모든 종류의 뉴에이지 심볼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곳 장상에게 “왜 이런 것들을 이곳에 놓으세요? 이것들이 사탄으로부터 오는것임을 모르십니까? 이것이 뉴에이지에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장상이 “형제님,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 읽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교회로 들어왔더군요. 저는 이곳에 37년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곳의 장상이 되었죠. 형제님은 저 만큼 아시려면 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가 그런말을 합니까? 저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이 것들을 치우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수도원이 무너집니다.”그리고 물었습니다. “최근 5년간 몇 명의 수도성소자가 지원을 했습니까?”그러자 그분은 한숨을 내쉬며 가버렸습니다. 후에 저는 그곳에 5 명의 지원자만이 있었고, 그 곳이 불교신자나 모슬렘신자등 모든 사람들의 피정센타로 렌트를 내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2년후 제가 같은 지역의 다른 곳을 방문하게 되였을 때 그곳에서 그 수도원이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음을 알았습니다. 그 장상은 곧 암에 걸려 돌아가셨고 나머지 수도자들은 그곳을 팔고 각각 아파트를 구해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사탄이 들어오는 소스가 되었기 떄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 모르고 그렇게 합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것을 철저하게 경멸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다른 잘못된 신으로 부터 가져오는 것들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모든 종류의 주술, 미신, 자연의 힘, 자연의 힘으로부터의 치유 등이 모두 어두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의 대부분이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것이 위험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밭에 묻힌 보물 > 기억할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침묵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
영적 방어 2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마리노 레스트레포 뉴질랜드 성체대회 강연 (0) | 2015.05.21 |
'주님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는 고통과 아픔입니다/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5.05.21 |
(2) 칠극 제1편: 겸손으로 교만을 누르다 (0) | 201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