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김레지나 2012. 6. 14. 23:17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엉터리 레지나의 일기

 

 

미사 참례를 했다.

따뜻하신 울 주임 신부님의 강론 말씀 :

"미움의 감정은 일종의 반사작용이지 죄가 아니다. ㅎㅎㅎ"  

 

 

피곤해서 꽤 오래 낮잠을 잤고,

오후에 반모임에 갔다.

정말 재미있어서 모두들 땀까지 흘려가며 엄청 웃었다.

웃는 것이 운동 하는 것과 같다더니..ㅎㅎ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는 성경말씀에 대한 묵상을 서로 나누었다.

겨자씨가 싹을 틔우는 것도 다 하느님께서 돌봐주시는 것이라고.

요즘 가뭄 때문에 밭에 물을 주면서 정말 하느님이 안 계시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임을 실감한다고.

그런데 우리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뭐든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기 쉽다고..

 

한 분이 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같다'라고 하지? 하고 물으셨다.

"여러 가지 묵상이 가능하고 그 모든 묵상들이 다 소중하지요. 이렇게 묵상해볼 수도 있어요.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거룩해지고자 하는 그런 우리의 작은 원의가 바로 겨자씨이고,

그런 겨자씨만한 우리의 바람을 하느님께서 예쁘게 보시고

우리가 하느님을 더 알 수 있게,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게 하느님의 나라를 좀 더 전할 수 있게

협조자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큰 나무로 키워주시는 거라구요."

 

 

  그분이 "바람만 있다고 저절로 하느님이 키워주시는 건 아니지, 노력하고 실천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네, 맞아요. 믿는 것도 하느님의 은총이고 사랑하는 것도 온갖 좋은 것은 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지요. 남들보다 더 사랑이 많은 것, 남들보다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겠구요.

다만 우리의 공은  불편한 것 참는 것, 힘을 들이는 것, 다른 데 쓰고 싶은 시간을 희생하는 것.. 뭐, 그런 일 뿐인지도 몰라요. 천사들이 인간들에게서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순수한 우리들의 공이란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겨자씨만한 바람을 갖고 있으면 저절로 큰 나무로 자란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그저 하느님이 알아서 해주시려니 하고 적당히 살라는 말이 아니라, 미리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거룩해지려는 열망을 품을 것을,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위로와 협조와 능력을 믿고 의탁할 것을,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해서 온 세상에 큰 나무되어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음을 바라고 믿고 힘을 내라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러니 적당히 거룩해지려고 하지 말고 아주 많이 거룩해지기를 바라야 할 테지요."

 

- 에콩.. 대충 적다보니,,문장이 넘 길고 복잡하네요. 그래도 다듬지 않고 이만~~ 글이 아니라 메모이니까..ㅎㅎ.

   엉터리 레지나는 이제 밀린?기도하고 잘랍니다. 굿나잇 -

 

참. 송해붕 세례자 요한님의 말씀이 생각닙니다.

"변변한 성인이 되려고 원치 말고, 완전한 성인이 되기를 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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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양승국 신부님의 묵상입니다.

 

 

1월 27일 연중제3주간 금요일 - 마르코 4장 26-34절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오늘 나로부터>

 

 

 

우리는 작다는 것을 강조할 때 어떤 표현을 합니까? 그 표현이 상황 상황에 따라 참으로 다양합니다. 봉급이 작을 때 ‘쥐꼬리만한 봉급’, 방이 작을 때 ‘콧구멍만한 방’, 가게가 작을 때 ‘구멍가게’, 눈이 작을 때 ‘단추 구멍만한 눈’ 밭이 작을 때 ‘손바닥만한 밭뙈기’

 

유다인들은 작은 것을 말할 때 겨자씨 만하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만큼 겨자씨는 크기가 작습니다. 씨앗의 직경은 대개 0.2mm정도랍니다.

 

11월경에 씨앗을 뿌리는데, 씨앗에서 싹이 나오면 채소처럼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키가 커가면서 한 가운데 줄기가 점점 굵게 자리 잡으면서 마치 나무처럼 커지기 시작합니다. 겨자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자라지만, 특히 예수님 활동의 주 무대였던 갈릴래아 지방에서 많이 서식합니다. 유채꽃 빛깔의 길쭉하고 재미있는 꽃도 피는데, 2-3월경 갈릴래아 호숫가를 산책하다보면 온 산과 들이 겨자 꽃으로 인해 노랗게 물듭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 한 가지는 그 작은 씨앗이 특별한 투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 자라면 2-3미터는 물론이고, 기후가 좋은 요르단 강 기슭이나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는 3-4미터 높이까지 자라나 무성해진 가지 사이로 새떼들이 날아와 앉기까지 한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인 교회, 그리고 하느님 말씀의 폭발적인 확장성을 설명하기 위해 성장의 속도나 위세가 대단한 겨자씨를 비유로 드신 것입니다.

 

결국 언젠가 도래하게 될 최종적이고 궁극적 구원, 결정적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 완료될 때 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 말씀의 성장, 교회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해야 할 예수님의 협력자들인 것입니다.

 

 

엄청난 하느님 나라이지만, 그 시작은 바로 ‘오늘 날의 겨자씨 한 알’인 우리 각자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란 존재, 때로 죄투성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언제 인간될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 각자 안에는 은총의 겨자씨 한 알이 뿌려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사랑의 씨앗을 싹 틔어야겠습니다. 멋진 나무로 성장시켜야겠습니다.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매달고 그늘도 만들어 세파에 지친 어린 새들이 날아와 쉬도록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늘 나의 작은 회심, 오늘 나의 새 출발, 오늘 나의 결심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참으로 의미 있는 몸짓입니다. 나의 작은 시작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의 손길이 보태지면 엄청난 에너지가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