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 화가 나느냐?

김레지나 2012. 9. 12. 08:25

“화가 나느냐?”

 

  요즘 어느 일간지에 ‘무죄의 재구성’이라는 기사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 여럿이 같은 죄를 뒤집어쓰고 실형을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너무도 늦게 무죄임이 밝혀지게 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 비슷한 경험을 되새기면서 ‘맞아 맞아. 바로 이런 식이야.’를 마음속으로 연발하며, 피해자들과 저 자신을 위해 분노하며 읽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억울함이 공권력이거나 금권력으로 인한 것일 때, 혹은 가까이 지내야하는 사람으로 인한 것일 때는 정말 해결책을 찾기 힘듭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화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보통 화병이 생기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쯤의 시간이 필요한데, '긴장기'를 거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민하는 '갈등기', 해결을 미루는 '체념기', 분노가 폭발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는 '증상기‘를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제게 오랫동안 참고 참으며 지내왔던 화나는 일이 있었는데, 한 달쯤 전에 겪은 다른 큰 충격이 더해져서 편두통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숨을 쉬기도 힘들었습니다. 화풀이를 해봤자 일이 더 꼬이고 상대가 더 삐뚤어질 게 뻔한 경우라서 막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 년 가까이 맞고 있는 항암약의 부작용 때문인가 싶어서 병원 진료도 받아보고, 부종 때문인가 싶어서 이뇨제도 먹어보았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증상기’로 바로 진행된다는 ‘급성화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내 잘못이 일부 있는데도 이렇게 억울하고 힘든데, 죄 없는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통도 내 성화를 위한 사다리로 삼아야겠지...,, 내 죄에 대한 보속이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이런 경험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싸울 힘이 될 수도 있겠지...’라며 별의별 좋은 말들로 저 자신을 위로하려고 해봤지만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숨쉬기가 힘드니 덜컥 겁이 나서 뭐든 신경 돌릴 곳을 찾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인터넷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제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는데, 방명록에 낯선 분이 황창연 신부님의 동영상 강의를 링크해놓았습니다. 신부님 강의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바로 이거다. 머리를 좀 식힐 수 있겠어.’하고 반가워하며 동영상 주소를 클릭했습니다. 놀랍게도 강의 제목이 “화가 나십니까?”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레지나야, 화가 나느냐?”하고 물어보시는 것 같아서 맘속으로 와락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예, 예수님, 아시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너무 너무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부당한 일들을 참고 살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너무 버겁습니다. 미련하게 마음을 쓰다가 이렇게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강의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왜 나를 배반했느냐?‘고 따지지 않으시고 ”평안하냐?,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제게 나타나셔서 말을 건네고 계신 듯했습니다.

  “레지나야, 화가 나느냐?”

  그리고 마음 아파하시며 다독여주셨습니다.

  “레지나야, 너는 부활한 나를 만나지 않았느냐? 그러니 평안해야지. 응?”

 

  ”예수님, 이런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더욱 괴로웠는데, 다정하게 물어봐 주셔서 안심이 됩니다. 제가 어리석게도 마음이 산란해지고 겁을 냈네요. 제 평생 겪은 크고 작은 억울한 일들에 대한 ‘무죄의 재구성’을 예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께서 낱낱이 헤아려주시고 갚아주실 텐데 무엇을 힘들어하겠습니까? 이렇게 안부를 물어주신 것만으로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영도 마음도 튼튼한 사람이 되어서 몸이 상할 때까지 화내고 근심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요.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하구요. 날마다 저를 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브12:11-13)

 

                                                                                           2012년 9월 8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