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3) 칠극 제2편: 질투를 가라 앉히다

김레지나 2015. 3. 27. 16:20

[지상중계-시복시성추진위 ‘순교 영성 강학’] (3) 칠극 제2편: 질투를 가라 앉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지옥보다 무겁다
발행일 : 2015-03-29 [제2937호, 3면]

질투란 남의 복된 것을 근심하고, 남의 재앙을 기뻐하는 것이다. 남의 나쁜 점을 생각하고, 남의 잘못을 헐뜯고, 남에게 재앙이 생길 것을 바라는 이러한 악은 모두 질투의 갈래이다.

하느님은 주는 것을 마음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착한가 악한가를 헤아리지 않고 아름답고 상서로운 것을 똑같이 보내준다. 그러나 질투하는 이들은 빼앗을 것을 마음으로 삼아 남이 잘못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남이 행복한 것을 근심스럽게 생각한다.

큰 덕이나 명성은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질투하는 이들은 남들이 그것을 가지는 것을 시기한다. 이는 하느님을 시기하는 것이다.

1) 남의 나쁜 점을 헤아리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함(戒計念人惡, 계계염인악)

착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거울이다. 그래서 이 거울에 자신의 나쁜 점을 비추어 보고서 그것을 없앤다. 그러나 질투하는 이들은 자그마한 결점이나 조그마한 더러운 것을 보려 한다.

어진 사람은 남의 착한 점을 보면 반드시 그를 믿는다. 그리고 남의 나쁜 점을 보더라도 반드시 그를 이해하려고 한다. 질투하는 이는 남의 착한 점을 보더라도 자신의 나쁜 점을 더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참되고 거짓되며, 착하고 나쁜 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전부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2) 남을 헐뜯는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함(戒讒言, 계참언)

남의 더러운 행실을 생각하면 자신의 마음이 더럽히게 되고, 남의 더러운 일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입을 더럽히게 된다. 남 헐뜯는 이는 마치 뱀과 같다. 그것은 남들과 얼굴을 마주하면 두려워 피하지만 등을 지고 있으면 곁으로 다가가서 깨물기 때문이다.

헐뜯음은 지옥보다 무겁다. 왜냐하면 지옥은 죽은 사람과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삼킬 뿐이지만 헐뜯는 이들의 입은 사람을 구별하지도 않고 모두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3) 헐뜯는 말 듣는 것을 경계함(戒聽讒, 계청참)

헐뜯는 말을 듣는 죄는 헐뜯는 말을 만들어내는 죄보다 무겁다. 헐뜯는 말을 들었을 때 엄숙한 얼굴빛으로 막거나 곧은 말로 그치게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귀를 기울여 듣고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헐뜯는 말을 만드는 이의 말은 결코 듣지 말아야 한다. 너에게 남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바로 남에게 너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다.

4) 남에게 어질게 대하고 사랑함(仁愛人인애인)

하느님이 미워하는 죄 가운데 질투만한 것이 없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덕 가운데 인애(仁愛)보다 더한 것이 없다. 다른 모든 덕도 이 덕을 따라오게 된다.

어질면 반드시 참고, 반드시 자애로우며, 결코 질투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으며,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덕이 없으면 모든 덕은 헛된 것이니, 그것은 덕인 듯 하더라도 실제로는 덕이 아니다.

사람이 참으로 남을 우애(友愛)한다면 그들의 행복과 공덕, 지혜와 능력, 그리고 재력과 같은 것을 서로 함께하여 가질 것이다. 우애의 덕은 하느님이 내려 준 것인데, 그것은 나쁜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을 돕는 것이다.

어진 이는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옮겨서 남을 사랑한다. 어진 이는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므로, 질투하지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재앙과 복을 모두 남과 같이 한다.


김귀분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