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사랑 때문에

김레지나 2014. 4. 2. 15:57

[평화칼럼] 사랑 때문에

박군수 미카엘(평화방송 라디오국장)



   지난 20일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연주회에 다녀왔다. 공연에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씨가 참여해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임선혜씨는 공연에 앞서 평화방송 라디오 '교회음악으로의 초대' 프로그램에 출연, 공연에 임하는 소회를 밝혔다. 주일 아침 6시에 방송되는 '교회음악으로의 초대'는 교회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가톨릭대 교수 최호영 신부가 진행한다.

 "유럽에 가서 미사에 참례했을 때 할머니 몇 분만 계셨을 뿐 성당이 텅텅 비어 있었어요. 신앙의 본고장이 이럴 수가 있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마태오 수난곡' 연주를 처음 성당에서 하게 됐는데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어요. 사순시기에는 수난곡을 들으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대림시기에는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들으면서 성탄 맞을 준비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임선혜씨의 이 말에 최호영 신부도 거든다. "미사 전례에는 성실하지 않을 수 있어도 가톨릭 문화 안에 생활하는 것은 풍성하지요."

 '수난곡'(Passio)은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히신 다음 재판의 과정을 거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다. 가톨릭 전례에서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서의 수난 내용을 3년 주기로 돌아가면서 듣고, 성 금요일에는 요한복음의 수난기를 듣는다. 이렇게 다양한 수난 복음들은 일찍이 그레고리오 성가 낭송 음률로 여러 명이 배역을 나눠 입체 낭송을 했다. 또한 신자들이 군중으로 참여하는 등 성경봉독이 점차 극적이고 음악적 성격을 띠게 됐다.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은 이런 의식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음악의 절정이다.

 '마태오 수난곡'의 첫 곡은 합창으로 시작한다. "오라, 딸들아. 와서 나를 슬픔에서 구하라. 보라! 누구를? 신랑을. 그를 보라. 어떤 모습을? 마치 어린양과 같은 모습을." 예수님은 신랑에, 우리 모두는 딸에 비유된다.

 이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베이스 음역으로 노래된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제 이틀이 지나면 과월절이 되는데 그때에는 사람의 아들이 잡혀가 십자가형을 받게 될 것이다." 거기에 우리 교회의 대답처럼 코럴이 나온다. "오, 사랑의 예수님, 당신이 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기에 그토록 잔혹한 판결을 받으시나이까?" 소프라노가 아리아로 응답한다.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내 주님은 죄 하나 지은 일이 없으신데/죽으려 하시네/영원한 파멸과/심판의 벌로부터/나를 영원히 구원하시기 위함이네." 그러나 군중은 한목소리로 외친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임선혜씨는 말한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아요. 선동된 군중. 우리도 그렇게 선동될 수 있고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분명히 그 안에 있었을 것 아니겠어요? 이 장면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나임을 고백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사순시기가 깊어가고 있다.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 머물면서 새로운 삶을 희망할 수 있는 시간, 참으로 은혜로운 때다. 음악, 영화, 신앙서적, 특강 등 나름의 방식으로 신자들은 정화 시기를 지낸다. 평화방송에서도 사순특강을 마련, 신자들을 돕고 있다. 서울대교구 최승정 신부는 이렇게 권한다.

 사순시기 동안 적어도 한번은 마음에 와 닿는 십자가의 길 안내 책자를 가지고 혼자서 기도를 바치라고. 내 삶의 힘듦, 어려움, 수고로움을 봉헌하면서 하느님과 일대일로 만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체험을 꼭 하라고.

 다가오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 금요일에는 수난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내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친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닌지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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