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자주 쓰시던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나 늙어가는 건 괜찮은데 딸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까워서 못보겠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이 말씀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없어서 아이들을 향해서 이 표현을 쓸 수는 없고 제 형제들을 향해서 어머니와 비슷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나 나이 들어가는 것은 괜찮은데 누님들, 형님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깝네요." 저를 제외하고 형제들이 모두 40대를 넘어서 50대를 지나가고 있으니 언뜻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년부터는 모두가 50대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잘 살기(wellbeing)와 잘 마치기(welldying)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는 서서히 잘 나이먹기(wellaging)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점점 노령화되고 있다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이 된 자연스런 현상이겠지요. 흐르는 세월을 이겨낼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흐르는 세월의 강물을 타고 유유히 흘러가는 법을 생각해 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웰 에이징에 대해서 말하는 이들이 많으니 제가 여기서 그 말들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나이 들어가는 방법으로 '고독한 신앙인이 되자'라는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 기능들이 쇠퇴되어 가면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비교하다가 심리적으로 먼저 한 풀 꺽이어 버립니다. 쇠퇴되어 가는 신체적 반응들을 온 몸으로 느껴가면서 더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레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 갑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절망해 버립니다. 이러한 외로움, 위축감, 두려움, 절망감을 떨치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가 자신을 잊고자 하면서 정신적 노화도 급격하게 진행이 됩니다. 절망 앞에서 이성의 통제도 감성의 조절도 힘들게 된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신체적 노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절망이라는 정신적 노화는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앙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사람에게 두거나 재산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위축될 일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 홀로 벌거벗고 서 있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 고독한 실존의 상태를 먼저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하느님을 신앙할 수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습니다. "절망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희망 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하느님의 얼굴을 뵈며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쁘고 행복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오늘도 잊지않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기도와 미사를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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