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김장하는 날

김레지나 2011. 11. 16. 20:13

오늘은 우리 공동체의 연례 행사중 하나인 김장하는 첫째날 이었습니다.

그 첫째 일이 지난 여름이 막 지나서 심은 1500포기의 배추를 뽑아서

헌 봉고차 뒷칸에 실고 수돗가로 날라 소금에 절이는 일입니다.

겨울비가 안개처럼 뿌옇게 내리는 가운데 수돗가에 형제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배추를 손질하고 소금에 절이는 동안,

저는 폐 드럼통을 반 갈라서 만든 임시 난로에 뒷 산 소나무 고목이

넘어져 생긴 장작을 모아다가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는 불 속에 감자를 던져 넣었어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불을 지피는 일을 하다보면 이 추운 겨울날을 오늘의 험한 세상이고,

자기 몸을 태우면서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나뭇가지는

주님일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전 중에 우리 수련자 형제들이 고생한 덕분에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이나 버렸습니다.

그러면 다음 일은 주방에 들어가 배추 속을 채울 무 를 잘게 채써는

일입니다. 그건 또 얼마나 준비하느냐구요?

커다란 고무 함지를 세 개 채울때까지 손가락이 구부러들어도 계속

무를 움켜 잡고 채칼 위로 왔다 갔다 하며 채 써는 겁니다.....^^

저는 매년 무를 채썰때 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김장을

담그던 시간들이 머리 속에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저는 그 분홍색 채칼 위를 사각 사각 소리내며 움직이는 무 를 움켜 잡고

무채를 써는 일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머니께 청했지요.

어머니께서는 할 일이 꽤 많으실 텐데도 항상 웃으시며 제게 무와 채칼을

넘겨주시고는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꼭 제가 무를 반정도 썰때가 되면 다시 빼앗아 어머니께서

무를 움켜쥐시고 채질을 하셨습니다. 무 한개를 마무리 하시고 나면

다시 새 무를 움켜쥐고 제가 편하게 채써는 일을 할 수 있게 길을 내

주시고는 다시 제게 넘겨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 제가

채칼에 손가락을 베일까 얼마나 곁에서 걱정을 하셨는지 오늘도

잠시 방심하던 중에 장갑이 채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 어머니....만약 제가 아이를 낳아서

그런 상황이 되어도 그렇게 애정어린 눈빛으로 곁에서 서툰 손짓을

바라보아 줄 수 있을까요? 자신 없습니다. 자신 없어요....

한참이 지나서 무 채를 다 썰면 드디어 오늘 할 일은 대충 끝이 나가는

것입니다. 뒷 정리를 하면서 오랫만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 전화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어렸을때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었던 그 분홍색

채칼요? 김장할 때 어머니 옆에서 항상 제가 한 번 해보게 해달라고

졸랐던 그 때가 제가 몇살때였어요? 그 때 귀찮지 않으셨나요?"

불현듯 이제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이 추운 겨울날, 당신 한 몸 편히

쉬실 수 있는 공간마저 빼앗기고 어디 떠나실 곳을 찾고 계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행여 시간이 더 흘러 어머니께서 더 나이드시면 제가 출가한 사람으로서

정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혼자 어딘가에 외로이 계실 어머니를

귀찮아하면 어떻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것이

채칼을 들고 무를 채썬다고 덤벼도 귀찮아 하시기는 커녕 그토록

귀엽다는 표정의 웃음을 항상 지으셨는데......

오늘만큼은 대단한 깨달음을 체험한 구도자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

먼저 되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어머니의 은혜를 아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저녁 기도 시간이 되기 전에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어머니....접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