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짜장면

김레지나 2011. 11. 6. 21:09

로마에 돌아오기 전 밴쿠버에 잠깐 들렀을 때 생긴 일이다. 시내에서 식료품점을 하시는 이모부를 따라 외할머니와 함께 대형 할인점에 가서 수 백 만원 상당의 담배를 구입한 뒤 차에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모부는 그 날 오후 비행기로 로마를 향해 떠나가는 내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싶어 하셨다. 갑자기 까만 쏘스가 얹어진 자장면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멀리 떨어진 롭슨 가街의 P반점까지 가게 되었다.

뒤편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식당에 들어가려는 순간 외할머니께서 속이 불편하다고 하시며 당신은 차에 남아 있겠다고 하셨다. 수 백 만원 상당의 담배를 그냥 차 안에 두고 모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영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이모부와 나는 ‘보이지 않게 잘 가려놓았으니 별 일 없을 것이다’하면서 할머니의 손을 잡아 끌 듯이 식당 안으로 모셨다. 그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 자장면을 주문하고 이모부가 곧 바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으니 그때 걸린 시간은 불과 이삼분이나 됐을까?

그 짧은 순간에 벌써 차 유리창을 깨고 담배가 든 박스만 꺼내갔으니 그 도둑들의 신속함에 혀를 두르며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이모부는 이런 일이 밴쿠버에서 식료품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한 번씩은 당하는 일이므로 몇 번이고 주의를 기울이고 기울였다고 하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시며 허탈해 하셨다. 도둑 맞는데는 이제 어느 정도 이골이 날만도 한 나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왜 이렇게 나 또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도둑을 잘 맞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언제나 ‘나는 예외일 것이다’라는 자만심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일이라지만 ‘설마 그 일이 내게도 벌어질까? 나는 아니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결국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많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나는 이룰 수 있을 거라 착각할 수 있을까?

일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결코 나와는 상관없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언젠가는 내 앞에 닥칠 바로 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리따운 처녀의 마음에 사랑이 싹 트듯이 몇 십 년 공을 들여 정진해온 독신 수도승에게도 사랑이 싹 틀 수 있는 것이고 어제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는 형제가 있었듯이 내일은 우리가 그렇게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조금 앞섰거니 뒷섰거니 말들이 많지만 결국 세상 사는 사람들 일이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마련이다. 인생 앞에서 결코 자만하거나 무리해서 이루려 하지 말 것이다. 조금 모자란 듯, 조금 더딘 듯 살아가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장면 값을 치르고 얻은 교훈이다.

“야훼께서는 교만한 자를 업신여기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잠언3,3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스테파노신부