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해 연중 제4주일
<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
복음: 마르코 1,21ㄴ-28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1400)
< '피'가 '힘'이다 >
어렸을 때 닮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슈퍼맨이었고 하나는 이소룡, 또 첩혈쌍웅의 총질 대왕 주윤발 정도였습니다.
하늘을 어찌나 날고 싶었던지 꿈속에서조차 슈퍼맨이었던 적이 많습니다. 물론 높이 날지는 못 하고 자주 추락하고 건물에 부딪히고는 했습니다. 세 발짝 떼고 손을 하늘로 뻗으면 정말 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슈퍼맨도 처음엔 그것을 몰라서 날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 발짝 정확히 띠고 짚단 위를 날다가 배가 흙으로 다 까진 적도 있습니다. 분명 어딘가에 두건을 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아이도 있다고 확신합니다. 커서 슈퍼맨도 말을 타다 떨어져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이소룡 때문에 또 얼마나 난리였는지 모릅니다. 이소룡의 모든 영화는 다 섭렵하고 절권도 책을 사서 발길질을 해 댔습니다. 그리고 쓸데없이 배웠던 쌍절곤.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지만 가방에 넣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주윤발 때문에 라이터 불을 입으로 빨아 댕기는 것도 배웠고 초등학교 때 담배 연기로 도너츠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라이터 가스로 손바닥 위에 불을 붙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놀이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아이 때부터도 높아지고 강해지고 지배하려는 자아가 활개를 쳤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만약 지금도 어깨에 망토를 두르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아마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날 수도 없고 높아질 수도 없음을 아는 것이 어른입니다.
그런데 그 한계를 모르는 아이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습니다. 아직도 무기를 들고 아직도 무력으로 눌러 다른 이를 제압하고 권위를 행사하려 합니다. 자신이 한 마디만 하면 다른 이들이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본래 자신은 힘이 없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은 삽이나 허리띠, 슬리퍼 등으로 우리를 때려가며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 선생님의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니 그 선생님의 권위는 우리에겐 전혀 해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폭력으로 얻은 권위는 그 환경이 그 권위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시간만 유효합니다.
군대에 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자신을 못살게 군 한 사람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못살게 굴었던 이유는 자신의 말을 잘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선임이 저에게 먼저 담배를 권하기에 저는 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임은 그것 하나로 제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것임을 알고는 제대 할 때까지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제대하면 어떻습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국 그들이 권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학교가 권위가 있었던 것이고 군대가 권위가 있었던 것인데 그것들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늘을 날 수도 없고 다른 이를 조종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힘을 빌려 그렇게 하면서 그 힘이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망토만 걸치면 슈퍼맨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권위를 가지려고 쿠테타를 일으켜가면서 정권을 쟁취하려 하겠습니까? 나라의 권위를 이용하려고 그러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든 것들은 자기 자신은 권위가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통령 직에서 내려오면 아무런 힘도 없는 나약한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을 참지 못해서 헌법이라도 바꾸어 그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망토를 벗으면 힘이 사라질 줄 아는데 본래 힘이 없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마귀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힘을 지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슈퍼맨도 주윤발도 마귀를 쫓아낼 힘은 없습니다.
참 권위란 이렇게 한 마디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참으로 ‘권위’있는 가르침이라고 감탄합니다. 그분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예수님은 무엇을 지니고 계셨기에 그런 힘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면 총이나, 칼, 혹은 자신이 가진 무기를 휘두르며 위협을 가합니다. 무언가 짓누르는 것이 없으면 권위가 행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분의 ‘피’입니다. 마귀는 교만이라고도 하고 자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교만을 꺾고 무조건 순종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 자신의 희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성령’이라고도 합니다. 마치 카인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아벨의 피 때문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피는 엄청난 힘과 권위를 가집니다.
부모님의 권위도 두 부류로 나뉩니다. 당신들의 희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면 아이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시키는 모든 것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희생을 주지 못했다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권위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는 마음까지 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피로써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몽둥이를 들고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것 하나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는데 내가 이웃을 위해 냉랭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설득의 심리학’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는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 6가지를 제안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당신이 무언가를 받을 때 다시 되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는 전제입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으면 자신도 생일파티에 초대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식당 종업원이 식사를 마친 사람에게 민트사탕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사탕은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팁이 3%가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사탕을 두 개씩 주었더니 무려 14%가 증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나가다가 “참으로 식사를 맛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식의 말과 함께 사탕을 주니 팁이 ‘23%’가 증가했습니다.
이것이 권위의 법칙입니다. 권위는 내가 한 마디 말을 하면 상대가 따라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상대가 따라주어야만 하도록 내가 이미 많이 주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줄 것 중 ‘생명’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인 ‘피’를 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 ‘피’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한 지옥불 신세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은 그 생명의 피를 받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권위를 원합니까? 아직도 이 세상의 무언가가 되어서 그 힘으로 사람을 조정하려는 유아기적 권위를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모든 것이 자신의 권위가 아닌 세상이나, 돈, 인기 따위가 주는 일시적인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힘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그 힘이 사라질 때면 그로부터 당한 사람들에게 보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힘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인데, 아이가 슈퍼맨 망토나 장난감 총과 같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힘을 바라는 사람은 참다운 권위인 그리스도의 피에는 관심 없고 그래서 피로 구원받는 이들 무리에 들 수 없습니다. 참된 권위를 지니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먼저 생명을 바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수해 주신 참다운 권위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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