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사순 제4주일 | 요한 9, 1-41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성체의 성인’, ‘고해소의 성인’,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 등으로 불리는 영성의 대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ean Baptiste Marie Bianney, 1786~1859년) 신부. 성인은 1818년 고작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새벽 4시부터 기도와 성체 조배, 미사 봉헌, 고해 성사 등으로 하루 10시간 이상 성당과 고해소에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에 무관심한 아르스 마을 사람들이었지만, 이런 성인의 모습을 보고 감화되어 몇 년 후 아르스 본당은 성인이 부임하던 당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 비안네 성인의 신학교 시절 이야기입니다. “자네는 신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겠네.” 사제가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했던 비안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습니다. 신학교 교수 신부들은 라틴어를 너무 못한 비안네가 도저히 학업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난 정말 사제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비안네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영적 스승인 발레 신부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발레 신부는 비안네의 개인 교수를 자처하며, 그의 눈높이에 맞춰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 프랑스어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비안네도 최선을 다해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3개월 후 비안네는 발레 신부와 함께 다시 대신학교를 찾아 졸업 시험을 보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발레 신부는 리옹 교구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비안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비안네를 원하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꼭 사제가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주교는 발레 신부의 계속되는 청에 못 이겨, 과연 비안네가 사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독관 2명을 보냈습니다. 감독관들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요한 마리아는 대부분의 시골 본당 신부만큼은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들보다도 낫습니다.” 감독관이 비안네에게 내어 준 시험지는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된 것이었습니다. 신학교 시험이 라틴어로 치러지는 탓에 비안네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독관의 보고서를 받고서도 주교는 일단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 뒤, 비안네에게 극적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교구 사목 책임자가 쿨봉 주교로 바뀐 것입니다. 발레 신부는 큰 기대 없이 주교를 찾아갔지만, 쿨봉 주교는 의외의 질문을 했습니다. “비안네는 신심이 깊습니까?” 발레 신부를 비롯한 교구청 사제들은 “공부는 못하지만, 신심은 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쿨봉 주교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를 사제로 부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2월 27일자 참조). 신학교 학칙 적용을 놓고 고심하던 쿨봉 주교와 관계 사제들의 고민은 오늘 복음에서 ‘안식일을 지킬 것인가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저울질했던 예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규율에는 그 정신이 있고 형식이 있습니다. 그 규율의 형식에 매이게 될 때 정신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안식일 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형식을 파괴하고 정신을 살린 모범이 되겠습니다. 물론 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혼자가 아닌 인간 사회에서는 더불어 잘 살기 위해 공동의 약속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더 큰 가치를 두고 틀을 깨는 것은 혁명이지만, 더 큰 가치 없이 틀을 깨는 것은 파괴라 할 수 있겠지요. 예수님의 더 큰 가치는 ‘사랑’이라는 정신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틀을 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요한 9, 14). 거듭 확인합니다마는 예수님은 걸핏하면 전통을 깨는 상습 전통 파괴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살린다’는 절대 명분이 있었기에 안식일을 깼던 것입니다.
차동엽(노르베르토) _ 신부,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월간「참 소중한 당신」 2014년 3월호 <송이꿀보다 단 말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