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7 21:15 수정 : 2014.08.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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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 |
광화문서 또한번의 위로
한달넘게 단식중인 유민이 아빠
“평생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이
우리 손을 잡아주어 정말 고맙다”
지켜보던 시민 “뭉클하다” 눈물
트위터에선 교황이 단 노란리본과
대통령의 텅빈 가슴 대비시키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사흘째인 16일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에 앞서 세월호 유족들을 한번 더 위로했다. 진상 규명을 위해 ‘높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유족들은 대통령보다 교황을 먼저 만났다. 카퍼레이드 중에 차를 멈추고 내려 다가간 교황이 직접 만나 위로한 단원고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는 “평생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분이 우리가 힘들 때 우리에게 와주어서, 우리 손을 잡아주어 정말 고맙다”고 했다.
이날 오후 6시께 찾은 광화문광장에서 시민 10여명은 이보라 서울시동부병원 내과 과장이 김씨를 진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건강하셔야 한다” “힘내시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멀찌감치 서서 휴대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시민도 여럿 있었다. 김씨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넨 시민 강미덕(54)씨는 “제가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교황님 덕분에 용기를 냈다. 교황님이 유민이 아빠 손을 잡아주시는 것을 보니 뭉클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시민들이 몰려서 쳐다보고 계속 응원해주신다. 시민들 반응이 엄청 좋다”고 했다. “교황님이 안 만나줄 줄 아셨대요. 그런데 막상 만나주시니까…. 너무 많이 우는 분도 계시고….” 단식 34일째를 맞았지만 김씨는 시민들의 격려를 받아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제일 기쁜 날이죠. 막힌 가슴이 탁 트인 기분이에요. 정부가 우리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사실을 알릴 기회가 된 것 같아서 희망이 보여요.”
즉흥적으로 일어난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교황은 격식 차리지 않은 행동으로 김씨를 위로했다. “편지를 준비했는데, 그런 걸 주면 경호원들이 제재를 하잖아요. 그래서 손을 잡고 있을 때 ‘편지 쓴 게 있는데 드려도 될까요’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된다’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교황은 김씨에게 받은 편지를 경호원에게 넘기지 않고 직접 수단의 주머니에 넣었다.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에게 보여준 친밀한 위로의 행동은 세월호 문제를 방관하던 시민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줬다. 이날 오후 다시 설치된 광화문 농성장의 세월호 특별법 서명대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이끌어 함께 서명한 백윤미(33)씨는 “교황이 노란 리본 단 것 보고 나도 달고 싶어졌다.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다”고 했다. 남자친구인 오민용(36)씨는 “바티칸에 있는 교황이 우리 이웃이 된 것을 봤다. 원래 우리가 이웃인데…. 세월호는 정치가 아니라 이웃의 문제이고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저녁 7시께 다시 설치한 김씨의 단식농성 천막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도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시민들 앞에선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50)씨는 “교황님 방문으로 생각보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감사했다”며 “그런데 그분이 교황님이 아니라 청와대에 계신 그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고 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누리꾼들은 노란 리본이 달린 교황의 가슴과 박근혜 대통령의 텅 빈 가슴을 비교하는 사진을 퍼나르며 교황과 대비되는 청와대의 무관심을 씁쓸해하고 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