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느님
전삼용(요셉)신부 |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에 ‘SBS 힐링캠프’에 차 사고로 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지선씨가 나왔었습니다. 얼굴과 온 몸에 화상의 무서운 자국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녀는 “지금이 행복해서 과거의 예쁜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 40여 차례의 수술을 참아내고 손가락 8개를 절단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군다나 젊은 여자로서 ‘성치 못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은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그녀는 사고를 낸 사람의 차가 보험에 들어 있어서 감사했고, 몇 달 만에 눈을 깜빡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감사했고, 손가락으 로 글을 쓰고 숟가락을 들 수 있는 것에 감사했으며, 환자복의 단추를 혼자 힘으로 끼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자신의 손으로 문을 열 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지금 감사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가졌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일하여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 속에 파묻고 게으른 생활을 하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이 복음을 각자가 받은 달란트, 즉 능력을 개발하여 열심히 살아야지 게으르면 안 된다고 단순하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것보다 차원이 높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불공평하게 능력을 주시는 분일까요 ? 어쩌면 그렇게 불공평하고 무서운 분이라고 우리 스스로 여기고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 까요?
뇌성마비로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송명희 시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유명해지자 미국에 사는 한 부부가 그녀를 고쳐주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송명희씨는 “저는 주님께서 주신 몸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쓴 시는 ‘나’라는 성가로 만들어 져 불리고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자신은 건강하지도 않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하느 님을 만났더니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었다는 자기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사실 공평하 게 나누어 주셨는데 남들보다 적게 받았다고 느낀 종은 주인에게 불평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은 주인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달란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아는 겸손일 것 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만족하지 못하여 더 가지려고 손을 뻗었기에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감사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달란트는 공평하게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더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그 감사를 통해 구원받는 것입니다.
2014년 11월 16일자 수원교구 주보에서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전삼용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 존재의 가장 큰 표징 (0) | 2014.12.20 |
---|---|
소통의 왕 그리스도 - 그리스도왕 대축일 (0) | 2014.11.21 |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 라테라노 성전 축일 (0) | 2014.11.21 |
연옥이 없다면 정말로 좋을까? (0) | 2014.11.04 |
표징은 누군가의 존재가 녹아있는 선물 (0) | 201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