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김레지나 2014. 4. 25. 12:31

[마음 산책]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중앙일보] 입력 2014.04.11 00:10 / 수정 2014.04.11 00:10
[일러스트=강일구]

혜 민
스님
우리는 살다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미움과 분노를 가슴속에 담고 사는 것보다 용서하는 편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은 또 그게 아니다. 어떻게 나를 심하게 비방하고 상처와 모욕감을 준 사람을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온갖 거짓말을 하고도 저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극을 하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혹은 자신의 위치를 남용해서 내가 힘없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무시하고 짓밟았던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우리의 상처는 너무도 깊어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이럴 때 상처 준 그 사람을 섣불리 용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용서하려는 마음이 올라오지도 않겠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치솟는 분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 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와 미움은 손상된 자아가 그 사람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일으키는 지혜로운 감정이다. 분노는 일종의 보호 장벽과도 같아서 깨지고 부서진 자아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회복될 때까지 나름의 역할을 한다. 그 분노를 빨리 내려놓으라고 옆에서 자꾸 종용하는 것은 잘못하면 그 사람을 다시 상처로 내모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떠올리며 자기 스스로를 희생자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상처의 기억을 되살릴수록 힘없이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던 본인 스스로가 싫어지고, 마음은 지금 현재를 놓치고 우울한 과거 속에서 분노와 함께 허우적거리기 때문이다. 이럴 때 머리로는 용서하고 털어내자고 결심을 해도 우리의 가슴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용서를 할 수 있는지 어디에서도 배운 바가 없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은 완전히 따로 놀아 더 괴로워지기만 한다.

 일단 용서에 대한 오해부터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용서는 과거의 기억을 없었던 일로 한다거나, 그 사람의 잘못을 지워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과거 상처에 얽매여 힘든 내 감정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내 안의 비통함과 응어리로부터 자유로워지자고 하는 것이다. 용서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사람의 잘못에 내가 면죄부까지 주어야 하나 하고 오해를 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일들이 괜찮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하겠다는 머릿속의 결심을 가슴으로 이끌어주는 중요한 통로는 다름 아닌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일어나는 분노와 미움을 부정하거나, 혹은 자각 없이 그 감정 안에 빠져 지내는 것이 아니고, 자비한 마음의 눈으로 그 감정을 허락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내 안의 분노와 미움을 따뜻하게 지켜보다 보면 양파가 껍질을 한 겹씩 벗듯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의 속 모양이 드러난다. 나 같은 경우엔 분노 바로 아래에 슬픔과 비통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더 따뜻하게 지켜보니 또 그 아래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더 깊은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아닌 나를 향한 자비의 눈길로 먼저 내 감정들을 지켜보다 보면 신기하게도 굳었던 마음이 점점 녹으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난 후 그 자비의 눈길을 이번에는 내게 상처 준 상대에게 향해보는 것이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아픔이 있었기에 나에게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 보는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전에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상처를 준 사람도 사실 어렸을 때부터 상처가 많았던 사람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를 무시하고 으스대던 그 모습 바로 아래에는 그도 역시 남들로부터 외모나 학력, 가난 때문에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점이 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나와 똑같이 삶이 외로워서, 아니면 나이 드는 것이 서럽고 불안해서 저러는구나 하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깊은 진실과 마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좀 누그러지고 편안해진다. 그 상태에서 불안하고 외로운 다른 세상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내 아픔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면서, 내 안의 비통함은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자비함으로 전환되게 된다.
 
 우리 안에는 불안과 외로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마음의 눈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 부디 그 자비한 눈빛과 마주하시길 소망한다.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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