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날개를 아주 싸게 파는 수요일 저녁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바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맥주를 마시다보면 틀림없이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하는데 테이블 안 쪽에 앉은 나는 귀찮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참을 때 까지 참다가 한 번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도저히 못참겠다 싶어 화장실에 가려는 순간 어느 친구 하나가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의상 말을 끊을 수가 없어 징그럽게 긴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제는 정말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달리듯 남자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는데 세 개의 소변기가 다 사용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Oh, my God)”
그러자 좌변기에 앉아 큰일을 보던 사람이 문 아래로 다리만 드러낸 채 곧 바로 응수하였다.
“누가 나를 찾고 있는고?(Who's calling me?)”
순간 화장실 안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길 잃은 어린 양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자 그 좌변기에 앉은 사람은 다시 태연하게 ‘기다려라, 열릴 것이다’하면서 ‘끄응’하고 힘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 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처음 만난 ‘화장실 안의 하느님’과 함께 자리를 하여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듯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유머는 사막을 걸어가는 대상이 발견하는 오아시스만큼이나 상쾌한 청량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다소 경직된 얼굴로 ‘뭘 봐!’하고 쌀쌀하게 묻는 듯한 얼굴의 우리들을 만나다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하이’하면서 생글생글 웃는 서양인들을 보면 우리도 이렇게 많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아와 과부, 세리와 창녀들과도 아무 벽 없이 지냈던 예수 역시 대단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였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부와 창녀들이 함께 놀아주었을까? ㅋㅋㅋ
모든 사람들이 삶의 고통은 잠시 접어두고 밝고 맑게 웃는 낯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부디 그러하기를......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사리를 알아 제대로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찡그린 얼굴을 펴고 웃음을 짓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다.”(전도8,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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