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후 ‘희망의 집’에서 평생 병상에 누워 있는 오미현(23)씨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이날 교황은 병들고 소외된 이웃 2000여명이 생활하는 꽃동네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애와 버림의 이중 아픔을 간직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음성/사진공동취재단 |
종교·세대 초월한 ‘프란치스코 열풍’
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진 메시지가 한국 사회를 잔잔하게 적시고 있다. 종교가 없는 이들조차 말과 행동을 최대한 일치시키려는 교황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던 가치를 보았다는 이들도 있다. ‘사회적 치유’를 말하는 이들도 많다. ‘프란치스코 앓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요. 그래도 귀를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교황은 실제로 낮은 곳으로 가서 얘기를 들어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종교가 없다는 김단아(27)씨는 17일 “저런 교황이 있는 종교라면 믿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황에게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는 저런 지도자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한남희(57)씨도 “약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향하는 교황의 리더십을 다른 지도자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질 보다 인간’ 성직자 참모습“세월호 유족 ‘유민아빠’
손잡아주는 모습에 울컥”
“물질 중심 한국 사회에
인간의 중요성 일깨워” 서울 구로구에 사는 장재환(49)씨는 “우리 사회에 불었던 ‘힐링 열풍’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였다. 그런데 교황의 언행에서 개별적 치유를 넘어 ‘사회적 힐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장씨는 “혼자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데서 벗어나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서 아픔을 치유해 가는 사회적 힐링을 보여줬다. 세월호 사건처럼 갈등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의 행보는 일종의 반성의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 1월에 세례를 받았다는 박민진(26)씨도 교황이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는 장면을 보고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정호중(45)씨는 원불교 신자이지만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를 보기 위해 전북 익산에서 올라왔다. 정씨는 “종교조차 물질과 성장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교황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말씀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억울하고, 답답해도 어느 누구 하나 믿고 기댈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교황에게 열광하는 게 아닐까요.” 천주교 신자인 이길원(54)씨는 교황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진심을 느꼈다고 했다.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시복식장을 찾은 이원영(42)씨는 “물질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중요하다는 교황의 말씀은 하나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허리 굽히는 ‘따뜻한 리더십’
“고급 차·좋은 숙소 외면
낮은 곳 향한 소탈함 감동”
“꽃동네서 선채로 50분
진심 없이는 못하는 일” 불교 신자인 최영화(45)씨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물질 만능의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불교 신도들 사이에서도 화제”라고 했다. 최씨는 “교황 방문 전에는 뉴스를 보기 싫을 정도로 무섭고 슬픈 내용이 쏟아졌다. 우리 사회가 돈 말고는 구성원들을 서로 묶어줄 수 있는 가치가 없어진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교황이 던진 메시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돈 이상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용보(62)씨는 “무엇보다 교황이 청년들에게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많이 남겨준 것이 가장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겸손하고 따뜻한 리더십도 감동을 주고 있다. 경기 산본고 1학년 이재윤(16)군은 “높은 위치에 있는 교황이지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소탈한 모습이 놀라웠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박지은(28)씨는 “음성 꽃동네에 갔을 때 의자에 앉지도 않고 50여분 동안 선 채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봤다. 진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집단적 치유의 경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손성익(41)씨는 “교황은 성당에 다니라거나 예수를 믿으라는 말씀 대신 ‘낮은 자를 섬기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 한국 사회가 이 말씀에 화답할 차례”라고 했다. 김경미(32)씨는 “교황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우리의 상황이 안타깝다. 교황이 (실제로)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서 근본적 변화를 만들 계기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송호균 최우리 이재욱 기자, 전국종합 ukno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