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메일을 통해 자신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 대한 신선한 이야기를 보내 주셨다.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를 한답시고 방에 들어간 아이가 잠시 뒤에 다시 쪼르르 기어 나와 할머니께 어제 먹고 남은 불고기를 보게 해달라고 조르더란다.
하도 아이가 졸라대기에 아이의 할머니는 영문도 잘 모른 체 냉장고 문을 열어 불고기가 보관되어 있는 통을 보여 줬더니 그 아이는 ‘앗싸, 한 끼는 충분히 더 먹겠네’하고 소리치며 뛸 듯이 기뻐하더니 다시 방에 들어가 숙제를 하더란다.
메일을 읽고 그 녀석의 만족해하는 얼굴을 상상하며 한 동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 토록 맛있었던 불고기를 한 끼 더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깔끔한 행복...... 나의 어린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추억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가끔 계란찜을 해 주셨는데 할머니를 포함한 일곱 식구가 커다란 대접 안에 든 계란찜을 다 먹고 나면 어머니께서 대접에 아직 남아있는 - 사실 ‘붙어있는’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법한 - 노란 계란을 긁어모아 그 국물에 밥을 넣고 비벼주셨는데 이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누나 둘, 형 하나, 그리고 나 중에서 누가 그 환상적인 마지막 계란 비빔밥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국물 내꺼'라고 외치며 계란 비빔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 몫을 돌려주시곤 했다.
아직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던 어린 나이에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시는 엄마 옆에 앉아 계란이 적당히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느꼈던 행복감. 내 어린 시절의 최고의 행복은 그렇게 계란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극히 단순한 것이었고 그 행복은 가끔씩 누나들과 형에게 한 숟가락씩 먹을 수 있는 은전을 베풀면서 최고조에 다다랐다.
그 행복은 자정이 넘으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누나들과 형의 알 수 없는 이론에 따라 권리 주장의 효력이 밤 12시 이후로 바뀔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잠을 안자고 새날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힘이 부쳤기 때문이었다.
불고기와 계란 비빔밥. 어린 시절 우리의 행복은 이렇게 일상의 조그마한 것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지극히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이었다. 지극히 가난하고 어두웠던 상황에서도 아주 사소한 것 하나로 인하여 작은 들꽃처럼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들쑥날쑥 피어났던 것이 행복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과 마음 안에서의 행복이 언제부터인지 어른이 되고나서는 너무 복잡하고 거창한 것으로 각인되어 행복이란 마치 소수의 성공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과 같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행복이 특권화 되는 과정에는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며 성적과 석차에 따라 행복을 분배해주는 우리 학교 교육과 역시 학벌 위주의 사회 구조가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이미 행복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나 보장되는 특권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사회의 일부 특권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자, 우리 좀 행복해지자.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 한 가지,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음만 있으면 된다. 지금까지 학교와 사회에서 배워 온 행복에 대한 지식들은 쓰레기통에 비워버리고 아주 어린 시절 지극히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고기와 계란 비빔밥,
새소리와 꽃 한 송이,
책 한 권과 귀여운 강아지 사진 한 장,
시편 한 장과 눈 감으면 떠오르는 추억의 한 조각, 또 한 조각......
단순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위 한 번 둘러보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넘쳐나는 이 행복을 도대체 어찌할 바 모르겠다. 행복은 결코 소수만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이 생에 초대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만 하는 보편적인 권리이자 의무이다.
“지혜를 찾으면 얼마나 행복하랴, 슬기를 얻으면 얼마나 행복하랴.”(잠언3,13)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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