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거지 엄마의 미소

김레지나 2012. 2. 18. 20:13

중국인들의 최대명절인 춘절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급하게 베이징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스자좡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이었는데 육교 위에서 본 역 광장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쏟아져 나왔을까? 하지만 베이징 서역의 번잡함은 스자좡을 한낮 조용한 시골 도시로 느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동양최대 규모라는 베이징 서역은 이른 시각부터 운신하는 것도 불편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스자좡으로 내려갈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광장에 설치된 특별 예매창구에 갔을 때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긴 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일이란 여간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줄이 길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중간을 파고 끼어드는 새치기꾼들로 인해 줄은 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사방에서 끼어들고 밀쳐내고 하면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통에 ‘아! 이런 삶은 전쟁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간신히 12시 46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아직 세 시간 반 정도가 남았으니까 빨리 일을 마치면 기차역에 돌아와서 점심은 해결하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로 역시 차들로 넘쳐나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두 시간 동안을 나는 버스에서 소비해야만 했다.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40분 정도를 남겨 놓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베이징 서역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방심은 금물!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해서 도착한 이층 진입구는 경찰들이 막아서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다시 부지런히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흘러들어간 곳은 기차를 타는 대합실이 아니라 기차표를 사는 곳이었다. 아직 대합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던 그때 기차 출발 시각까지는 20분 정도만 남아있었다. 다시 길을 물어 찾아간 대합실 출입구는 발 하나 밀어 넣을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끝에 가서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기차 출발 10분 전이 되도록 나는 대합실에 들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에 떠밀려서 출입구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어? 진짜로 이러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는데.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래! 나도 참전參戰! 기차표 값이 아까워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이 기차를 놓치면 기차표를 끊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을 뿐이었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고쳐 매고 긴 줄을 빙 돌아서 대합실로 들어가는 문 앞까지 돌진해 갔다. 이왕 새치기 할 바에는 화끈하게 맨 앞에서 해버리자!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수많은 고수들이 즐비한 무림의 세계에서 나 같은 신입은 머리 한 번 제대로 쳐 박아보지도 못한 채 번번이 튕겨져 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용수철 튕기듯 튕겨나기를 거듭 하고 있는 중에 나는 우연히 저 편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려주고 있는 한 젊은 엄마를 발견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사는 형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남루한 복장에 까치집을 이고 있는 머리, 그리고 새까만 얼굴을 한 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 있는 그녀의 발 앞에는 깡통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아이는 연속 주동아리를 오물거리며 엄마의 젖꼭지를 열심히 빨고 있었고 그 거지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젖을 빠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뭐라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젖을 빠는 아이를 바라보는 그 엄마의 눈빛에는 아슬아슬한 미소가 비쳐졌다. 그 슬쩍 비쳐지는 거지 엄마의 미소! 내 눈에는 그것이 어느 성자의 미소 마냥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짧은 미소는 내게 수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야수들의 전쟁터를 빠져나와서 그 거지 모자에게로 다가갔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기는 온통 전쟁 중인 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젖을 문 채 엄마의 품 안에서 온전한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아기의 표정이 그렇게 평화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엄마가 젖을 생산해 내는 데 필요한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얼마간의 돈을 그 깡통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다.

그 거지 엄마의 미소에 힘을 얻은 탓일까, 갑자기 내 시야에 커다란 부대를 작대기에 끼워 짊어진 채 돌진하는 어떤 청년의 뒤에 생긴 큰 구멍이 확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것이 기차를 타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 공간에 머리와 오른 쪽 어깨를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끝이 났다. 새치기도 다 요령으로 하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미련하게 몸 전체를 끼워 넣으려니까 자꾸 튕겨나는 것이었다. 그냥 조그만 공간이 생기면 머리하고 어깨 한 쪽만 밀어 넣을 것!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에게 밀려서 자동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다. 그 속에서 통하는 기술이라고 해 봐야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신발을 지상에서 높이 떼지 않고 질질 끌면서 전진하는 기술뿐이다. 나는 점심은커녕 출발하기 바로 직전에서야 간신히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새로운 하루 보내면서 13억 인구의 중국을 맛보고 있었다.

야수들이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한 다른 야수들을 향해 끊임없이 으르렁 거리는 듯한 싸움터에서 내가 목격한 그 거지 모자의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성직자로 살아가면서 온갖 고상한 폼은 다 잡고 살다가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야수들의 전쟁터와 같은 곳으로 자기 몸을 밀어 넣어야 하는 때도 있다. 하루 종일 직장 상사에게 무시를 당하고 격무에 시달리는 회사원도 집에 돌아갈 때는 어깨를 쭉 편 당당한 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천 명의 부하들 앞에서 호령하는 장군도 아내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남편으로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수십 년 앞을 내다본다는 점쟁이도 로또 복권을 추첨하는 날이면 잔뜩 긴장한 채로 꼼짝없이 티비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던지 입가에 미소 하나 머금을 수 있는 행복이 우리에게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어느 때 살며시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행복은 우리들의 외부적인 역할 수행에서 찾아들어오기보다는 우리들의 내부 저 깊숙한 존재 자체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이다. 물론 성직자로서, 회사원으로서, 군인으로서 혹은 역술가로서의 외부적인 역할 수행도 행복에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의 행복은 자신이 맞고 있는 주된 역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하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상태가 ‘만족스럽다, 충만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 상태의 문제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존재의 상태’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의 존재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행복하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은 ‘존재가 풍요로워서 부족함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성직자이자 승객, 회사원이자 가장, 장군이자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점쟁이이자 로또 복권 고객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외부적인 모습이 아니라, 끝없는 외형의 변화 속에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고 흔들림도 없이 ‘항상 그렇게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항상 그렇게 존재하는 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원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로 그 일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온통 전쟁 중인 베이징 서역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 한 구석에서조차 피어나는 그 거지 엄마의 미소는 사실 이런 말장난 같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 거지 엄마의 미소는 그냥 그 때 그렇게 피어나게 되어 있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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