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40분경, 김시연 양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이런 기도를 바치고 암흑과 같은 차디찬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에조차 시연 양은 다른 모든 친구들을 걱정하며 그들의 안전을 비는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아직 살아남아 호흡하고 있는 우리들 중에 그 누가 이토록 순결하고 거룩하고 간절한 기도를 바칠 수 있을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도로부터 많은 것을 묵상하고 배워야만 하는 이들이 바로 이 시대의 우리 어른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의 기도와는 정반대로 드러났다. 안전 운항 규정을 무시한 채 항행을 계속해 왔던 선박이 결국 사고를 내서 침몰한 순간부터 그 후 선박에 갇힌 생명들을 구해내야 하는 구조조치와 후속 대책까지의 모든 과정은 완전한 대참사라는 한 마디의 결과로 드러났다. 이 수치스러운 인재人災로 인하여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302명의 생명을 잃어야만 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토록 간절했던 우리 시연 양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도대체 왜 하느님은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셨단 말인가! 알 수 없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고상한 종교적, 신적 위로와 표현으로도 이렇게 완벽하게 인재로 시작해서 인재로 끝난 대참사를 해명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돈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재력과 권력이 결탁하고 거기에 언론까지 합세하여 맞불을 놓으면 오늘의 진리 예수는 이천년 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외침과 함께 쓸쓸하게 죽어가야 했던 것처럼 또 다시, 아니 어쩌면 더 처절하고 치욕스런 모습으로 ‘세월호’라는 십자가와 함께 수장 당할 수밖에 없다.
‘왜 예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왜 하느님은 이런 대참사를 허락하시는가?’라는 물음은 그래서 다시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기대와 희망에 아무런 응답도 없이 살아왔는가? 왜 우리는 이 땅에서 이런 수치스런 대참사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을 암묵하며 살아왔는가? 이런 물음이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져야만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제 우리들 스스로만이 이 물음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살아남은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라는 반어적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침묵으로 행진하며 어른들의 이기심과 비겁함과 위선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대참사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났다고 벌써 전쟁이니 경기 악화 우려니 하는 등의 자기네들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입에 올리는 소위 이 나라 ‘보수 세력’들이 자기네 입맛과 비위에 맞지 않는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쓰는 단어가 있다. “사회분열 세력!”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회분열 세력”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억울함과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유가족들이, 친구들을 잊지 말아달라며 침묵 행진을 하고 있는 어린 고등학생들이, 수치스러움과 비탄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눈물 흘리는 국민들이 이 형제, 자매들의 눈에는 그저 ‘사회분열 세력’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절망'이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그들에게서, 그리고 그들의 현사회 인식으로부터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천년 전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의 배신과 침묵 속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갔듯이, 오늘 날 우리들의 침묵과 배신, 무관심과 무참여로 인하여 힘없는 어린 양들이 ‘세월호’라는 십자가와 함께 더욱 처절한 모습으로 수장되었다. 참여와 행동! 이제는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으로 그릇된 권력들이 만들어 놓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참여와 행동만이 故 김시연 양의 마지막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 어른들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예수여! 참여와 행동으로 응답하라 그리스도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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